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머피 Nov 21. 2022

콩나물 국밥 한 그릇

콩나물 국밥에 콩나물은 몇 가닥이나 들었을까?





김치 콩나물 둘에 그냥 콩나물 하나요.


아내와 나는 김치 콩나물 국밥이고 딸아이는 그냥 콩나물 국밥을 시켰다. 김치 콩나물 국밥은 그냥 콩나물에 김치와 오징어 분말을 넣은 것이다. "여기 국밥 왔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콩나물 국밥이 나왔다. 주말 아침. 상쾌한 산책. 가족끼리 나들이. 그 중간에 여기 콩나물 국밥집이 자리한다. 아내는 자그마한 앞접시에 국밥 몇 숟갈을 떠다가 후후 식혀서 먹는다. 딸아이도 마찬가지다. 앞접시에 알알이 놓인 콩나물과 밥알은 금방 열기를 잃는다. 국물과 돌솥이 없어서다. 돌솥은 국물이 팔팔 끓었을 때를 간직한다. 마치 사람이 목욕탕 온탕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돌솥을 벗어나면 식어버린다. 또한 국물도 서로가 의지하는 존재인데 따로따로 떨어져 있으니 서로 간의 교감이 없어 금세 식는다. 국물이 없는 콩나물은 데친 콩나물처럼 축 늘어진다. 그것을 아내와 딸아이가 잘근잘근 씹어서 먹는다. 약간이나마 남은 열기는 바쁜 젓가락질로 깍두기와 함께 와그작와그작 사라진다. 아내가 "냠냠~ 맛있는데 당신 왜 안 먹고 그러고 있어?"라고 묻는다. 나는 콩나물 국밥이 담긴 돌솥에 가까이 얼굴을 가져가 그 온기를 느낀다. 국물 한 스푼을 살짝 맛보는데 역시나 뜨겁다. 뜨거워서 그 맛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도 섣불리 앞접시에 옮기지 않는다. 나는 콩나물 국밥 한 그릇, 돌솥의 온기 자체를 만끽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그렇게 내가 콩나물 국밥이 뜨거워 어물쩍 미적거리니 아내는 "당신 또 콩나물이 몇 가닥인지 세고 있지? 고만 좀 세~"라고 말한다. 나는 그때마다 "어이쿠 제가 감히 이렇게나 많은 콩나물을 먹어도 될는지요?"라고 반문한다. 마치 연극 대사 같다. 아내는 "못 말려 정말~" 하고는 고개를 흔든다. 나는 아랑곳 않고 계란을 깨 넣어서 돌솥 저 아래로 밀어 넣는다. 국물과 밥알과 콩나물 밑에서 서서히 익기를 고대한다. 더 이상 외부에서 돌솥으로 열기를 더해주지 못하는 현실. 돌솥에 남은 열기로 아무쪼록 잘 익어주기를 바란다. 나는 국밥을 들여다보며 생각한다. 콩나물이 참 많구나. 대체 몇 가닥이나 될까? 나는 왜 콩나물 개수를 세어 댈까?

.

.

.


옛날 어느 고을에 한 대감마님이 있었다. 


그 고을은 콩나물로 유명한 곳이었다. 대감마님은 소문난 구두쇠다. 하도 자린고비 짓을 하다 보니 콩나물 국밥에도 일일이 참견을 했다. 대감마님 집은 콩나물 국밥을 주로 해 먹었는데 콩나물 개수를 두고 그 등급을 나누었다. 하루는 대감마님이 아침 상을 받아보고 말했다.


"여봐라, 개똥 어멈아~ 여기 내 국그릇에 콩나물을 어이하여 이다지도 많이 넣었느냐?"


"네이~~ 대감마님~ 콩나물이 조금 남아서 남는 건 모두 대감마님 국에 넣었습니다요."


개똥 어멈이 대답하고는 부들부들 떨었다.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지 잘 알기 때문이다.


"옛끼! 개똥 어멈아~ 내 너를 어릴 적부터 거두어 재워주고 먹여주었건만 여즉도 내 방식을 모르더냐 말이닷!"


"아이고, 아닙니다요 대감마님! 쇤네가 잠시 미쳐서 깜빡했지 뭐입니까요. 죽을죄를 졌습니다요."


"자, 내가 다시금 일러주마. 앞으로 콩나물 국을 끓일 때에는 1등급(대감마님과 어르신) 10가닥이 마지노선이노라. 2등급(마누라와 친구)은 7가닥, 3등급(자식과 귀한 손)은 5가닥, 4등급(남자 노비와 천한 손)은 3가닥, 5등급(여자 노비와 그 자식과 거렁뱅이와 스님)은 1가닥이노라. 알겠느냐?"


"네~ 네~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잘 알고 있습지요."


