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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May 30. 2023

최강 여전사에게 도전

난희



그녀는 강하다.


난희는 삼십 대 아기 엄마다. 어린 아기가 있다. 엄마는 온종일 아기를 보다가 늦은 밤 간신히 짬을 내 탁구장에 온다. 와서 레슨을 받는다. 주로 강자들만의 공간, 맨 안쪽 1탁 2탁에서 논다. 보통 1부, 2부, 3부, 4부, 5부, 6부와 게임한다.  


난희의 공식 부수는 여자 3부다. 남자 부수로 환산하면 6부다. 코로나 이전 진주시 대회 우승자다. 실제 실력은 여자 2부 이상이다. 진짜 진지하게 파고들면 여자 1부가 아닐까 가늠해보기도 한다. 아무튼 우리 구장에서 가장 강한 여성을 꼽으라면 첫 손에 그녀가 호명될 것이다. 물론 그녀 말고도 여자2, 3부가 존재하지만 이들은 롱핌플 플레이어다. 심지어 난희는 롱핌플 2, 3부에게도 강세다. 그런 그녀이기에 7부 이하는 평소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간혹 도전해 오면 도전을 피하지 않을 뿐, 먼저 응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그녀는 강자들 속에서 강자답게 논다. 그녀로서는 강자들과 겨루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간간히 7부 중에 급상승하여 튀어나오는 이만 상대할 뿐 잘 보이지 않는 자는 거의 상대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 드문드문 의식했다.(어쩌면 나만 의식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강자들 속에서 화려하게 빛났고 나는 7부 이하 속에서 발버둥 치지만 그래 봤자 7부일 뿐이었다. 이따금씩 지켜보고 있었다. 7부 내외 최강자는 누구인가. 여기서 7부 내외란 6부부터 8부까지를 뜻한다. 6부부터 8부 중에 실제 가장 강한 이는 누구인가. 최강자를 가리고 싶지 않은가? 근래 폼이 가장 좋은 자가 누굴까. 겨뤄봐야 하지 않은가? 하고 그녀를 올려다본다. 


난희는 남자 1부를 상대할 때도 랠리에서 밀리지 않는다. 우리 구장 남자 1부는 장비형이다. 전면 민 러버, 후면 핌플을 쓴다. 일명 쇼트 아티스트다. 양 코너로 찌르는 쇼트가 일품이다. 그것도 후면 핌플을 번갈아 써서 공을 살리거나 죽이거나를 적절히 조절한다. 상대는 양쪽 코너를 막으면서도 이것이 하회전인지 너클인지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러함에도 난희는 포핸드 백핸드를 찰싹거리며 잘도 버텨낸다. 공이 하회전으로 와도 커트치기와 임팩트로 이겨낸다. 온몸을 기울이며 찰싹 치는데 밑으로 내려가는 공을 기어이 받쳐내 네트 위로 날려 보낸다. 공이 말한다. 저는 이미 죽었어요. 가망이 없다구요. 보세요, 역회전이 엄청 걸린 걸요. 그런데도 당신은 커트가 아니라 올려치기를 하네요. 그게 될까요? 설마 하던 커트 치기가 작렬한다. 손바닥을 쫙 펴서 뺨 때린다. 찰싹! 야~ 탁구 공아~ 정신 차려. 넘어가버려. 찰싹! 찰싹! 그녀의 귀싸대기 후려치기에 공이 번쩍 살아나 네트 위를 넘어간다. 강한 공이 왔다 갔다 하면서 랠리가 끝없이 이어진다. 1부의 파워 쇼트를 공격으로 연결한다. 저것이 난희의 실력인가. 실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남자 1부를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는다. 감춰둔 실력. 어쩌면 이기는 횟수가 더 많을지도 몰라. 우리 구장 최강의 여전사. 1부 남자를 상대할 때도그녀 특유의 찰싹거리는 타법이 춤을 춘다. 그래서 우리 구장의 강하다는 남자들은 앞다퉈 그녀와 게임하기를 원한다. 그녀에게 도전하기를 바란다.


우리 7부 중 최강자인 영삼 형도 부쩍 난희에게 도전하는 날이 늘었다. 다른 곳에서 3파전을 하다가도 난희가 홀로 쉬는 게 보이면 손 들어 부른다. 고수님~ 난희 씨 한 게임 어때요? 그러면 난희는 오오 그래요, 당신은 7부 최강자니까 기꺼이 도전을 받아들일게요 하면서 일어난다. 나는 멍하니 지켜본다. 형! 날 두고 어딜 가요? 형이 날 버리고 난희에게로 간다. 나는 그런 그들의 게임을 부러운 눈길로 지켜본다. 으레 난희가 3대 2 스코어로 이긴다.




금요일 저녁. 

탁구장은 텅텅 비어 있었다. 우리는 메인 탁구대인 2탁에 자리 잡았다. 3파전. 병수형과 난희가 먼저 게임을 시작했다. 나는 심판을 봤다. 병수형은 만년 8부. 과거 나보다 앞서다가 지금은 내게 조금 뒤진 편이다. 그래도 오리지널 얇은 드라이브를 잘 구사하고 파워도 좋은 편이다. 요즘 들어 코치님에게 레슨도 열심히 받는다. 이따금 고수들을 잡기도 한다. 그러나 상대는 여자 최강 난희 씨가 아닌가. 역시 스코어는 3대 0. 세 번째 세트가 끝나갈 무렵 내 가슴은 쿵쾅쿵쾅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간 지켜보기만 했던 상대와 맞붙게 되다니. 드디어 자웅을 겨룰 시간이 왔다. 누가 더 강한가. 병수형이 심판석으로 왔다.


