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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Sep 26. 2022

누가 내게 가르침을 주는가

문숙 선희 난영





오늘도 깨졌다. 


여자 4부 문숙 씨에게, 여자 5부 선희 씨에게, 여자 4부 난영 씨에게 줄줄이 친절하게 졌다. 여자 4부는 남자 7부와 동급이다. 나는 남자 7부를 이기면서 여자 4부에게는 진다. 결과적으로 남자에게 강하고 여자에게 약하다. 당신이 특별히 성별에 따라 승률이 다른 까닭은? 단지 예뻐서? 아니다. 마음이 약해져서? 것도 아니다. 배려심? 아니라니까. 매혹적? 큰일 날 소리. 그렇다면 대체 이유가 뭘까?


아마도 스타일이 아닐까 싶다. 여자는 섬세하다. 섬세한 4부가 되려면 최소 3년은 레슨을 받아야 한다. 3년간 레슨 받은 그녀들은 실력이 오를수록 점점 닮아간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아가고 쫓아간다. 하나같이 백핸드 서브를 길고 짧게 자유자재로 넣는다. 길게 오는 백핸드는 반회전 반커트를 머금는다. 회전 볼인가 싶어 쇼트로 받으면 네트에 걸리고 커트인가 싶어 커트로 받으면 얻어맞기 좋게 떠오른다. 속았지? 약 오르지? 내가 무슨 서브를 넣는지 알면 안 되지. 내 손에 라켓, 여기는 은밀한 곳, 스윙을 세웠나 누웠나, 그만 좀 보란 말이야. 자꾸 그렇게 쳐다보면 쳐다볼수록 앙탈 부리는 여자들의 라켓. 코치님은 상대가 서브할 때 라켓면을 보고 판단하라는데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어머! 짐승! 저 남자, 자꾸 내 가슴을 쳐다봐. 야! 그만 좀 노려봐! 뭘 그리 게슴츠레 보는 거니? 눈빛이 어쩐지 징그러워. 계속 쳐다보면 실례잖아. 아니, 저더러 어쩌라구요? 코치님이 보라고 해서 보는 건데 왜 보지 말라고 하는 거냐구요?


토스로 가슴 앞에서 공 띄우고 쓱 지나가는 한 줌의 바람이 살랑~ 동시에 바닥에서 쾅! 하고 내딛는 발소리. 마치 공이 라켓에 맞아 진동하듯 압박하여 움찔거리게 된다. 그러면 찰나의 순간 그 장면이 너무 빨라서 판단할 수가 없다. 분명 깎는 거 같았는데 대 보면 너클이다. 너클을 커트로 리시브하면 높다란 찬스 볼을 준다. 커트를 쇼트로 리시브하면 네트에 박는다. 정신이 없다. 속이고 속는 쳇바퀴. 나는 언제나 속는 쪽이다. 이놈의 리시브. 여성과의 리시브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여성 4부는 죄다 아주머니뿐. 이때껏 4부 이상 치는 아가씨를 본 적이 없다. 그만큼 인생의 관록이 있어야 4부를 다는 게 아닐까? 나는 서브 넣는 아주머니 얼굴을 유심히 보기가 어렵다. 오늘 당신의 표정은 어떤가요? 기분은? 하얗게 화장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눈 마주치면 어쩐지 어색하고 부끄럽다. 왜 자꾸 보는 거예요? 아니 그게 아니라 어떤 서브를 넣는지 봐야... 뭐예요? 너무 뚫어져라 보는 거 아니에요? 어머 방금 제 가슴 보셨죠? 보셨잖아요? 아, 아니, 아니에요. 라켓이 가슴 뒤에서 나오니까. 그래도 가슴팍을 그렇게 자꾸 보시면, 뚫어져라 보면 어떡해요? 


나는 저 혼자 부끄러워한다. 감히 그녀들의 서브 넣는 장면을 유심히 지그시 뚫어져라 보지 못한다. 어떤 서브가 오는지 라켓을 보라고 했는데 보지를 못한다. 다만 공이 네트를 넘어 가까이 왔을 때야 뒤늦게 판단한다. 이건 낮으니까 틀림없이 커트 볼이다 하면 영락없이 홈런 찬스 볼을 준다. 나는 서브 넣는 여자를 주의 깊이 보지 못한다. 앙탈과 교태 사이 서브가 들어간다. 리시브가 흔들리니 스코어 관리가 제대로 될 리 만무하고 멘털과 게임 살림이 흔들린다. 살림살이 나아지셨어요? 아니요 리시브로 다 날려먹었어요. 나는 같은 부수, 남자는 이겨도 여자에게는 진다. 나는 어느새 구장 부수로 7부가 되었고 7부들에게 지지 않는 7부 에이스가 되었다. 그럼에도 여자는 어렵다. 




