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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Nov 18. 2022

호떡이 먹고 싶어서 왔습니다

안 받아 불랍니당






오래된 호떡.


오래전 진주 칠암동 고속버스터미널 옆 골목에 호떡 할머니가 있었다. 작은 포장마차였다. 할머니는 늘 미리 호떡을 구워두었다. 호떡은 철판 위 작고 동그란 항아리 속에서 차곡차곡 보관되었다. 항아리에는 뚜껑을 덮어두어서 수분이 날아가지 않았다. 할머니 호떡 주세요. 뚜껑을 열면 촉촉한 호떡이 그 순서를 기다렸다. 그려 몇 장이나 필요 혀요? 대충 보니 대략 스무 장 정도가 있었다. 호떡을 포장마차 앞에서 서서 먹으면 한 장 두장이 한계지만 포장해서 들고 갈 때는 5장 10장이 기본이었다. 호떡은 얇았다. 포개면 이것이 5장인가 10장인가 분간되지 않았다. 나는 열 장씩 사갔다. 사가서 나눠먹었다. 포개진 호떡을 손으로 한 장 한 장 떼어내는 재미가 있었다. 얇지만 갖출 건 다 갖추었다. 호떡의 양쪽 껍질도 굳건히 살아있어서 그 안에 고물이 새어 나오지 않았다. 표면이 비교적 깨끗했다. 그리고 호떡은 촉촉하고 은은했다. 입에 가져가 입술사이로 머금어보면 따뜻하니 온기가 전해졌다. 그런 호떡의 여러 감촉 중에서 특히나 촉촉했던 점이 인상적이다. 그 촉촉함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기름기? 수분? 아니면 맞닿은 혀의 침? 항아리의 수증기? 가늠해보면 여러 가지가 섞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기름기다. 기름기 묻은 호떡이 항아리에 담긴다. 그 위에 호떡이 한 장 두 장 가지런하게 쌓인다. 그렇게 항아리 안에서 기다리다 보면 어떤 열기가 배어 나온다. 열기는 뚜껑에 막혀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내려앉아 다시금 호떡을 감싼다. 차츰 기름 성분이 물로 변한다. 나중에는 호떡을 손으로 집어 먹어도 번들번들 기름기가 묻어 나오지 않는다. 마치 물로 구운 것처럼 호떡은 하늘하늘 부드러웠다. 열 장이 서너 장 같던 호떡. 포장마차는 매일 같은 자리에 있어서 언제든 먹을 수 있었다.




새로 만난 호떡.


올초 겨울부터 초여름까지, 나는 사천시 곤명면 정곡리 완사 장날 시장에서 호떡을 사 먹었다. 호떡은 1500원으로 씨앗호떡이다. 호떡은 항아리 호떡보다 더 크고 딱딱했다. 손으로 집으면 기름기가 잔뜩 묻어 나왔다. 그래서 종이컵에 담아 먹는다. 자주 사 먹다 보니 호떡 아저씨와 친해지게 되었다. 아저씨는 미리 호떡을 만들어두지 않고 내가 주문을 하면 그제야 반죽을 뚝 떼어, 잠깐만 기다리시오잉 하고 철판에 구웠다. 굽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호떡은 장날에만 오는데 아저씨는 집이 전남 순천이라고 했다. 나더러 순천 중앙시장을 아느냐길래 모른다고 했는데 거기 자기만의 가게가 있다고 했다. 왜 그렇게 멀리서 오시는 거예요?라고 물으니 하동 진교와 사천 곤양, 곤명 장까지는 자기 영역이라고 했다. 순천 어딘가에서 호떡 굽는 기술을 배워서 이제는 자신이 가르치는 입장이라고 했다. 그가 키운 제자도 벌써 몇이나 된다고 했다. 그들이

또 근방 여러 장날에 장에서 호떡을 판다고 했다.


장날이면 나는 호떡 아저씨를 찾아갔다. 아저씨는 "어~ 오셨소잉? 오늘은 일찍 왔네요잉. 지금 반죽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시오잉"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른 아침부터 호떡 차가 왔나 안 왔나 보다가 멀리서 보이면 쏜살같이 달려가곤 했다.