나는 난희의 맞은편에 서서 공을 주고받는다. 마침내 때가 왔노라. 어떻게 될까.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긴장된다. 이길까 질까. 이기면 어떻게 이길까. 지면 어떻게 질까. 지더라도 잘 져야 할 텐데. 제발 3대 0만 피하길. 나는 점점 경직되었다. 그녀의 포핸드 롱은 간결하면서도 코스의 변함이 없다. 치는데 뭔가 정확하다. 나의 들쭉날쭉 포핸드랑은 차원이 다르다. 저 멀리 어디서 누군가가 병수형을 부른다. 리그전을 하자며 부르자 병수형은 심판석을 떠났다. 공교롭게도 마침 레슨시간이 빈 코치님이 심판석에 앉았다. 나는 코치님에게 탁구를 배웠다. 몇 달 동안 일주일에 두 번씩 열심히도 배웠다. 이따금 탁구장에서 게임할 때면 코치님이 지나가며 지켜봐 주었다. 보고는 많이 늘었네, 팔로만 스윙하지 말고 몸도 같이 가야지, 요새 장난 아니네 하는 덕담도 주었다. 코치님은 내 실력을 정확히 알까. 내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파악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상대는 난희가 아닌가. 떨렸다. 그간 내가 연마하고 닦은 실력이 통할까 의심이 증폭되었다. 그녀에게 내 기술이 얼마나 먹힐 것인가. 심장이 터질 것처럼 쾅쾅 뛰었다.


1세트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랐다. 11대 3인가. 일방적으로 졌다. 코치님이 안타까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나는 땀방울을 흘리며 연신 공을 주웠다. 2세트 시작. 난희의 찰싹거리는 포핸드가 탁구대 오른쪽 꼭짓점에 맞고 튀었다. 나는 황급히 스텝을 밟아 정확히 보지 않고 대충 그 방향으로 스윙만 한번 날려보는 식으로 스윙했다. 그런데 공이 라켓에 맞았다. 맞고 난희의 탁구대 오른쪽 안쪽면에 꽂혔다. 그동안 나는 난희의 포핸드 커트 치기 스매싱에 번번이 당했다. 에라 이왕 지는 거 따라가 휘두르기라도 해 보자 하는 식으로 따라간 거였다. 그런데 막상 따라가 라켓에 맞추자 자신감이 생겨났다. 그래 발뿐이다. 움직여서 받아내자. 권투에 아웃복서가 있다면 탁구에도 아웃 중진이 있다. 이른바 중진 플레이. 탁구대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플레이하는 선수. 멀리멀리 뛰어가 힘겹게 공 받아내는 선수.


몇 방이고 얻어맞아도 쉼 없이 뛰어가 잡는다. 코치님이 놀란다. 아니 어떻게 이걸 받지? 발이 엄청 빠르네. 코치님이 말한다. 이곳에 넣으니 난희가 못 받네. 그곳은 바로 난희의 오른쪽 끝이다. 나는 게임 내내 그곳에만 집중했다. 오로지 그곳에 넣으려고 몇 발이고 뛰어가 드라이브를 날렸다. 내 드라이브는 그리 강하지 않다. 어쩌면 상대의 힘을 이용한 맞드라이브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체절명의 순간 자세를 낮춰 공을 튕겨 올리는 타법. 이른바 카운터 드라이브로 공략한다. 아무리 급해도 스매싱이 나오면 안 된다. 아무리 바빠도 슝 휘둘러 감아서 때린다. 숨 막히고 허리가 꺾여 바로 설 수가 없다. 이마에서 난 땀방울이 눈을 마구 찌른다. 앞을 바로 볼 수가 없다. 입을 다물수가 없다.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흐른다. 이제 몇 점 남았나? 하는데 게임이 끝났다. 난희가 이건 무슨 경우야? 하는 표정으로 나를 마주 본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잘 배웠습니다" 하고 인사한다. 코치님에게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한다. 이겼다. 스코어는 3대 1. 탁구장에 오고서 늘 지던 상대. 게임하고 나서는 "많이 늘었네요"라고 칭찬받던 사람. 최근 한 달 동안 다가가지 못하고 지켜만 보던 사람. 그런 그녀에게 이겼다. 나는 모든 걸 바쳐 한 게임에 올인했다.


그녀를 이겨보았다. 나보다 위에 있던 상대에게 정면 승부를 걸어 끝내 이기는 순간. 그 짜릿함을 아는가. 비록 질 때가 더 많다 하더라도 괜찮다. 도전해서 갈고닦은 기술을 써 득점하고 득점해서 이긴다. 소중한 경험. 어제 일요일 오후. 우리는 다시 만났다. 연습게임을 했다. 3대 2로 졌다. 그래도 좋다.


나는 그녀와 게임할 수 있는 수준이니까. 이제 도전할 수 있는 입장이니까.






이 글은 대략 2년 전에 작성된 글입니다. 글을 내렸다가 다시 수정하는 중에 "장비형"이 언급되어 있네요. 이제는 고인이 된 형. 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저의 탁구 치는 마음이 조금 탁해진 거 같아 아쉬워요. 언제든 물어보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형이 없어서......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이게 아닌데 하는 때가 많아요. 어떨 때는 거꾸로 가기도 하고....... 정체된 시기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탁구뿐 아니라 여러가지로....... 그때는 장비형이 있었지만 지금은........ 빈자리가 큽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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