매일 탁구장에 오는 사람들.


매일 오는 이들은 대부분 레슨을 받는다. 레슨은 일주일에 두 번 내지 세 번이다. 횟수에 따라 비용이 다르다. 관장님은 늘 레슨으로 바쁘다. 공식적으로 이십 분이지만 앞뒤 살을 붙여 삼십 분을 꽉 채운다. 레슨실 안에는 레슨용 탁구대와 탁구로봇이 있다. 나는 같이 칠 상대가 없거나 개인 연습을 할 때 틈틈이 로봇을 이용한다. 로봇을 이용하면서 옆에 레슨 받는 이들이 나와는 다른, 어떤 가르침을 받나 도둑 귀로 듣는다. 


관장님 스타일이란, 우선 레슨 받는 이의 힘을 뺀다. "힘 빼세요." 말로써 아무리 힘을 빼라고 말해도 실제 힘은 빠지지 않는다. 레슨 받는 이들도 답답하다. 막상 힘을 빼 보지만 흐느적 빗맞기만 한다. 그럼 힘은 언제 주는가? 임팩트 때만 주라고 한다. 백스윙 때는 뺐다가 스윙이 올라가면서 잠깐 반짝 주라고 한다. 그게 말처럼 잘 될까?


"여보세요. 내가 힘 빼라고 했잖아. 왜 말을 못 알아먹어? 자, 연타 한번 해봅시다. 왜 그래? 벌써 힘들어요?"


다소 험악하다. 잠시간 침묵. 헉헉거리는 숨소리. 레슨 받는 이가 힘들어한다. 레슨 받는 이는 적어도 사오십대. 사오십대가 힘들어서 대답하지 못한다. 공기가 무겁다. 사회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힘든 내색 한번 않는 사오십대 어른들. 한창 사춘기 아이들부터 이제 막 대학생, 취준생이 된 자녀들의 부모다. 이거 사줘, 저거 해줘, 다 해줘, 돈 줘. 그래 그래 여깄다, 뭐 더 필요하니? 엄마 아빠가 다 해줄게, 하고 다해주는 이들. 싫어도 싫은 내색 안 하고 힘들어도 힘든 표정 숨기고 늘 벼랑 끝에서 아이를 안쪽으로 밀어내고 끄트머리에서 잠드는 이들. 그런 그들이 탁구대 위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깊은 눈을 끔벅거린다. 


그럴 때면 관장님은 가만히 기다려준다. 힘들어요? 라고 물어도 힘들다고 대답할 줄 모르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기다렸다가 다시금 공을 쳐 준다. 공을 치며 가르친다. 반말과 존대를 섞어서 구사한다. 그러면 어쩐지 몸에 신선한 기합이 들어간다. 자극이 적절하다. 온전히 존대만 받는다면 차라리 편안할 테다. 편안해? 편안하려고 오지 않았다. 편안하면 시킨 대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필요악. 극존칭에 익숙한 시대. 이때 단말마의 반말이 효과를 발휘한다. 


"여보세요. 내가 이렇게 하라고 했잖아. 왜 시킨 대로 안 해? 그렇게 자기 맘대로 할 거면 다 집어 쳐!" 


깜짝! 반말에 움직인다. 어랏? 자식 놈에게 남편이 하는 말인가 싶어 눈을 끔뻑거리다가 관장님이네, 하고 정신 차린다. 레슨 받는 이는 두 팔로 무릎을 잡고 겨우 버틴다.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힘듦을 보여주자니 어쩐지 면목이 없다. 쪽팔린다. 체면이 서지 않는다. 누가 보려나? 힐끔 옆에 지켜보는 나를 의식한다. 다 늙어서 이게 뭐하는 짓이람? 가정에서는 가장이거나 가장을 좌지우지하는 엄마. 회사에서는 과장이고 차장이며 부장이다. 대표에 이사 직함도 가지고 있거늘 선생이고 관리자이기도 하다. 하물며 관장님보다 나이 많은 이들도 고개 숙인다. 부단히 노력하여 쟁취해 힘겹게 취득한 매슬로우의 자아실현 욕구 5단계에서 상호 존대는 기본이다. 그럼에도 이 시대 나는 거꾸로 레슨을 선택했다. 그것도 거금을 들여서 혼나고 야단맞고 하대 받는 것을 필요로 한다. 천대받고 싶다는 욕망. 아주 드문 욕망이다. 문득 오래전 그날이 떠오른다. 그때도 그랬었지. 맞으며 기합 받고 구르며 울던 시절. 훈련병의 마음. 이등병 일병 상병 심지어 병장 초반까지도 그랬다. 기수가 꼬여서 기합이 들어가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성장했다. 성장해서 높은 위치, 이른바 고지대에서 보는 저지대는 한없이 만만해 보이는 현상. 낮은 곳에서 힘겨워하는 후임들을 보면서 재촉하고 욕하고 윽박질렀다. 내가 당한 그대로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면서 꼭 닮아 복사한 듯 그렇게 되었다. 


