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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Mar 16. 2023

알아도 무심히 지내다가

같이 탁구 쳐주시고 많이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얼굴이 시커먼 남자.


까만 안경에 덩치가 있고 목소리가 카랑카랑한 남자. 

핸디 9점을 받아도 게임이 안되던 남자. 정말이지 1점도 얻기 힘든 남자.

그럼에도 너무 친절한 남자. 스승님 같은 남자. 부드러운 남자. 자상한 남자. 착한 남자. 


어느 날 내가 그를 형이라 부르자, 그는 멋쩍은 표정으로 아, 네, 네 하고 얼버무렸다. 그리고는 주변 이들에게 내 나이를 물었다. 묻고는 몇 년생인지까지 확인하고 나서 아, 내가 형이 맞네,라고 했다. 나보다 2살 위였다. 겉보기로는 적어도 5살 이상은 형으로 보였는데, 그 역시 외려 내가 형으로 보였나 보다. 그가 형이어서 정말이지 다행이라 생각했다. 탁구도 잘 치고 겉모습도 나이 들어 보이는데 내가 형이면 정말 견디지 못할 것만 같았다. 처음부터 이것저것 친절히 설명해 주던 사람. 그냥 형이었다. 


그의 어려운 서브를 받고 나서 위로 띄우면 그는 "미안해~"라면서 스매싱~~ 을 날렸다. 날카로운 스매싱이었다. 스매싱을 실수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같다. 그의 서브는 커트나 너클처럼 모션을 취하는데 받아보면 상회전이나 횡회전이 잔뜩 걸린 공이다. 그러면 여지없이 리시브가 떠 어김없이 미안해가 나오고 정확하게 찰싹~ 스매싱을 맞았다. 


형~ 그 서브는 어떻게 넣는 거예요?


응~ 이리 와봐. 이건 커트모션으로 백스윙을 하다가 임팩트 순간에 전진회전으로 바꾸는 거야.


형~ 짧은 커트 서브는 어떻게 리시브해요?


응~ 이리 와봐. 커트는 절대로 커트로 받으면 안 돼. 나 게임하는 거 봤지? 안되더라도 플릭이나 튕기기로 받아봐. 자~ 내가 커트 줄 테니 어디 받아봐. 딱 100개만 더 해보자. 아니지 아니지 그게 아니지. 이렇게 이렇게 튕기기를 해보라고. 안될 것처럼 보여도 다 될 거야. 처음에 점수를 주더라도 계속 익숙해질 때까지 해봐. 튕겨봐. 백플릭이랑 비슷해. 그렇지, 잘한다 잘해. 괜찮아 처음에는 누구나 실수해. 그래, 바로 그거지.


형. 러버 좀 붙여주세요. 

이거 제가 붙였는데 삐딱하게 붙었어요. 


응 이리 줘봐. 내가 붙여줄게. 자아, 러버를 떼다가 글루를 묻혀서 드라이기 좀 갖고 와봐. 저기 사무실에 있어. 시원하게 말려서 어디 보자, 정확히 맞춰서, 이렇게 팔꿈치로 꾹꾹 눌러줘야 잘 붙지. 그래, 다 됐다. 나랑 랠리 해보자. 어때? 감이 괜찮아?


네, 너무 좋아요. 형. 


작년 대회에 재미를 붙여 한창 나갈 때 그가 응원을 왔다. 와서 게임 중간에 벤치를 봐줬다. 

자꾸 그 서브만 넣지 말고 한 번쯤은 저쪽으로 넣어봐. 변화를 줘야지. 같은 걸 계속하면 안 되는 거야. 과감하게 돌아서야지. 잘했어. 축하해.


탁구장에 왜 안 나와? 며칠째 안보이던데? 괜찮아. 그냥 나와. 열심히 해야지. 


내가 슬럼프에 빠져 탁구장에 나가지 않을 때였다.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놀랐다. 이렇게 전화까지 주실 줄이야. 나는 형의 전화를 받고 바로 탁구장에 복귀했다. 복귀하니 형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잘 왔어"라고 웃으며 반겨주었다. 


지난달. 진주시 친선대회. 단체전에서 내가 5세트 듀스에 몰렸다가 지고 고개 숙이니 그가 말했다. 

그럴 때는 반대쪽으로 변화를 줘야지. 다음부터는 꼭 그렇게 해. 괜찮아, 질 수도 있지. 다음엔 잘할 거야. 


네. 고마워요. 형.


.

.

.



그는 작년부터 입퇴원을 반복했다. 폐암이었다. 간간이 퇴원할 때면 탁구장에 왔다. 와서 게임은 못하고 랠리만 했다. 랠리 하다가 사람들에게 탁구를 알려주었다. 


내가 초보시절에 말이야. 아무도 탁구를 가르쳐주지 않는데 그게 어찌나 서럽던지 말도 못 해. 그래서 이다음에 고수가 되면 사람들에게 정말 다정하게 가르쳐줘야지 하고 맘먹게 되었지. 그리고 그냥 내가 아는 거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서 그래. 내가 알려준 게 다른 사람을 통해서 오랫동안 남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야. 그래서 계속 알려주는 거야. 


그는 탁구 1부다. 


탁구장에 다니는 사람은 안다.


1부는 신이다. 


신의 세계에서 노는 사람.


경남 진주 탁구계의 큰 별.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깨우치고 연구해서 하나하나 이뤄낸 성과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이미 탁구 1부였다. 


그래서 내게는 영원한 탁구 1부. 


어젯밤 형이 돌아가셨다. 


놀란 마음 더해서 비통한 마음 달랠 길이 없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자 아픈 몸 이끌고 탁구장에 온 사람. 대회에 응원하기 위해 온 사람. 그런 형이 이제 다시는 탁구장에 오지 못한다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밖에서 식사라도 한번 같이 하지 못해서 아쉬움이 더 크다. 늘 받기만 해서 송구한 마음이 남는다. 


홍장의 형! 이제 아프지 말고 편히 쉬세요. 


그동안 같이 탁구 쳐주시고 많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맨 안쪽 탁구대에 아직도 그가 탁구치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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