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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Sep 15. 2022

저랑 탁구 좀 쳐주세요

모두 시선을 피한다





탁구장에 앉을 곳은 세 군데로 분류된다. 


먼저 출입구에 가까운 평상이다. 이곳은 사물함 옆이고 6탁과 7탁 뒤편이다. 탁구장에는 1탁부터 8탁까지 있는데 8탁은 신발장 바로 옆에 붙어있어서 정상적인 게임을 치를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으레 초보라면 여기 6탁과 7탁에서 놀기 마련이다. 평상은 그곳에 존재한다. 가방과 라켓과 기타 잡기류가 놓여있고 틈새를 비집고 초보들이 앉는 곳이다.

두 번째로 벤치다. 벤치는 저기 맨 안쪽 1탁부터 3탁까지 고수님들이 노는 곳에 넓게 위치한다. 편히 앉아서 뒤로 기댈 수 있게끔 등받이도 있다. 탁구장에 익숙한 고수님들이 가방을 내려놓고 간식을 먹으며 잡담한다. 두런두런 안부를 물으며 탁구대 심판석에 들어가 게임을 청하기도 한다. 이른바 탁구장의 사랑방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로 휴게실이다. 휴게실은 1탁 2탁 뒤 유리문 너머에 있다. 여기는 커피, 정수기, 음료수 자판기와 테이블, 의자, 휴지통, 티브이, 선풍기가 있다. 보통 막 게임을 끝낸 고수님들이 둘러앉아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꺼내 마시는 곳이다. 초보는 앉지도 못하고 고수님들이 음료수를 다 마실 때까지 서서 홀짝거리며 머문다.  



나는 우두커니 평상에 앉아있다. 모두 시선을 피한다. 

내가 뭘 잘못했나요? 아무도 나를 상대해 주지 않는다. 나는 물끄러미 탁구 치는 이들을 바라본다. 6탁, 7탁, 8탁 초보들을 본다. 맨 끝 8탁 뒤에는 출입구가 있다. 집에 가버릴까? 집에 가고 싶다. 그렇지만 한 게임도 하지 못했는데? 한 게임도 하지 못한 채 집에 가면? 난 뭐가 되는 거야? 한 게임도 하지 못하고 그냥 가면 6탁 7탁 8탁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 아, 저 사람 좀 봐. 좀 전에 왔다가 평상에 앉아만 있다가 가는구나. 그냥 갈 건데 왜 왔대? 왜 와서 신발 갈아 신고 라켓을 손에 꼭 쥐고 있었대? 불쌍하다. 필시 그리 생각할 게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일어나지 못한다. 앉아서 그들을 본다. 애절한 눈망울로 본다. 친구가 없다. 아는 이도 없다. 철저히 낯선 이방인의 입장. 나는 왜 여기 있는가? 근본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한다. 탁구 치러 왔다. 탁구를 치러 탁구 치는 이들이 있는 탁구장에 왔다. 그런데 탁구를 치지 못한다.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곳. 서글프다. 이따금 공 주으러 가는 이와 눈 마주친다. 그때마다 잽싸게 눈 돌리는 사람들. 평상 바로 옆 자리에 나란히 앉아있어도 그들은 먼저 말 걸어주지 않는다. 문득 군대에서 갓 자대 배치받은 시절이 떠오른다. 신병 받아랏! 부대원들은 서로가 기계처럼 착착 맞물려 일사불란 어울리는데 나만 혼자다. 신병이니까. 감당할 수 없다면 신병 건들지 마라. 차마 다가가지 못하는 위치. 초보는 초보라서 난감한 위치. 



나는 탁구 초보다. 것도 왕초보. 

며칠 전 탁구장 월회원을 끊었다. 종환 형과 함께 왔다. 형과 월, 수요일 약속을 하고서 왔다. 종환 형은 종종 바쁜 사람. 때문에 약속을 빼먹고는 했다. 나는 탁구를 매일 치고 싶은데 같이 칠 상대가 없어 고민했다. 혼자라도 탁구장에 가볼까? 갔는데 어느 누구도 탁구 쳐주지 않으면 어쩌나? 그래도 탁구 치고 싶은데. 탁구는 감각운동이라 하루라도 빼먹으면 대미지가 있는데. 탁구공이 따닥 거리는 소리. 집에 있으니 귀에서 자꾸만 따닥따닥 소리가 울린다. 가야겠다. 그래 가보자. 부딪쳐 보자. 하면서 나는 혼자 탁구장으로 향했다. 