그리고 제대 복학하고 적응해 다시 사람이 되어 한동안 기합이란 걸 잊고 살았다. 요즘 시대에 대관절 누가, 날 위해 목소리를 높인단 말인가? 부모님이? 선배가? 자식이? 동료가? 누구라도 눈 부라리고 고함친다면 그것은 부조리, 깨부숴야 할 폐단이 틀림없다. 시대에 거스르는 것. 없애지 못한다면 기피해야 할 대상. 우리는 결코 소리 높이지 않는다. 서로가 누구 씨, 누구 님이라 공손히 부른다. 좋든 싫든 고개 숙인다. 뒤에서 욕하든 속에서 빠큐를 날리든 안 보면 그만이지 하고 참는다. 선생님도 학생에게 존대를 한다. 부모님도 어느 순간부터는 자식에게 뭐라 말하지 못한다. 그렇게 해보면 어떠니, 하고 조심스레 살피는 게 다다. 속이 문드러져도 할 말을 다 하지 못한다.


이따금 자식은 편지를 남긴다. 문자를 보낸다. 아빠 너무해. 엄마가 어떻게 그럴 수가? 슬퍼요 라고 말한다. 그러면 아빠와 엄마의 마음은 미어진다. 미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아차차 깨닫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새끼. 소중한 내 새끼. 새끼는 늘 품 안에 웅크려 먹이만 주면 될 줄 알았는데 이제 부쩍 성인도 아닌 주제에 성인처럼 상호 존대를 말하는구나. 놀란다. 다시 보게 된다. 하는 수 없다. 조심스레 변한다. 나는 이렇게 해보면 안 되겠니 하고 아주 작게 속삭인다. 그러고는 눈치를 본다. 더럽다 더러워하면서도 감히 뭐라고 명령하지 못한다. 세상은 평평해져서 누구라도 하대하고 화내지 못한다. 소리치며 으스대지 못한다. 


깜빡해서 욱해서 멋모르고 으스대면 어딘가 모자란 사람이 된다. 그런 취급을 받는다. 그래 그것도 좋지만 어쩐지 옛날이 그립기도 하다. 누구라도 좋아. 진중한 마음 가득 담긴 호된 꾸지람을 듣고 싶구나. 이런 내가 이상해. 앞뒤 가감 빼고 순수하게 누구라도 날 위해 소리쳐주길. 그렇다면 대체 누가? 이 시대 누가 그리해준단 말인가? 대통령? 국회의원? 연예인? 강사? 어림없다. 사장이? 기관장이? 어림 반푼 어치도 없다. 상사가? 동료가? 친구가? 친척이? 나이 들어가며 상사와 부하는 뒤바뀌고 뒤바뀌어 위아래가 없다. 다 같이 늙어가는 주제에 위아래가 없는 세상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저 지켜볼 뿐 뭐라 하지 않는다. 그냥 웃어주거나 무시할 뿐 웃어주는데 웃어주면 우리는 서로 웃는 관계가 된다. 무시하는데 무시해주면 서로가 편한 관계가 된다. 가끔 만나서 부담도 없다. 누구시더라?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별로 반갑지 않은 사람에게는 안 보면 그만이지. 더 생각하지 말자. 머리 아파. 잊으면 그만이다. 그리하여 누구도 나를 위해 충고하지 않는다. 살 좀 빼라. 챙겨 먹어라. 운동해라. 가르치지 않는다. 물어보면 물어본 대답만 돌아올 뿐 꾸짖지 않는다. 평화가 미덕인 세상. 화내면 이상한 사람이 된다. 


와중에 여기는 블루오션의 공간. 

탁구장이다. 


"얘들아 야단맞으러 돈 내고 오렴. 돈 많이 내면 더 많이 야단쳐 줄게. 꾸짖어 줄게. 마땅히 내가 널 위해 얼굴 붉혀 줄게. 어르신 왜 그래요? 힘들어? 뭐 그거 갖고 그래에?" 


관장님은 화내면서 밖에 나가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돌아온다. 담배를 끊지 못한다. 나는 널 위해 이토록 정열을 다해 격려하거나 실망한다. 레슨 받는 이는 말없이 그저 헉헉거린다. 고개 숙여서 야단맞은 학생처럼 가만히 아래만 응시한다. 그 마음 아니까.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살 좀 빼야지. 더 연습하자. 서로가 말없이 정적이 땀방울이 얼굴에서 흘러내린다. 나는 옆에서 탁구로봇에 공 넣으며 눈치를 본다. 싸우는 건가? 내일부터 안 나오려나? 관장님이 돌아오자 레슨은 재개된다.


