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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Oct 04. 2022

복식 한게임 할까요?

이리 오세요.




안녕하세요~우리 복식 한게임 할까요?

이쪽저쪽 이렇게 저렇게 편 먹으면 되겠네요. 



국어 샘이다. 국어 샘은 할머니다. 국어 샘은 국어 샘으로 퇴직하였기에 사람들은 그녀를 가리켜 국어 샘이라 부른다. 아무도 그녀의 이름이나 연락처를 모른다. 단지 뭐라 지칭할만한 것을 찾다 보니 어느 때부터인지 국어 샘이라 부르게 되었다. 국어 샘은 다른 이와 여차 저차 한 관계 맺기가 싫어서 연락처나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다고 했다. 정확히 어떤 연유인지는 모른다. 그냥 그렇게 둘러 들었다. 그래서 누구도 그녀의 연락처나 이름을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지만 평소 만나면 익숙하니 게임하는 경우가 많아서 남들처럼 가까운 사이라 여겼다. 잘 안다고 생각했다. 친하다고 생각했다. 


국어 샘은 평일 오전이나 주말 낮 탁구장에 오신다. 국어 샘은 단식 게임을 하지 않고 오로지 복식 게임만 한다. 복식은 4명이 필요하다. 국어 샘은 섭외의 왕이다. 

'이리 오세요. 저기 이 분이랑 편 먹으세요. 저는 이 분이랑 편 먹을게요. 우리 복식 한게임 해요.' 

그러면 섭외된 사람들은 복식 게임을 한다. 게임은 으레 한 판으로 끝나지 않고 복수전, 설욕전이란 이름으로 연속되기 마련이다. 샘은 오래전에 단식 게임도 하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복식만 하게 되었다. 듣기로 샘은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완치되었고 활발히 단식 게임을 즐겼다. 그러다 체력이 떨어져서 박자가 빠른 단식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다소 체력 부담이 덜한 복식을 하게 된 것이다. 단식은 한 명만 구하면 게임할 수 있지만 복식은 자신을 뺀 3명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양 팀 전력을 고르게 팀을 짜야한다. 그래서 국어 샘은 복식 섭외의 왕이 되었다.


복식 게임을 하다 보면, 더러 서브 순서가 헷갈릴 때가 있다. 리시브를 한 이가 다음 서브 차례가 된다. 서브를 하면 옆 사람과 자리를 바꾼다. 자리 바꿔서 들어간 이가 리시브를 하게 된다. 리시브를 하고 나서 서브를 한다. 그리고 2세트가 되면 반대편 팀이 서브권을 넘겨받는다. 이런 순서를 기막히게 기억했다가 엇갈리는 순간 "거기 서브 차례예요"라고 교통정리를 해주신다.  

거기다 득점 상황도 꼼꼼히 챙긴다. 복식 게임은 보통 심판이 없다. 그래서 누군가 득점 현황을 말해야 하는데, 다들 플레이에 집중하느라 침묵할 때 국어 샘이 나서서 카운터를 말한다. 몇 대 몇, 다음 서브 바꾸시고요. 이런 식이다. 그래서 그녀와 같이 복식 게임을 하면 복잡하지 않고 깔끔하니 진행이 순조롭다. 또 게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늘 기분 좋게 믿음이 갔다. 역시 선생님 출신이라 숫자에 강하구나. 그리 생각했다. 


국어 샘의 서브는 이른바 주먹 서브다. 토스가 손바닥 위로 16센티미터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주먹을 움켜쥐었다가 곧장 스윙하신다. 그러면 깜짝 놀라 리시브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마저도 연습이 된다면서 묵묵히 받아낼 뿐이다. 다들 저보다 높은 연배와 구력을 존중하는 생각이었을 터. (서브 규정은 국어 샘이 탁구를 시작한 이후 생겼다.)

국어 샘의 라켓은 펜홀더 다이남 스페셜이다. 유명한 라켓이다. 초보가 쓰는 것이 아니다. 라켓을 보니 그다지 오래된 것은 아니다. 새것 같은 느낌이다. 아마 복식 게임만 하다 보니 많은 게임을 소화하지는 못하였을 터다. 다만 펜홀더 구력이 깊다. 

