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등산하는 사람

가좌산 저쪽에서 나타나 다가온다

by 머피


깜깜한 저녁 산에 올랐다.


하나둘 가로등이 켜질 때 옛 대학 캠퍼스로 갔다. 캠퍼스에서 가장 한적한 곳 모퉁이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진주 경상대 가좌캠퍼스 가좌산이다. 무료주차장에서 수의대 건물을 지나면 나타난다. 이곳은 너무나 한적해서 낮이고 밤이고 인적이 없다. 인적이 없어서 인적 없는 곳을 필요로 하는 차들이 이따금씩 찾는 곳이다. 낮에 가면 외롭고 밤에 가면 무섭다. 외롭고 무서워서 인적이 없다. 외롭고 무서운 꼭짓점. 그곳에서 가좌산 산길이 시작된다. 산길이 시작되는 지점이지만 역시 인적이 없는 이유로 사람들은 시작점을 외면하고 저기 중간지점 연암공대 즉 인적이 많은 곳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은 가좌산에서 출발하여 망진산으로 이어진다. 보통 망진산 정상을 찍고 하산하거나 돌아온다. 등산의 시작점인 이곳은 시작점인데 반해 등산의 도착점이 되지 못한다. 다른 곳에 비해 교통이 다소 불편하다. 그리고 봉우리가 높지 않고 경관이 뚜렷하게 뛰어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산객들은 망진산에서 가좌산 연암공대 중간지점까지만 간다.


나는 인적이 없는 곳을 좋아한다.


외로움과 무서움을 지향하는 취향이랄까. 사람이 없어서 내게는 최적의 시작점이다. 그곳에서 나는 등산화를 질끈 묶고 터벅터벅 오르막을 오른다. 아아 나는 어쩌자고 이 늦은 저녁 산행을 시작하는 것일까? 이마에 두른 랜턴 하나만을 믿고서 걷는다. 내게는 친숙한 곳. 거기다 산이 그리 높지 않고 대학생활 내내 곁에서 함께 했던 곳이고 대학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친숙한 산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말을 맞아 불쑥 야간 산행을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기에 올 수 있었다.


산행 시작점에서 중간지점까지는 약 30분이라는 텀이 있다. 그 텀 속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라는 고독을 맛본다. 아무도 없겠지? 그래 아무도 없으리라. 아무도 없는 산속을 홀로 걷는 기분. 아무도 없어서 더 좋은 곳. 랜턴 빛이 앞을 비추지만 어쩌면 빛이 없어야 더 안심되는 곳. 빛은 어둠 속에서 내 존재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드러난 나를 산속의 모든 존재가 지켜본다. 나뭇가지 위에 앉은 영령들이 나를 두고 얘기한다. 저 녀석 좀 보게. 겁도 없이 잘도 왔구먼. 어떻게 한번 겁을 줘볼까. 야야 살살 해 어린 친구 심장 멎을라. 그런 그들의 노닥거림 속에서 나는 한 마리 메뚜기가 되어 걷는다. 그들은 메뚜기를 잡아다 다리도 떼어보고 날개도 떼어본다. 구워서 먹고 튀겨서도 먹는다. 나는 다리와 날개가 떼어질 운명이다. 구워지고 튀겨질지도 모른다. 그런 사달이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산행. 그들이 지켜보면서 아직 손을 내밀지 않았기에 그나마 내 두 다리로 걷고 있을 뿐. 어느 때고 그들의 손에 붙잡혀 해체될지 모른다. 다만 아직일 뿐이다. 나는 처참한 심정으로 빛을 바라보며 걷는다. 결국 참지 못하고 랜턴을 가방 속에 넣어버린다.


빛 없이 걷는데 문득 저 앞에 하나의 빛이 보인다.