"그렇지. 그렇게 하라고. 잘하잖아. 잘하면서 왜 그랬어? 그래 그거라고. 자 게임에서 안 되는 거 뭐예요? 저 사람을 상대할 때는 서브를 짧게 넣고 3구는 포핸드로 끝내야지." 


"네! 감사합니다!"


아주머니들은 관장님에게 혼나면서도 눈을 반짝인다. 하나같이 백핸드 서브를 넣고 3구 결정타를 보낸다. 그 아주머니 트리오에게 나는 매번 당한다. 


당장 떠오르는 이름만 세 명. 

문숙 씨, 선희 씨, 난영 씨. 


문숙 씨는 람보처럼 강력한 몸을 가졌다. 강력한 몸으로 강 스매시를 때린다. 재작년 모 대회에 나가 4부로 승급했다. 탁구장 입구 벽면에 가장 큰 현수막으로 그 이름 석자가 걸려 있다. 람보 이문숙. 

선희 씨는 탱크 같다. 키는 작지만 거침이 없다. 당돌하다. 서브가 그녀의 주 무기다. 상대가 아무리 고수라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당당히 앞으로 간다. 피하지 않는 여자, 탱크 최선희. 

난영 씨는 가장 어려서 삼십대다. 일명 떠오르는 별. 내가 볼 때 관장님이 특별히 키우는 병기 같다. 비밀 병기랄까. 흡사 문숙 씨와 선희 씨의 장점만을 모아놓은 것처럼 탄탄한 몸이다. 아이는 아직 어리다. 맘마 유난영 


이 세명의 아주머니들 벽에 막혀서 나는 6부로 올라가지 못한다. 레슨에서는 남자들을 타파하기 위해 3구 5구 결정구를 연마한다. 이분들은 다 똑같은 뱃속에서 태어났다. 허영만의 타짜를 보면 이런 대사가 있다. '이것들은 다 같은 뱃속에서 태어난 강아지들이다.' 이처럼 거친 표현이 나온 연유는 주인공이 사기꾼을 만나고 난 뒤 다시 누군가를 새로이 협조자라 여겨 기대는데 그 역시 사기꾼이네. 또 사기꾼을 피해 다른 이를 만나는데 그도 사기꾼이다. 알고 보니 그 사기꾼들은 모두 한 사기꾼의 제자들 패거리였던 것이다. 이를테면 사기꾼 관장님이 사기꾼 교육생을 키운다. 같은 패턴의 사기꾼 하나에게 사기를 당한다면 딱 사기당하기 좋게 코드가 맞다는 것이고 코드가 맞으면 맞는 코드의 다른 사기꾼이 다른 사기를 꽂아도 다시 어떻게든 사기 맞는 결과물이 배출되는 것이다. 나는 레슨 받는 그들에게 딱 좋은 먹잇감이다. 내가 레슨을 선택한 이유는 여기서 나온다. 저도 같은 뱃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요. 제게도 반말 좀 기왕이면 욕을 좀 퍼부어주세요. 찰진 욕이 그립습니다. 괜찮습니다. 누구라도 좋아. 가르침을 주세요. 


공연히 혼나고 싶은 나날이다. 가만 추억을 더듬는다. 마지막 예비군 훈련을 언제 받았더라.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나라에서 버려진 몸. 전쟁이 터져도 총 한 자루 지급받을 수 없는 연배. 그래서 나는 총이 아니라 탁구채를 잡았다. 얼마나 많이 잡았는지 그립이 땀방울이 배어 눅눅하다. 군번은 까먹었지만 러버 교체일은 안 까먹었다. 제발 버리지 마세요. 이제 당신뿐이랍니다. 아직 뛸 수 있어요. 뛸 수 있다고 믿어주는 건 오로지 당신 하나. 고맙습니다. 


아직 성장할 수 있다고 지켜보고 소리쳐 주셔서.


"그것밖에 못해? 벌써 까먹었어? 정신 제대로 차리고 하란 말이야. 에이." 



PS.

얼마 전, 디비전 T4리그에서 위 세 분, 문숙 씨, 선희 씨, 난영 씨는 한 팀을 이뤄 파죽지세로 우승했다. 우리 지역 타 팀들은 손 한번 쓰지 못하고 당했다. 역시 강한 녀~들이 틀림없다. 그녀들은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탁구장에 나오지 못하다가 기념 촬영만 후다닥 하고 돌아갔다. 


아 근데 갑자기 군번이 스멀스멀 떠오르기 시작한다. 

역시 혼나며 배운 것들은 잘 잊히지 않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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