개똥 어멈은 마당에 엎드려 싹싹 빌었다. 대감마님은 크험! 헛기침과 함께 국그릇을 휘휘 저어서 콩나물 가닥을 세었다. "허허, 콩나물 열 가닥씩만 먹는 게 내 몫인데, 여기 스물 세 가닥이나 들어있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앞으로 내 몫을 넘은 은공 열 세 가닥 치를 무엇으로 갚을꼬, 큰일이로다"라고 한탄하며 식사를 했다.




하루는 구두쇠 대감 집에 지나가던 길손이 찾아왔다. 


"이리 오너라. 내 과거시험을 위해 한양 가는 길이 오다만 하룻밤 묵어가도 되겠소이까?"


라고 물었다. 개똥 어멈이 후다닥 안채로 달려가 대감마님께 사정을 아뢰니 대감마님은 흔쾌히 그러라며 허락했다. 


"어서 오시오. 내 아들도 며칠 전 과거를 보기 위해 떠났소만 꼭 내 아들을 보는 것과 같구려"


라며 환대했다. 


"자, 저기 사랑에 짐 푸시고 여기서 같이 저녁이나 드십시다" 


하고 대감마님이 따뜻이 맞아주니 길손도 안심하고 자리에 앉았다. 이윽고 밥상이 들어오고 밥그릇 옆에 국그릇이 놓였다. 이날도 어김없이 콩나물 국이었다. 길손이 밥상 앞에 다가가 콩나물 국을 보는데, 표정이 어딘가 벌레를 본 것처럼 꺼림칙하다는 낌새였다. 가만 보니 대감마님의 국에는 콩나물 열 가닥이 있는데 반해 자신의 국에는 고작 세 가닥이 있는 게 아닌가. 그마저도 콩나물 대가리가 붙은 건 두 가닥뿐이었다. 길손은 의아한 얼굴로 개똥 어멈을 내려다보고 대감마님을 올려다보며 갸우뚱거렸다. 혹여 국물을 먼저 뜨고 콩나물 넣는 것을 잊었는가 싶었다. 그 모습을 보고 대감마님이 물었다. 


"여보시오, 길손~ 뭐가 그리 궁금하신가?"


그러자 길손이 


"대감! 여기 콩나물 국에 콩나물이 겨우 세 가닥만 있으니 어인 일인가 하옵니다. 제 평생 이리 빈약한 콩나물 국은 처음 봅니다"


라고 말했다. 대감마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


"아, 이건 예로부터 내려온 우리 집 법도인데 그려, 콩나물 세 가닥은 좀 너무 했구려, 여봐라~ 어멈아~ 내가 말했지 않느냐? 천한 손이 세 가닥이라고! 여기 계신 길손은 장차 과거에 급제하여 귀하신 분이 될 인물인데, 실수를 했구나. 그렇다고 없는 콩나물을 다시 넣어다가 끓이기는 번거로우니 그냥 내 콩나물을 두 가닥 나누어 주겠소"


라고 말하고는 젓가락으로 자신의 국에서 콩나물 두 가닥을 집어 길손의 국그릇으로 넣어주는 게 아닌가. 옛다 어서 드시오, 내가 큰 턱을 내는 거라오, 하는 모양새였다. 길손은 기가 막혀 더 말하지 못하고, 아이고 콩나물이 얼마나 귀하면 이리 박한 대접을 다할꼬, 하면서 한가닥 한가닥 소중히 씹어 먹었다고 한다. 밥 한 숟갈을 먹고 우적우적 씹다가 말미에 콩나물 한 가닥을 입에 넣었다. 넣고는 잘근잘근 반쯤 씹다가 앞서 먹은 밥만 삼키고 또 밥 한 숟갈을 먹어 입속에 남은 콩나물 반가닥을 반찬삼아 같이 먹었다. 그렇게 열 숟갈에 콩나물 다섯 가닥을 같이 먹으니 콩나물 한가닥 한가닥이 여느 집 열 가닥 스무 가닥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길손이 대청마루 아래로 내려다보니 개똥 어멈과 그 자식들은 저마다 한 가닥씩 든 콩나물 국을 먹고 있었다. 자식들은 콩나물 한가닥을 감히 씹지도 못하고 상전 모시듯 받쳐 들어 망설이며 보았다. 보면서 조심스레 빨면서 먹었다. 밥 한 숟갈에 콩나물 한번 빨고 밥 두 숟갈에 콩나물 두 번 빨고 나중에는 녹아내려 형체도 보전되지 못한 콩나물이 순식간에 사라져 갔다. 아이고 내 소중한 콩나물 한 가닥 어디로 가버렸소~~ 자식들은 국물이 바닥을 드러낼 즈음 국그릇 밑에 돌덩이를 받쳐 기울게 하여 숟가락으로 퍼먹었다. 국물 한 모금이라도 남기지 않으려는 듯 세로로 좁고 깊이 모인 국물을 먹었다. 숟가락이 국그릇을 박박 긁는 소리가 울려 퍼지다 잠시 후 멈췄다. 이윽고 개똥 어멈과 아이들은 부러운 눈으로 길손의 콩나물 국을 바라보았다. 그런 눈빛에 길손은 무려 다섯 가닥이나 든 콩나물 국이 외려 감사하게 여겨져 더 맛있게 먹었다. 

