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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Nov 03. 2022

붕어빵 기다리는 시간

진주 상봉동은 붕세권




붕어빵 아자씨 출입구




투명 여닫이문 너머 그가 보인다.


나는 자전거를 세우고 모자를 벗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인사하면서 나는 처음 온 것이 아님을 알아주라는 듯 친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자 그가 알아본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늘 붕어빵 틀 앞에 앉아있다. 그가 사장님이다. 틀 앞 철제 위에는 두툼한 붕어빵들이 한가득 쌓여있다. 그의 뒤 가게 안 테이블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사람들은 행여나 내가(늦게 온 주제에) 그네들의 붕어빵을 선점할까 봐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사장은 나지막이 


"몇 개 필요하세요?"


라고 물어왔다. 나는 


"팥 스무 개에 슈크림 열개요"


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가 대뜸


"형님!"


이라고 불렀다. 나는 놀라서


"네?"


라고 물었다. 


"형, 형님!"


"아, 네, 네!"


그러자 그는 엉덩이를 들어 (다른 이가 들을세라) 속삭였다. 


"다음부터는 전화 주시고 오세요."


"저, 전화요?"


"네, 많이 기다리셔야 하잖아요. 미리 전화 주시면 손님이 있든 말든 제가 챙겨드릴게요."


나는 알고 있었다. 앞서 붕어빵을 사러 왔을 때, 주문하고 가게 안 의자에 앉아 기다릴 때였다. 수많은 이들이 붕어빵을 사러 왔다가 몇십 분 정도는 기다리라는 사장의 말에, "에이, 뭘 그리 오래 기다려야 해?"라면서 돌아가던 것을 보았다. 그네들은 기본 열개 단위로 주문했다. 한번 사는 김에 많이 사는 것이다. 

여기 붕어빵 가게에서 붕어빵을 사기란 정말 어렵다. 늘 손님이 끊기지 않고 온다. 단박에 "붕어빵 몇 개 주세요" "네, 여기 받으세요"라고 거래된 적이 없었다. 언제나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곳. 안에서 기다리다 보면 쏘아볼 수밖에 없는 곳. 상호명은 [붕어빵 아자씨]다. 아저씨를 일부러 아자씨로 표기했다. 그 속에 어딘가 해학이 엿보인다. 


실제 사장님은 젊다. 언뜻 보기에 서른 살 언저리로 보인다. 더러 한쪽 눈에 실핏줄이 터져 있는데 그것이 어딘가 범상치 않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한편 그는 말이 많은 편이다. 많은 말로 인상을 부드럽게 만든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자, 지금 손님이 왔다. 손님이 붕어빵을 주문한다. 


"아자씨, 붕어빵 주세요."


"네, 누나, 뭐뭐 드릴 까예?"


"팥 서른 개에 슈크림 서른 개요. 제가 세 집에 나눠 줄 건데요. 각각 팥 열개에 슈크림 열 개씩 묶어 주세요."


그러자 사장은 펜을 들어 벽에 붙은 보드판에 쓴다. 


"잠깐, 천천히 다시 한번 말해 주이소예. 제가 지금 머리가 복잡해서예."


"팥 열개, 슈크림 열 개 세 봉지로 나눠주세요."


사장은 꼼꼼히 보드판에 쓴다.


"어디 보자, 젊은 누나가 주문한 팥 열개 슈크림 열개씩 세 묶음... 제가 있잖아예, 머리가 나빠서 이리 적는 게 아니고예, 주문도 많고예, 요새 사는 게 바빠서 정신이 없어서 적는기라예, 오해하면 안 되시고예."


그러면 아주머니는 (50대 초반으로 보임) 


"네, 이해해요. 이렇게나 손님이 많으니 적으셔야죠"


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내 사장의 일장 주절거림이 이어진다.


"요즘 날씨가 찹찹해지니까예, 붕어빵이 완전 날개를 달고 팔리는기라예. 주문이 밀려서 화장실도 못 간다니까예. 근데 그게 항상 그런 게 아니고 저녁때만 그래예. 낮에는 또 얼마나 한가하다고예."


아주머니는 가만히 듣다가 붕어빵 굽는 틀을 보고는


"근데 아자씨, 붕어빵 틀이 다른데 보다 훨씬 크네요?"


라고 묻는다. (손님들은 곧잘 이런 질문을 쏟아낸다. 실제 빵틀이 크다.)