탁구장은 5층 건물 5층에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서 내리는 동시에 복도에까지 따닥따닥 탁구 치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탁구공들의 무수한 소리. 수많은 탁구공이 오간다. 그 소리를 듣자면 곧장 두려움이 엄습한다. 탁구 치는 저들은 모두 자기네 지인과 함께 왔을 터. 탁구공이 수없이 오갈 때 그들의 정담도 수없이 오가고 친분이 두터워진다. 문 열고 들어가면 자기들끼리만 정다워하느라 날 본 척도 안 하겠지. 나만 혼자다. 게다가 실력은 아직 초보라 반기는 이 하나 없다. 저마다 기피하는 탁구 초보의 길. 초보 주제에, 신병 주제에 감히 탁구를 치러 왔어? 그렇게 기어이 치고 싶다면 어디 정중히 엎드려서 부탁이라도 해보렴. 탁구장에서 가장 인기 없는 위치. 수그려야 하는 계급. 익숙하지 않은 환경. 낯선 얼굴들. 적응해야 하는데.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하나? 평상, 벤치, 휴게실 그 어디에도 있을 곳 없다. 그래서 멈칫멈칫 쭈뼛쭈뼛... 아직이다. 불안한 요소가 하나하나 떠올라 아직 들어가지 못했다. 엘리베이터와 탁구장 사이에는 화장실뿐이다. 나는 화장실 앞 복도에서 연신 망설이고 갈등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엘리베이터에서 탁구장 입구까지는 불과 열 걸음. 

다가갈수록 탁구 치는 소리가 커진다. 탁구공이 테이블에 부닥치는 소리. 따닥따닥. 따닥따닥. 그 소리가 괴이해서 흥분되기도 하고 두려워지기도 한다. 운동화가 바닥과 마찰되는 소리. 끼익 끼익. 끼익 끼익. 탁구장 현관, 투명 유리문 너머로 형형색색 탁구복 입은 이들이 보인다. 숨이 차서 거칠게 호흡하는 소리. 허억 허억. 허억 허억. 주로 삼사오십 대의 연령. 그들은 와하하 웃으며 탁구를 친다. 아저씨와 아줌마. 늙은이와 젊은이. 서로가 서로와 아주 오랜 친구인 것처럼 즐거워 보이는 소리. 나이스. 아자아. 빠샤아. 어랏차. 으아악. 오우예. 캄오온. 어디일. 흐어어. 차아~! 그 외 기괴망측한 기합의 연발. 모두가 정답게 들린다.



그러나 그러나... 나는 문 앞에 멈춰 선다. 

젠장 빌어먹을, 젠장 빌어먹을, 젠장 빌어먹을... 들어갈까 말까 잠시간 망설이다가 또다시 심호흡한다. 여기까지 왔잖아. 이겨내자. 도전하자. 흐읍! 입을 악물고 늪에 빠진 발을 빼내 마침내 문 열어 들어간다. 진입한다. 탁구장의 부풀어 오른 공기방울 속 한쪽을 부욱 찢어 쏙 들어간다. 들어왔다. 들어가니 가까이 있던 몇몇이 내 얼굴을 본다. 혹시 아는 이가 오는가 싶어 돌아보는 눈치다. 곧바로 낯선 얼굴이라 모른 척 고갤 제자리로 가져가는데 나는 거기다 대고 "안녕하세요" 하고 억지로 소리친다. 아아 힘들다. 인사를 받은 몇몇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아, 예" 하며 받는다. 멀찍이 떨어진 사람들도 나를 주시하지만 일일이 시선을 감내할 자신이 없어서 나는 못 본 척 신발장으로 간다. 신고 왔던 운동화를 벗고 탁구화로 갈아 신는다. 의자에 앉아 끈을 묶으며 힐끔힐끔 탁구 치는 모습을 본다. 아는 이가 있을까? 같이 칠만한 사람이 있을까? 두리번거린다. 역시나 없다. 다 묶었다. 어쩐담? 슬그머니 가방에서 라켓을 꺼낸다. 공도 꺼낸다. 이제 뭘 하면서 뭐라도 하는 척을 할까? 나는 벌떡 일어나 휴게실로 간다. 가면서도 혹시 아는 척을 해주는 이가 없나 살핀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내린다. 저녁이라 커피를 마시면 잠이 오지 않을 텐데 하면서도 커피를 마신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다. 뭐라도 하는 게 있어야 한다. 가만있으면 가련해 보일 테니. 아직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아서인지 이온음료는 당기지 않는다. 이 씁쓸한 심신에 조금이나마 달콤한 게 들어가야 살 것만 같다. 기어이 달달한 커피를 마신다. 꼴깍꼴깍 한 모금씩 아껴가며 테이블을 쳐다본다. 테이블 너머 좌석에서 몇몇이 흘낏 나를 보지만 죄다 모르는 이들뿐. 비교적 탁구장에 오래 상주한 사람들. 실력도 고수. 고수님은 하수를 쳐다볼 뿐 말 걸지 않는다. 하수는 굽신거리며 고수님에게 한수 가르침을 부탁하고 고수님은 가끔 한 게임만 해줄 뿐 두 게임 세 게임까지 상대하지 않는다. 하물며 나처럼 친분마저 없는 이들에겐 그런 부탁마저 어려운 현실. 나는 그들을 쳐다볼 뿐 말 걸지 못하고 눈 마주칠 때마다 쭈뼛거린다. 나를 본 그들의 입술이 뭐라 뭐라 말한다. 그들의 입모양을 보고서 나는 그 내용을 유추해본다. 얘들아 눈 돌려라. 초보랑 눈 마주친다. 얼씨구 저 초보는 혼자 왔나 봐? 간도 크지. 하하하. 허허허. 키키키. 후후후. ㅠㅠ 



큰일이다. 벌써 커피를 다 마셨다. 