누굴까? 중간지점에서 역으로 오는 사람일까? 야간산행하는 거겠지? 빛은 하나다. 나는 감히 마주칠 용기가 없는데 왜 자꾸만 다가오는 것일까? 오지 말라고 할까? 여기 사람 있는데 아직 오지 마세요, 제발 다른 길로 가세요, 라고 전할까? 모르겠다. 모르겠는데 자꾸만 다가온다. 멈칫 빛이 흔들린다. 저쪽이 나를 알아챘다. 그러고는 유심히 살펴본다. 나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가만히 섰다. 서 있는 나를 저쪽이 점점 걸어와 내 앞에 선다. 저쪽이 이쪽을 본다. 보는 시선의 부담감. 그만 참지 못하고 용기를 낸다. "안녕하세요!" 산에서 처음 본 저쪽에게 인사를 건넸다. 저쪽이 꾸벅 "네" 하고 인사를 받는다. 나는 발을 떼 지나친다. 곧장 앞만 보고서 걷는다. 저쪽도 저쪽이 되어 저쪽으로 걷는다. 얼마간의 간격이 벌어진다. 얼마나 벌어졌나 싶어 돌아본다. 보는데 저쪽도 돌아본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뭇가지 위에 앉은 영령들. 언제고 손 내밀어 내 다리와 날개를 찢어버릴 존재. 사람의 형태로 나타나 놀라게 하려는 생각? 내 앞에 하나의 존재로써 군림하려는 생각? 내가 그들을 인식하고 두려워하길 바라는 건가? 어쩌면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즉시 랜턴을 켜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낮에 그토록 자주 다녔던 산길이다. 단지 지금은 밤이어서 그렇지 낮이면 꽤나 익숙하다. 어디서 중간지점이 나타날지도 알았다. 달리면서 고개 돌려 뒤를 보았다. 어라? 저쪽 빛이 마구 흔들리면서 나를 따라왔다. 왜 따라와? 나는 기겁해서 거의 날듯이 뛰었다. 웬만한 경사는 전부 점프하여 건넜다. 오르막도 두 세 계단을 한꺼번에 디뎌 올랐다. 내게 이런 능력이 있던가? 축지법이라 불러도 될 만큼 날다람쥐가 되어 도망간다. 이렇게 빨리 달아나니 잡히지 않겠지? 가는 길마다 숲은 연결되어 나무가 울창하다. 울창한 나무에 나뭇가지가 얼기설기 눈앞에 어지럽다. 어지러운 나뭇가지 위에 그들이 앉아 도망가는 내 얼굴을 본다. 뒤를 돌아보니 빛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반짝거리며 따라온다. 나는 무사히 산을 내려갈 수 있을까? 어차피 그들은 메뚜기 한 마리를 놓고서 장난치는 것인데. 그런 생각이 들자 맥이 탁 풀렸다. 그리고 멈춰 숨을 몰아 쉬었다. 하아 하아~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하아 하아~ 뭐가 두려워 달아나는 것일까? 결국 잡힐 수밖에 없는 운명. 휘유우우~ 나는 그제야 깨닫는다. 또다시 저쪽에서 빛이 나타나 마주 온다. 가까이 오자 사람의 형체가 드러난다. 그 이가 다가와 내 앞에 선다. 서서 나를 뚫어지듯 살핀다. 나는 역시나 버티지 못하고 곧장 뜀박질을 한다. 알면서도 적응이 안 되잖아. 뛰다가 숨차 멈춘다. 멈춰서 앞을 보니 이쪽저쪽 사방에서 빛이 나타난다. 쫓기는 마음을 알고서 따라온다. (이제 그만해)


산에 가면 나무가 있고 나뭇가지가 있다. 나뭇가지 위에는 다양한 영령이 앉아 있다. 앉아서 나무 아래 지나가는 사람을 관찰한다. 나는 캠퍼스를 벗어나 산길에 오르곤 했다. 외롭고 무서워하던 시절. 친구가 싫고 연인이 싫어서 고독한 시절. 한적한 모퉁이를 자주 찾았다. 거기서 나는 아무도 지켜보지 않겠지? 하는 마음에 안심이 되었다. 가좌산 산길은 조용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가끔 연인과 함께 그곳을 찾기도 했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그때 들었던 마음이 그대로 들어 놀라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은 그곳 땅에 머물러 지배되는가 보다. 거기만 가면 외롭고 무섭지만 한편으로 안심이 되니까. 익숙한 감정이니까. 한없이 두렵지만 그때의 나를 만나 지금의 내가 아주 조금은 나아 보여서 다소 누그러진다.



내게 가좌산은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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