"맞아예, 이게 옛날에 제가 뭣도 모를 때 주문 제작한 건데예, 다시 줄일 수도 없고 고마 좋은 기 좋은 거다 싶어서 계속 쓰고 있어예. 붕어빵 틀이 커서 그런지 굽는 시간도 오래 걸려예."


그 말을 듣던 아주머니가 반죽 넣는 모양새를 보더니


"헉! 아자씨! 팥이랑 슈크림을 그렇게나 많이 넣어요? 붕어빵 터지겠어요?"


라고 놀라 말한다. 사장님은 특유의 주절거림으로


"원래 제가 성격이 꼼꼼한 데가 있어서예. 요래 꼬리까지 팥이 구석구석 들어가야 성이 차예. 누나처럼 작은 입을 가진 사람이라도 한 입 물면 그 한 입에도 팥이 묻어 나와야지 맛나지 않겠어예? 아주 작게 베어 물어도 그 안에 슈크림이 딸리 나와야 맛난 기라예. 그게 제 철학이라예"


라고 말한다. 한마디 물으면 두 세 마디 대답이 정답게 돌아오니 손님도 얼결에 말이 많아지는 식이다. 그러면 안에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다 같이 그들의 대화를 듣는다. 기다리면서 즐긴다. 무엇을?


붕어빵 굽는 소리. 타닥타닥 틀이 돌아가는 소리. 붕어빵 굽는 장면. 붕어빵 사러 오는 사람. 붕어빵 주문하는 말. 붕어빵 사장이 대답하는 말. 한차례 붕어빵이 구워져 일제히 철제 틀에 가지런히 올려지는 장면. 다시금 반죽을 넣고 빵틀마다 가득가득 팥과 슈크림을 넣는 모습. 그런 장면을 보며 감탄하는 소리. 


이윽고 차례가 되어 사장이 부른다. 그의 앞에 다가간다. 종이봉투 양쪽 끝을 찢어 공기구멍을 만든다. 완성된 붕어빵이 하나하나 종이봉투에 담긴다. 다섯 개씩 담아 종이봉투 두 개를 비닐봉지에 넣는다. 그런 비닐봉지 세 개를 받아 든다. 서른 개다. 만 이천 원을 건넨다. "수고하세요"라고 말하며 씩 웃는다. 그도 웃는다. 볼 때마다 정다운 사장님이다. 


나는 자전거 핸들 양쪽에 두 개 하나씩 봉지를 건다. 그리고 붕어빵이 식을세라 신나게 달린다. 집에 오는 길. 자전거가 신호에 설 때마다 붕어빵 냄새가 풍겨 난다. 냄새가 올라와 코끝에 맴돌 때면 근처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만 같다. 쳐다보며 하나 달랠까 봐 나는 도도히 모른 척 신호등만 본다. 바쁘게 입김을 불며 집에 도착한다. 


도착해서 딸아이와 아내와 나 먹을 거 합쳐서 열 마리 빼고 스무 마리를 소분한다. 각기 다섯 개씩 비닐에 담아 냉동실에 넣는다. 그리고 나중에, 어느 저녁 입이 심심할 때 비닐을 꺼내 에어프라이에 돌린다. 그러면 이른바 '겉바속촉'이 된다. 겉은 바삭 딱딱하지만 속은 촉촉 부드럽다. 나는 평화로운 저녁,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본다. 소파 옆 테이블에 붕어빵을 둔다. 맥주 한 캔을 꺼내 작은 유리컵에 붓는다. 그리고 맥주 한 모금에 붕어빵 한 점을 떼먹는다. 아무리 작게 베어 물어도 팥이 묻어 나온다. 팥은 얄팍한 맛이 아니라 짙고 무거운 맛이다. 한 점 한 점마다 제대로 된 한 점을 먹는다. 제대로 된 한 점에 나는 입맛을 다시며 제대로 된 한 잔 맥주를 마신다. 티브이를 본다. 


아아~ 나 올겨울 붕어빵 아자씨에 푹 빠져 지낼 것만 같다. 


어떡하지? 지금 쓰면서도 붕어빵을 가득 사 오고 싶은 욕구. 붕어빵 굽는 시간 가게 안에서 기다리고 싶은 마음. 기다리는 시간. 나만의 퇴폐로운 한때가 아닐 수 없다. 




붕어빵 아자씨 빵틀과 철제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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