한편 국어 샘의 강점은 수비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스매싱을 때려도 저 멀리 뒤에서 어떻게든 받아내신다. 이것도 받아내고 저것도 받아낸다. 가끔 나는 아주 세게 스매싱을 날렸고 국어 샘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 눈을 질끈 감고는 "어이쿠야" "나이스"라고 외치고는 했다. 그냥 그 장면이 가슴에 머무른다. 


"국어 샘 오셨다."

"또 복식 하자고 오시겠다." 

"어떡하지?"

역시나 국어 샘이 다가왔다. 

"우리 복식 한게임 해요." 

언젠가 한 번은 "나중에 하면 안 될까요? 지금 중요한 게임을 하고 있어서요." 하고 미루게 되었다. 국어 샘은 사람들 뒤 벤치에 앉아서 물끄러미 기다렸다. 기다려도 사람들은 국어 샘을 찾지 않았다. 복식 하자고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다. 국어 샘은 기다리다 슬그머니 집에 돌아갔다. 중요한 게임은 결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다 몸이 아파서 탁구 치러 나오지 못했다. 탁구칠 몸이 되지 않아서 눈물까지 났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 국어 샘은 보이지 않았다.

주말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국어 샘이 안 보인 지 대략 2주쯤이 되었다.

국어 샘이 요새 안 보이네?

사람들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많이 아프시대요.

아, 그렇구나. 얼른 나아야 할 텐데.

누군가가 말하길, 암이 재발했다고 했다. 전이되었다고 했다. 항암 중이라고 했다.

그래도 금방 나아서 탁구장에 오시겠지?

오시면 그때 복식 하면 되겠지?


중요하지 않은 게임이 끝났지만 국어 샘은 보이지 않았다. 주말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토요일 한낮인데도 국어 샘이 없다니? 그래서인지 탁구장에는 복식 하는 사람이 없었다. 국어 샘이 없어서 그런지 복식 게임도 없었다. 아직 많이 아프신가? 궁금했지만 누구 하나 물어볼 이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평일 낮 젊은 청년이 탁구장에 왔다. 

사물함에서 물건을 챙겨가고 싶다고 했다. 

갑자기 물건이라니? 

무슨 소리야? 

.

.

.

아들이라고 했다. 

아들은 어머니의 유품을 찾으러 온 거라고 했다. 

평소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탁구장 사람들이 같이 탁구를 쳐 줘서 너무 즐거웠다고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벌써 일주일 전이라고 했다.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말을 전해 듣는 순간... 몸에 힘이 쑥 빠져나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식.


탁구장 사람들이 같이 탁구 쳐줘서 즐거웠다니... 아닙니다, 저도 즐거워서 같이 친 거뿐인데... 그나마도 열 번 말하시면 한번 정도는 튕겼는데, 중요한 게임도 아니면서 미루었는데, 갑자기 미치도록 후회되었다. 그리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탁구 쳤는데, 금세라도 다시 돌아오실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완치되어 나오실 건데 왜 아들이...


나는 어쩌자고 스매싱을 그렇게나 강하게 때렸을까. 선생님의 부고를 듣고는 곧장 든 생각이다. 늘 밝은 웃음을 지으셔서 건강하신 줄로만 알았다. 나는 왜 한판이라도 더 복식 게임을 하지 않았을까. 두 번째 든 생각이다. 이제 앞으로 그녀와의 복식 게임은 하지 못하겠구나. 복식 할 때마다 떠오르겠지. 세 번째 든 생각이다. 나는 주말 한낮이면 출입구 앞 평상을 보며 그녀를 떠올릴 터다. 장갑에 모자에 하얀 얼굴 하얀 미소로 맞이하면서 


"우리 복식 한게임 하실래요?"


라고 말하는 그녀를 생각하겠지. 우울한 나날, 힘없는 나날, 정작 중요한 게임은 그녀와의 복식이었구나. 네 번째 든 생각이다.


탁구장 밴드에 그녀의 부고 소식이 올라왔다. 그리고 이내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나는 사람들의 명복을 비는 댓글을 보면서, 그 속에 끼어 한 줄 댓글 다는 게 힘에 겨워서, 지금에야 이렇게 그녀에 대한 기억을 담아 담담히 인사드리고자 한다.


선생님! 그동안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이 게임하자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덕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한다고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환한 미소로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탁구 쳐서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릅니다. 나중에 때가 되면 그때는 제가 먼저 한게임 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오래도록...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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