호떡은 하나 먹으면 아쉽고 두 개 먹으면 배불렀다. 아침 시간, 하나 먹으면 그런대로 괜찮은데 두 개 먹으면 점심때 영 입맛이 없었다. 생각 끝에 "그냥 이천 원짜리로 하나 만들어주세요"라고 했는데 호떡 아저씨가 선뜻 "어, 그러소잉"이라고 해서 나는 나만의 이천 원짜리 호떡을 먹게 되었다. 이천 원짜리는 아쉬움과 배부름의 경계선에서 들락날락했다. 호떡이 종이컵에 차고 넘쳤지만 어쨌거나 호떡은 하나이기에 점심 식사에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으리라,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장날이 아닌 날에도 호떡이 먹고 싶었다. 완사 장 전날, 하루는 차를 몰아 사천시 곤양 장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호떡 차를 발견하고 아저씨에게 다가가니 "아니, 여기는 웬일이소잉?"이라고 감격에 차 물었다. 나는 "하루를 더 참지 못하고 호떡이 먹고 싶어서 이렇게 왔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우리는 함께 와하하 웃었다. "이렇게 멀리까지 호떡을 사 먹으러 오니까잉, 내 특별히 더 크게 만들어줄라께요"라면서 아저씨는 큼직한 호떡을 내밀었다.  


6월의 마지막 장날.

여느 때처럼 내가 이천 원짜리 호떡을 주문하자 아저씨가 말했다. "여름에는 안옵니다잉. 가을에 추석 지나고 올거요잉. 오늘이 여름 전 마지막 장사입니다잉." 나는 눈을 끔벅거리며 물었다. "정말 추석 지나고 오시는 거죠? 그때까지 어떻게 참죠?" 호떡 아저씨는 웃으며 말했다. "내 오늘은 호떡 값을 안 받아 불랍니당!" 전라도 사투리의 강한 어투. 안 받아 불랍니닷 하고 고개를 홱 돌리는데 순간 그의 단호한 결연 같은 게 느껴졌다. 나는 "그래도 받으세요" 하고 돈을 꺼냈는데 그가 "됐습니다잉. 그간 많이 사주셨잖아요잉. 오늘 하루는 제가 살랍니당! 안 받아 불랍니당" 하면서 다시금 고개를 흔드는 게 아닌가. 나는 그의 기백에 감히 말을 하지 못하고 호떡만 받아 들었다. 꼭 오셔야 해요, 라고 내가 인사하자 그는 "여름 잘 보내소잉"이라며 미소 지었다.




지금 겨울이 코앞이다.


그런데도 아저씨는 오지 않았다. 추석이 지나 11월 중순이 되었는데도 오지 않는다. 어쩌면 업을 바꾸었거나 좀 더 번화한 시장을 뚫었는지도 모른다. 언제고 그가 한 말이 떠오른다. "하동 진교 장에 올 일이 있으면 여기 전화 주고 오시오잉." 그래, 그는 내게 명함을 건네었다. 문제는 내가 그 명함을 어디에 뒀는지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하동 장까지는 올지도 모른다.  


언제부턴가 칠암동 고속버스터미널 옆 포장마차가 보이지 않았다. 호떡 할머니도 없다.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가봐도 안보이길래 어느 시점부터는 가지 않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촉촉함이나 은은함이 아니라 호떡이 보관되어있던 그 항아리만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호떡은 가끔 사 먹는 간식이지만 호떡을 먹기 전 손에 들었을 때 그 기대감을 잊지 못한다. 기대에 차 입을 벌리는 장면에서, 나는 그 순간 퇴폐로운 행복을 느낀다. 호떡 파는 포장마차 할머니와 호떡 차 아저씨가 내내 그립다.


촉촉한 호떡과 씨앗 호떡 모두 떠났다. 촉촉한 호떡은 찾아가도 만날 수 없지만 딱딱한 호떡은 혹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동 진교 장날에 맞춰 한번쯤 찾아가리라. 찾아가 아저씨에게 말할 것이다.


저만의 호떡 하나를 만들어주세요, 꼭 먹고 싶습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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