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맞추고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생이 된 지 이제 십여 일이 지났다. 그리고 아내와 나는 딸아이를 "여중생"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평일 저녁 6시 즈음 딸아이가 집에 올 때면 부부는 나란히 현관으로 달려가 "와아~~ 우리 여중생 왔어요?"라고 인사한다. "여중생 학교 생활은 어때요? 여중생! 친구는 사귀었나요?" 아내는 "우리 여중생 뭐 맛있는 거 해줄까요? 여중생 뭐 입고 학교 갈래요?"라며 시도 때도 없이 여중생이라고 부른다. 딸아이가 여중생 된 게 신기방기해서다. "아휴, 벌써 중학생이라니!"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 조그만 딸아이가 벌써 여중생이라니. 세월 참 빠르다. 그만큼 우리 부부도 나이 들어간다.
지난 주말, 지역 마트에 장 보러 가서 생긴 일이다.
지역 농민들이 생산한 상추가 다양히 진열되어 있었다. 생산자 이름이 박힌 상추를 들고서 이게 더 싱싱한가, 저게 더 양이 많은가를 가늠하던 아내. 그런 아내를 곁에서 묵묵히 바라보는 나. 상추를 고르고 봄나물을 고르던 아내가 맞은편 칸으로 앞장서갔다. 나는 카트를 끌고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렸다. 진열대에 너무 붙어있으면 다른 이들이 가까이 가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상추류 진열대와 과일 진열대 사이에서 카트를 잡고 지켜보고 있었다. 아내가 심혈을 기울여 드디어 봄나물을 골랐나 보다. 나물을 들고 옆칸 두부 진열대를 보면서 걷더니 이윽고 카트에 툭 나물을 던져 넣었다. 나는 그 모습을 줄곧 보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여보~ 왜 남의 카트에 넣어?" 그러자 아내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아차! 죄송합니다. 남편인 줄 착각했네요"라면서 나물을 도로 집어 우리 카트에 넣었다. 난데없이 아내의 나물을 받아 든 중년의 신사는 빙그레 웃으며 "괜찮아요, 저희도 깜빡깜빡하는데요. 뭘~" 하면서 미소 지었다. 신사가 자리를 떠나자 나는 "이젠 남편도 못 알아보네?"라고 물었다. 아내는 푸하하 웃으며 "내가 나물만 보느라 몰랐네"라고 답했다.
아내들은 상추와 나물을 고르고 남편들은 카트를 잡고서 기다리는 마트. 아내들이 앞장서면 뒤따르는 남편들. 지역 마트의 보편적인 장면이다.
며칠 전, 아내가 딸아이 방에 갔다가 "와~ 돈이다!" 하면서 좋아한 적이 있다.
"우와~이거 어디서 받은 용돈이야?" 하고 아내가 물으니 딸아이는 "어휴, 엄마~ 이거 안경닦이잖아요"라고 한숨과 함께 답했다. "뭐어? 이런~ 누가 이딴 안경닦이를 만든 거야?"라면서 아내는 급 시무룩해졌다.
책상 위 새로 맞춘 안경통 안에 안경닦이. 하필 안경닦이의 디자인이 오만 원권으로 도배되어 있었으니. 널따란 안경닦이에 오만 원권이 그야말로 여러 장 붙어있으니 어째 좋아하지 않을 수 있으랴. 딸아이가 용돈을 받을 경우 통상적으로 천 원 권부터 만 원권까지는 온전히 딸아이의 차지. 그러나 오만 원권은 일단 엄마에게 들어가야 한다. 엄마에게 맡겨져 일정 금액이 쌓이면 은행에 딸아이가 쓰는 용돈 통장에 입금된다. 이게 우리가 아는 원칙이긴 한데 이따금 아내의 시장 나들이에 쓰이기도 한다. 우리 부부는 가끔 시장에 가서 장 보는 것을 즐긴다.
눈이 잘 안 보이는 시대를 사는 부부.
눈에 총기를 잃어가는 부부. 그것이 그것인 줄 알고 저것이 저것인 줄 명확히 알던 세상. 구분하고 선택하던 세상이 차츰 옅어져 이제는 버거운 나이. 굳이 구분해야 돼? 하면서도 아아~ 가까운 게 안 보여, 하면서 한숨 쉬는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