이제 뭘 해야 하나? 휴게실에서 나와서 라켓을 들고 어기적 평상에 앉는다. 앉아서 다시 물끄러미 탁구 치는 정경을 본다. 보는데 눈에 무언가 그렁그렁 맺힌다.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어떤 이는 가벼이 웃으면서 탁구를 치고 어떤 이는 진지한 눈빛으로 탁구를 친다. 나 빼고 모두 즐겁구나. 플레이 하나마다 탄성을 내뱉고 기합을 외친다. 자 파이팅. 아자아자. 해보자. 할 수 있다. 그 소리가 마냥 부럽다. 그런 열정이, 여유가, 재미가, 땀이, 웃음이, 정다움이. 

나는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쳐다보지만 그때마다 그들은 시선이 마주칠세라 눈을 피한다. 그들은 내 눈빛을 알고 있다. 그들도 초보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한없이 애잔한 눈빛. 그래 그 마음 안다. 잘 알지. 누구라도 구제해주길 원하는 간절한 마음. 그들은 알면서도 나를 피한다. 한번 구제해주면 거머리처럼 달라붙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고마워요. 이왕 고마운 거 저랑 계속해서 쳐 주세요. 맞춰주세요. 친구해 주세요. 



탁구라는 운동. 실력의 습성이란. 

어떻게든 나보다 고수랑 어울려야 실력이 상승한다. 나보다 하수랑 어울리다 보면 어느새 둘은 동급이 되기 마련. 하수는 실력이 올라간 거고 고수는 실력이 내려간 거다. 그러다 보면 고수는 비슷했던 고수에게 열세가 된다. 이상하다? 이 정도 공은 분명 해결할 수 있었는데. 왜 안되지? 하수의 느린 공만 쳤기 때문이다. 자꾸 실수하네.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쉬웠는데? 그러나 어느 순간 쉽지 않게 된다. 코치님에게 달려가 FM 자세를 복기한다. 원래는 FM에서 진화된 자신만의 스윙이 존재했지만 이제 또다시 FM에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진화를 연구해야 한다. 그래서 고수는 늘 비슷하거나 더 높은 쪽을 바라보고 하수는 고수만 바라본다. 탁구 초보인 내게 어쩌다 엮이게 되면 다시 그러한 수순을 밟을까 싶어 그들은 내 시선을 피한다. 실력이 비슷한 무리 중 대다수가 말한다. 왜 허락도 없이 생초보와 탁구 치나요? 그러지 마세요. 그러면 당신마저 버려집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으로 본다. 

저랑 탁구 좀 쳐 주세요. 오만 생각이 다 든다. 그만둘까. 그만둬야 하나. 그래 그만두자. 그만둔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편해지네. 그만두는 건 너무나 쉬워. 근데 당장 탁구장에서 나갈 때 어떻게 나가지? 급한 전화를 받는 척 나갈까? 탁구화를 챙겨가야 하나. 다시 오지 않을 거잖아. 두렵다. 나를 지켜보는 시선마저 두려운 상황. 



저 하수는 이제 안 오겠구나. 

마지막 발걸음을 안타깝게 지켜보는 마당. 모두가 나를 보는 듯하다. 이대로 앉아 있어야 해? 제발 누구라도 말 걸어주길... 나는 오갈 데 없는 한 마리 양이다. 늑대들이 탁구를 치는데 그들 속을 뚫고서, 헤집고 나갈 엄두조차 나지 않아. 늑대 소굴의 공기는 아무래도 가녀린 양이 숨쉬기에 벅찬 무언가가 있다. 무겁거나 사납거나 진하거나 연하거나. 간혹 어떤 이들은 초보를 잡아먹으려 달려든다. 그간 얼마나 당했던가? 돌려줄 사냥감을 찾는다. 고수님 몰래 늑대는 양을 거들떠보지 않지만 탁구 치는 내내 침을 질질 흘린다. 어디 걸리기만 해라 하면서, 다만 먼저 먹이를 탐하지 않을 뿐. 신병은 차렷 자세로 앉아서 기다린다. 누군가 말 걸어주길. 부대원이 되고 싶다. 기계 속 부품이 되고 싶어. 늑대 속 늑대가 되고 싶다. 


그저 탁구장에서 탁구 치는 탁구인이 되고 싶은 마음. 


탁구장에서 벌벌 떠는 양.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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