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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Nov 22. 2023

콩나물 국밥을 먹는다.

김가루와 계란을 넣는다.



딸아이가 그려준 그림. 메뉴판을 보니 빨간색 국밥이 무려 9억 원? 콩나물 국밥이 2천 원, 돼지국밥이 3천 원인데? 





토요일 아침이면 콩나물 국밥이 당긴다.



전날밤 불금에 딱히 뭐가 없었다 하더라도, 뭐를 마시지 않았다 하더라도 토요일 아침 콩나물국밥을 먹을 때면 크으~~ 하고 그냥 속이 풀리는 거다. 시원하게 해장되는 거다. "어제는 나만 마셨는데 자기도 어제 술 마셨어?" "안 마셨는데?" "근데 왜 술 마신 거처럼 속이 풀려?" "술 안 마셔도 해장이 되네. 콩나물국밥이잖아." "뭐래~" "지난 일주일 피로가 싹 풀리는 이 느낌, 몰라?" "웃겨~" "이 뜨끈뜨끈한 콩나물 국밥 한 그릇에 치열했던 일주일 피로가 다 풀리네." 간밤에 술은 아내만 마셨다. 아내는 술기운이 풀리는 건데 나는 뭐가 풀리는 걸까? 


아내와 주로 같이 시키는 건 '김치 콩나물 국밥'이다. 


김치 콩나물 국밥은 그냥 콩나물국밥보다 천 원이 더 비싸다. 그 천 원에 김치와 오징어 조각이 추가로 들어간다. 김치는 얼큰함을 더하고 오징어 조각은 쫄깃쫄깃 씹는 맛을 더한다. 일단 생계란을 깨 국밥 저 밑에 박아둔다. 콩나물을 덜어먹다가 이 정도면 됐다 싶을 때 숟가락을 들어 호호~ 불면서 밥과 국물을 함께 먹는다. 숟가락에는 간간이 김치가 들어가기도 하고 오징어조각이 얹히기도 한다. 한입 넣어 젓가락으로 깍두기를 집는다. 와그작와그작 부드럽게 씹힌다. 뜨거운 국밥에 차가운 깍두기가 입안을 중화시킨다. "여보~깍두기 좀 더 가져와." "응, 알았어 많이?" "응, 많이." 나는 깍두기를 잔뜩 덜어와 탁자 위에 놓는다. 우리는 다시금 국밥 먹는데 집중한다. 빨리 먹고 싶지만 말없이 가늠한다. 숟가락 가득 국밥을 뜨면 뜨거워서 절반가량 입안에 텁~ 넣더라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양을 조절한다. 그러곤 얼른 깍두기로 고온의 임계점을 뚝 떨어뜨린다. 끝에 가서는 설 익은 게란을 조각내 야금야금 먹는다. 마지막 국물까지 쪼르륵 다 먹고 입맛을 다신다. 


딸아이가 그려준 그림이 재밌다. 


내가 콩나물 국밥을 좋아하는 만큼은 아니더라도 딸아이는 열심히 국밥집에 따라가 준다. 그리고 맛있게 먹는 아빠 엄마 모습을 본다. 


아내와 나 그리고 딸아이까지 함께 콩나물 국밥을 먹는 토요일 아침.

그 얼마나 행복한 시간인가.


토요일 아침은 집안 대청소를 하는 날이다. 대략 한 시간 정도 열심히 청소한다. 거실과 방바닥 청소기를 밀고 물걸레도 민다. 화장실 청소를 하고 쓰레기 분리 정리를 한다. 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쯤 청소가 끝난다. 

"자, 이제 콩나물 국밥 먹으러 감세~"


콩나물국밥이 다 비워지면 다시금 주말 일과가 진행된다. 콩나물 국밥을 먹기 전과 먹은 후는 다르다. 콩나물 국밥이 나오면 아내는 집에서 비닐에 가져온 김가루를 뿌리다. 계란을 깨 각기 국밥에 넣는다. 나는 숟가락을 들기 전 잠시간 콩나물 국밥을 응시한다.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뭐 해? 얼른 안 먹고? 감상하니?" "아빠, 표정이 바보 같아."


나만의 퇴폐로운 한때.



이 맛을 보기 위해 고단한 일주일 간신히 버텨왔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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