.

.

.


나는 어릴 적 '콩나물 고을에 사는 구두쇠 대감마님'에 대한 동화를 읽었다. 그때부턴가 집에서 콩나물국이 나올 때면 한가닥 한가닥 세어가면서 먹고는 했다. 세어가며 먹으면 내가 이렇게나 높은 신분인가 싶어서 만족스러웠다. 




고개를 드니 아내가 돌솥을 플라스틱 받침대에 기우뚱 세워서 숟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내가 "당신! 부끄럽다고 그러지 말랬잖아?" 하고 말하자 "너무 맛있는 걸 어떡해~"라며 연신 고개를 박고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었다. 

나는 여러 국밥집에서 국밥 먹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더러 국그릇을 비스듬히 받쳐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알뜰하게 떠먹는 모습. 그 속에서 나는 개똥 어멈의 자식들을 떠올렸다. "여보~ 내가 예전에 콩나물 대감마님에 관해 얘기해줬잖아, 당신 개똥 어멈 같아 보여"라고 내가 말하니 아내는 "개똥이고 자시고 자고로 국밥을 요로코롬 마지막까지 살뜰하게 먹어야 맛난 거라우"라고 대꾸했다. 나는 버텼다. 국그릇을 비스듬히 세우고 싶지만 개똥이(개똥 어멈의 자식)들이 생각나 꿋꿋이 참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밥 그릇을 결코 세우지 않고 비효율적인 숟가락질만 했다. 세우지 않으니 국물은 넓은 면에 얕게 퍼져서 한 번의 숟갈질에 조금씩만 담겼다. 그러니 하지 않아도 될 노동을, 숟가락질을 그놈의 체면을 위해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국밥 그릇을 세우고 먹기 시작했다. 좀 더 효율적인 숟가락질을 하고 싶었다. 어디 가서 국밥 좀 먹을 줄 아는 이처럼 보이고 싶었다. 처음에는 국밥 그릇을 세우고 주위를 두리번 눈치를 봤다. 혹 누군가 콩나물 세는 대감마님 이야기를 아는 자가 보고서 비웃을까 두려웠다. 저저~저것 좀 보라지~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개똥이처럼 먹는 거 좀 봐, 라면서 손가락질이나 하지 않을까 겁이 났다. 그런데 쭈뼛거리면서도 국밥 그릇을 세워 먹으니 정말이지 없는 입맛이 되살아났다. 이게 국밥 먹는 맛이구나~ 간절한 맛이구나~ 했다. 진작 세울걸, 왜 내가 대감마님 눈치를 보고 있었지? 


대감마님~ 저는 몇 가닥 정도 먹으면 될까요? 

그동안 콩나물 국밥 한 그릇 먹을 때마다 대감마님의 허락도 받지 않고서 무려 수십 가닥을 마구마구 먹어댔으니 제 입이 얼마나 호강했는지 모릅니다요. 거기다 김치와 오징어까지 넣어 먹었지요. 시대가 변했으니 이제 그 정도는 먹어도 되지 않겠습니까요? 예끼! 이 사람아 그렇다고 아까운 콩나물을 그리 무작스럽게 먹어치우면 되겠는가? 한가닥 한가닥 소중히 곱씹으면서 먹어야지. 좋은 시대에 살면서 감사한 줄이나 아시오, 라고 꾸짖을 것만 같다. 


대감마님~ 정말 궁금합니다요.

저는 콩나물이 몇 가닥이나 허락되는 등급인가요?


콩나물 국밥을 먹을 때마다 이런 질문을 반추한다. 그러면 더 맛있는 게 사실이다. 주말 아침이면 가는 곳. 콩나물 국밥이 그리운 계절. 전날 먹은 것으로부터 속이 확 풀리는 매력. 너무 뜨거워서 곧장 먹지 못하는 기다림. 국밥 속 계란을 밀어 넣으며 가만히 들여다본다. 계란을 따라 뭉근히 콩나물 국밥 속으로 빠져든다. 때마다 나는 개똥이가 되어 콩나물 국밥을 신나게 먹는다. 동시에 콩나물 국밥집에서 최고 어르신 대감마님이 된다. 콩나물 국밥을 먹는 장면에서 나의 퇴폐로운 한때가 연출된다.




문득 콩나물 국밥을 열심히 먹는 아내와 딸아이가 예쁘게 보인다. 우리는 콩나물 국밥집이 많은 콩나물 고을에 산다. 이번 주말에도 콩나물 국밥 한 그릇 풍족하게 먹으러 가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호떡이 먹고 싶어서 왔습니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