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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Mar 07. 2023

사우나 속 아지매들의 수다

못살아 이번에 우리 남편 연봉이 고작 그거밖에 안 되는 거 있지

사우나에 모인 아지매들





우리 동네 새로 생긴 목욕탕 사우나.


평일 아침 10시에서 12시 사이.


줌바 댄스로 한바탕 땀 흘린 아지매들이 목욕탕 사우나에 옹기종기 모여서 수다 삼매경에 빠진다. 


그리 늙지 않은 세대.

삼사십 대가 주류.

간간이 주변을 맴도는 오육십 대.


오육십 대는 삼사십 대에 밀려 머뭇머뭇 말을 못 한다. 

삼사십 대 아지매들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여기 새로이 개장한 목욕탕에 모였다.


"홍이 엄마! 우리 점심 어디서 먹을까?"

"글쎄, 거기 브런치 식당이 좋다고 하던데 가볼까?"

"아 거기? 샐러드가 좀 부실하던데."

"그래, 그럼 저기 새로 생긴 레스토랑에 가볼래?"

"그럴까? 근데 우리 남편이 이번에 승진을 했는 데 있잖아."

"어머? 승진? 축하해."

"어휴, 말도 마. 오히려 연봉이 줄은 거 있지. 내가 속상해서 원."

"그래? 하긴 요즘은 승진이 더 안 좋은 경우도 있다던데."

"정이 엄마! 남편은 연봉이 얼마나 돼?"

"에효, 우리 남편 연봉도 뭐 그저 그래. 겨우 먹고살 정도?"

"근데 우리 다낭에는 언제 가? 엊그제 세부 다녀오고 몸이 근질근질한데."

"이달 말에 일정 잡아볼까? 현이 엄마 거기 시즌권 있다며?"

"이번에는 애는 어쩌고? 데려갈 거야? 맡길까?"


삼사십 대 아지매들의 수다에 오육십 대 아지매들은 슬그머니 사우나를 빠져나가 냉탕에 풍덩풍덩 몸을 던진다. 평일 오전에 사람이 없으리라 여긴 건 오산. 그야말로 빈자리가 없다. 목욕탕에는 피트니스 센터를 비롯해 찜질방, 매점, 사우나 등 없는 게 없다. 목욕탕은 사우나와 피트니스 gx시설을 더하여 6개월치, 1년 치 할인 행사를 하고 있다. 행사에 이끌려 아내는 목욕탕에 등록했다.


아내가 말하길, 

동네에 사람이 안보이더니 여기 다 모였구나. 강변 자전거길에는 남자들이 떼거지로 모여 자전거를 탄다고 했다. 평일 월요일 오전에 말이다. 여자들은 사우나에 떼거지로 모여 남편 험담에 점심 뭐 먹을지를 고민한다고 했다. 세상 참 살기 좋다고 했다. 아내는 덧붙였다. 팔자 좋은 여자들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나만 힘들게 사는 거냐고. 나만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는 거냐고. 나만 정신없이 남편과 아이 뒷바라지 하는 거냐고... 이에 나는 그들이 소방관 경찰관이거나 3교대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라고 말하려다가 참았다. 아니면 사업하는 사람들이 모처럼 모여서 자전거 정모를 하는 게 아닐까? 라고 추측만 하고 드러내지 않았다. 사우나에는 육아에 시달려 잠시나마 여유시간을 얻은 아낙네들이 때마침 우연찮게 만난 건 아닐까? 라고 말하려다가 또 참았다. 아니면 번듯한 직장을 다니다가 휴가라든지, 육아휴직을 한 것은 아닌지? 라고도 짐작만 해보았다.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러한 나의 추측을 입으로 말하면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것이리라, 무수한 세월을 견딘 어떠한 감이 내 입을 막아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아내가 말을 이었다.

"내가 사우나에서 모래시계에 모래가 다 떨어질 때까지 버티고 있는데 말이야. 젊은 아지매들이 남편욕에 점심 뭐 먹을지, 해외여행 어디로 갈지 수다 떠는 중에 말이야. 내가 정말 견디다 견디다 모래만 떨어지면 일어나려고 했는데 말이지. 그 순간 어떤 할머니가 먼저 벌떡 일어나는 거야. 일어나더니 이렇게 외치더란 말이지."


"나온나! 이년들아! 신랑 등골 빼먹을 년들!"


목소리에 약간의 샤우팅이 가미되었다고 했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할머니는 사우나 한편에서 누워있다가 갑자기 일어나 한마디를 외쳤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사우나 문을 확 열고 카리스마 있게 나가더라는 것이었다. 이후 젊은 아지매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또 저런다, 욕쟁이 할머니가, 맨날 우리만 보면 저러셔"라고 별거 아니라는 듯 다시 수다를 이어가더란 것이다. 그럼에도 이 순간 나는 왠지 할머니가 고마웠다. 어쩐지 할머니가 나를 도와준 것만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내는 연신 '나온나 이년들아 신랑 등골 빼먹을 년들'이라고 말하며 웃어댔다. 뭔가 쾌감이 느껴졌다고도 했다. 


나는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 나는 빼먹힐 등골이 없는 슬픈 남편. 할머니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아, 오늘 저녁에도 평일 아침은 계속되겠지. 얼마 전부터 평일 아침 사우나에 다니는 아내가 대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요즘이다.




사우나 속 아지매들의 수다 삼매경. 할머니가 한편에 누워서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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