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였을 때 본 풍경 속으로
실제로 당시 느꼈던 그 떨림이 되살아날 때가 있다.
당시는 11살이다. 11살의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지금의 나는 알지 못한다. 어렴풋이 이러저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할 뿐이다. 아주 가끔 운이 좋을 때 그 느낌이 산들바람처럼 슥~하고 지나갈 때가 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 느낌에 너무도 벅차 행복해진다.
진주시 상봉서동에서 봉곡초등학교로 가는 길. 11살의 눈으로 본 등굣길. 이쪽저쪽으로 길 건너 목욕탕 건물과 마트, 이리저리 거리를 보면서 학교로 갔지. 그리고 진주시 봉곡동 국제로터리에서 봉곡초등학교로 가는 길. 그때는 동생과 함께 갔다. 바닥에 붉은 돌을 피해 하얀 돌, 초록 돌만 밟으려 애쓰던 길. 나름의 규칙을 만들고 장난도 치다가 차로를 건널 때면 손잡고 걸었다.
휴일이면 간간이 상봉서동에 가보고 봉곡동에도 가본다. 인사동에도 가보고 구 진주시내도 가본다. 옥봉동에도 가보고 진주성에도 가본다. 나는 11살 때부터 진주에 살았다. 초등학교시절 다녔던 길에 가서 그 시절 나를 만난다. 문득문득 찾아오는 느낌, 다시 잡을 수 없는 존재이지만 어릴 적 그 냄새가 날까 싶어 나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그 골목길을 헤집고 다닌다.
소생된 느낌은 예상치 못하게 살아나 순간이 너무 짧아서 다시금 음미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는다. 방금 내가 뭘 느꼈지? 어릴 적 본 거리와 골목과 냄새가 기억난 거 같은데? 뭐지? 이 느낌? 굉장히 행복해지는데? 나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왜 생각이 안 나는 거야? 아아 조금만 더 그때 그 시절 그 생각, 그 마음을 느껴보고 싶어. 조금만 더. 그러며 나는 그 길가에서 안절부절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아, 이번 주말에는 가보지 못했네. 다음 주는 꼭 가야지.
나이가 들면서 갑자기 번개처럼 떠오르는 옛 느낌. 이것은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일종의 치료 호르몬처럼 가슴을 따뜻하게 만든다. 어릴 적 새로이 본 풍경에 감동하며 걸었던 그 느낌에 설레어 잠시간 행복해진다. 내가 본 게 뭐였을까? 내가 설렘을 느끼던 그 정체는 뭐였을까?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게 뭐지? 어디로 가야 하지? 마냥 행복한 풍경을 상상하며 11살이 걸었던 길에 가본다. 그 길에 서서 치유받는 마음. 걷다 보면 찾아오는 싱그러운 계절의 냄새. 냄새의 변화 속 아름다운 장면. 11살이 처음 본 계절의 풍경. 회상하는 걸음.
그것은 나만의 퇴폐로운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