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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Nov 22. 2022

초코파이와 눈 마주치면

이때까지는 쟤가 나를 보더라도 나는 쟤를 인지하지 못했다





무심코 초코파이를 보았다.


마트에서 카트를 밀고 가는데 '할인' 'sale'이라는 문구와 함께 초코파이가 보였다. 초코파이는 할인코너 맨 앞에 자리했다. 맨 앞이라는 건 할인에 있어서 그만큼 자신 있다는 소리일 터. 자신 있다는 말은 아마 통 크게 쏜다는 뜻일 테고, 쏜다는 것은 어쩌면 그저 주는 것과 다름없다는 말일 터. 내 귀에는,

 

"오늘은 초코파이예요, 초코파이를 드리는 날이에요, 초코파이를 다시 만나보세요" 


라고 들리는 듯했다. 그 말인즉슨 공짜에 가깝다는 말일 테고 공짜에 가까운 것을 발견한 나는 운이 억수로 좋다는 것으로 귀결되는데 결론짓자면 뜬금 심장이 벌렁벌렁 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간 수없이 지나쳤던 초코파이 앞에서 이토록 갑작스러운 기분에 젖어드는 건 어인 연유인지? (언제나 무심한 척 냉랭했잖아?) 별안간 눈 마주친 초코파이. 지금 나 보는 거니? 이때까지는 쟤가 나를 보더라도 나는 쟤를 인지하지 못했고 내가 저를 보더라도 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마치 지금에야 딱 운명처럼 고개 들다가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나는 초코파이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리저리 발버둥 쳐도 초코파이의 사랑스러운 안광에 사로잡힌 한 마리 벌레가 되었다. 초코파이는 나를 위해 '초코~파이~' 라면서 노래 부른다. 초코파이여~ 그렇게 노래 부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는 이미 당신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당신은 나를 모르지만 저는 당신을 알아요. 모른 척 지내왔을 뿐. 



한동안 접하지 않은 초코파이. 

오래간만에 초코파이나 먹어볼까? 

살까? 말까? 고민하는데 불현듯 아내가 다가와 말했다. 


"뭘 그리 징그럽게 아스라이 보고 있어? 대체 뭘 보는 거야? 눈빛이 왜 그래? 오래전 첫사랑이라도 만났어?" 


묻더니 아내는 내 시선이 가리키는 곳, 초코파이 박스 더미를 보고서 쯧쯧 그럼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다 하며 선심 쓰는 말투로 말했다. 


"자, 이제부터 당신 원하는 걸 담아, 그래도 돼, 겨울이니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원하는 거라니? 아니 왜? 아아~ 그렇구나. 겨울이다. 겨울이니까 원하는 걸 담아도 좋다는 말이구나. 겨울이면 크리스마스가 있고 크리스마스면 선물 받는 날이니까 선물로 초코파이를 사면 된다는 말이구나? 근데 선물치고는 좀 모자른데? 라고 쳐다보니 저 멀리 아내와 딸아이는 다른 것들을 사려고 걸어가버린다. 딸아이는 뒤돌아 혀를 날름거리며, "아빠는 과자만 좋아하니까 얼굴 피부가 그렇지, 난 절대 과자 안 먹을 거야, 아빠처럼 되지 않을 거란 말이야" 한다. (요즘따라 아빠 닮았다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부터는 나만의 타임이다. 원하는 걸 담으라니~ 그 말은 곧 할인 중인 초코파이를 담아도 된다는 뜻이렸다, 오냐 내 기어이 담아준다. 사고야 만다. 먹어 주마. 이게 정말 몇 년 만인가?




아리따운 초코파이 양이 손 흔든다



초코파이


초코파이. 초코파이. 초코파이라. 입안에 몇 번이고 맴도는 소리, 초코파이. 나는 초코파이를 보면서 점점 초코파이야~ 그래, 주문을 외우듯 초코파이를 자꾸 반복하니까 이제야 네가 보이는구나. 네가 정녕 초코파이구나 하고 서서히 깨닫기 시작한다. 자칫 몰라볼 뻔했다. 


오빠! 저 초코파이예요. 초코파이라구요. 모르시겠어요? 저라구요. 저! 초코파이! 벌써 잊으셨어요? 어머, 어떡해 날 잊었나 봐. 생각 안 나나 봐. 흑흑. ㅠㅠ 저는 늘 오빠를 생각했는데 오빠는 어쩜 그러실 수가 있어요?


아아 그래 너구나. 바로 너로구나. 내가 잊고 살았구나.


나는 급한 대로 급히 떠올렸다. 물론 각자의 취향에 따라 선호도가 다르겠지만 내게 있어서 초코파이는 과자 중 최상층에 존재한 이름이 아니던가. 내 감정의 여러 갈래에 있어서 '그리움'이라는 분류에 가 보면 맨 앞줄에 초코파이가 있단 말이다. 나는 가만히 초코파이 상자에 손을 가져다 대 보았다. 어딘가 촉촉한 느낌. 아아 초코파이 상자는 말랑하니 너무 정답고 부드러워서 하마터면 소리 지를 뻔했다. 그래 이거야. 이 감촉~ 역시 바로 너구나. 


첫 번째 매력. 

어릴 적 초코파이 상자로 접은 딱지. 그 딱지는 크고 풍덩해서 웬만한 딱지들을 죄다 넘겨버리던 쾌남적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초코파이 상자로 딱지를 접을 때마다 두근거리며 접었던 기억이 있다. 초코파이 딱지만 있으면 돼. 이 감촉, 이 종이, 이 딱지만 있으면 친구들 딱지를 다 딸 수 있어. 초코파이야~ 넌 어쩜 맛도 좋지만 이처럼 종이 감촉도 좋으니? 난 감동했다. 초코파이야! 그뿐만이 아니다. 초코파이야! 잠깐 내가 지금 몇 번이나 초코파이 이름을 불렀지? 그래, 초코파이야 하고 몇 번이고 불러도 전혀 물리지 않는구나. 초코파이야. 그래서 네가 초코파이지. 


너의 두 번째 매력. 

군대 가서 처음 훈련병 시절 훈련소에서 생일을 맞았지. 훈련병은 이름도 없고 계급도 없는데 하물며 생일이 어딨어? 하던 시절이었지. 일석점호가 끝나고 불침번 서던 동기 하나가 내 눈을 가리며 따라오라고 했지. 뭐야? 갑자기? 복도에 다다라 눈 뜨라고 해서 눈 떴는데 훈련소 소대장님과 동기 훈련생들이 모두 모여 초코파이를 쌓아서 생일 축하를 해주었지. 헉! 갑작스러운 이벤트. 촛불을 꽂아 생일 축하합니다~~ 라는 노래를 들었지. 이거 현실? 꿈 아니지? 초코파이가 케이크로 변한 마법. 아아~ 진짜 뭉클했지. 정말 감동적이었지. 후~불면서 고맙습니다 하고 눈물로 인사했지. 인사하니 소대장님이 노래 한곡을 부르라고 했지. 나는 입대 전 유행했던 신승훈의 '내 방식대로의 사랑'이 생각나 불렀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난 알아들을 수가 없어~' 

젠장 왜 그 노래를 불렀을까? ㅠㅠ 

퍼뜩 생각나는 노래가 그것뿐이었지. 그냥 소양강 처녀나 부를걸. 무려 이십여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후회하고 있지. 뭐야? 이 녀석? 왜 갑자기 이런 노래를? 분위기 깨네~ 하던 몇몇 동기들의 눈빛. 그럼에도 나는 어쩌자고 그 노래를 끝까지 다 불렀을까. 가사를 외운다는 것을 뻐기고 싶었을까? 동기들 몇몇이 따라 불러주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 그나저나 훈련소 동기들은 잘 살고 있을까? 우리 평생 같이 가자며 얼싸안던 동기들. 훈련소 생활이 끝나고 어디로 배치받을까 두려워 손잡던 동기들. 이제 정말 끝이구나. 기차가 정차할 때마다 몇 명씩 호명되어 더블백 메고 내려서 손 흔들던 동기들. 각자 자대 배치받고 나서도 한동안 편지 주고받다 서서히 잊어갔던 동기들.


너의 세 번째 매력. 

자대 배치받고 이등병 시절 화장실에서 눈물로 먹던 너의 맛이 생각나는구나. 바스락 소리가 날까 싶어 한없이 천천히 너의 옷깃을 당겨, 설핏 정지한 동작처럼 보이지만 아주 느리게 영겁의 속도로 너를 깨물었었다. 소리 날까 봐 목이 멜까 봐 입안 가득 침방울에 머금어 씹을 수 있을 때까지 우적우적 내내 씹었다. 그리고 눈물, 커피 대신 눈물을 마시며 너를 넘겼다. 때때로 그 흐느낌이 너무 커 소리가 새어 나올 때 변기 레버를 밟아 물을 흘려보냈다. 쏴아아~ 소리가 끝나기 전 서둘러 쿠샤악! 번개처럼 두 개째 비닐 옷을 벗겼다. 쏴아아~ 소리가 끝나기 전 바쁘게 눈물을 꼴깍꼴깍 삼켰다.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울면서 초코파이를 먹는다





그러한데 내가 너 초코파이를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물론 오랜 세월 너를 보고도 모른 척 감흥 없는 척 무던하게 지나왔었지. 그러나 오늘은 특별한 날. 겨울이 오는 날. 12월을 코앞에 둔 날. 아내가 한 상자 정도는 허락해주겠다고 한 날. 오랜만에 너를 맛보고 싶구나. 

결국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다가 어느새 초코파이를 카트에 넣었다. 




냉장고를 열었다. 

차갑게 언 초코파이를 꺼냈다. 테이블에 올려두고 녹기를 기다렸다. 이것저것 일 보다가 보니 겉면에 촉촉한 물기가 묻어난 게 보였다. 포장지를 벗겼다. 찹찹한 감촉이 느껴졌다. 끄트머리를 작게 한입 베어 물었다. 달콤하다. 목이 메었다. 초코파이를 넘기기 전 연한 커피를 머금었다. 다시금 초코파이를 한입 물었다. 적당히 딱딱한 감촉이 좋다. 초코파이와 커피. 그 옛날 아스라한 기억. 기억 속 퇴폐적인 향수. 내가 먹고 있는 건 무엇일까? 초코파이일까? 오래전 감동하던 느낌일까? 과거를 벗어나 현재의 맛을 느끼는 것일까? 내가 갸웃거리며 먹는데 딸아이가 물끄러미 쳐다본다. 


"아빠! 맛있어?" 


하고 묻는다. 나는 초코파이에 우유 한 컵을 따라 딸아이에게 주었다.

아빠를 무척이나 닮기 거부하는 딸아이가 초코파이를 먹는다. 6학년 초등학생이 간식으로 초코파이를 먹는다. 마룻바닥에 부스러기 떨어지는 게 눈에 밟힌다. 초코파이 한입 먹고 우유 한 모금 마시고... 그렇게 맛을 알아간다.


무수한 세월.

앞으로도 겨울이면, 

언제고 더러 시선이 마주칠 때면,

 

마트에서 초코파이를 수없이 만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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