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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May 02. 2024

한밤중 화장실

아무런 의식이 없을 때



나는 왜 앉아있나?



분명 소변보는 모습을 그려달라고 했다.


브런치에 글 쓸 때는 보통,

어떤 장면을 그려달라 요청하면 딸아이가 패드로 쓱싹쓱싹 그려주는 방식이다. 그러면 나는 그림을 다운받아 글 한편을 쓴다. 

딸아이는 중2다. 

얼마 전,

[새벽에 깨 오줌 누는 아빠의 부스스한 모습]을 그려달라고 문자로 부탁했다. 


엥? 딸아이가 그려준 그림을 다운받으니 이게 무슨 그림이람? 했다. 변기에 앉아서 응가하는 장면? 내가 이걸 왜 그려주라고 했지? 응가할 때의 낭만 같은 걸 쓰고 싶었나? 그런 낭만은 너무 깊어서 여유가 있을 때 써야 할 주제인데? 난 여유가 없는데? 가만 문자를 검색하니 위에 내가 보낸 문구가 나왔다. 딸아이에게 말하고 싶었다. 딸아~~~ 아빠는 앉아서 오줌누지를 않는단다. 한때는 아내의 요구에 얼마동안 앉아서 보기도 했지만 그건 정말 잠깐이었단다. 어느 순간 화장실 청소가 아빠몫이 되고서는 사라진 행태란다. 

지금은 당당히 서서 오줌을 눈다. 새벽에 식구들 들을까 살금살금 들어가 볼일을 본다. 아무튼 앉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그림을 요구했을까?




거울 속 낯선 얼굴 당신은 누구?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났다. 

새벽에 깨는 횟수가. 

순전히 오줌 때문이다.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중간에 꼭 한 번씩 깬다. 한밤중의 무의식. 무의식은 언제라도 의식에 밀려난다. 멍한 그 순간 무의식의 옷이 벌어진 틈새 무슨 생각이 들까? 뇌리 속 가장 원초적인 생각. 생각은 걱정. 걱정은 가장 현실적인 문제. 내 생활에 임박한 문제. 그 문제를 생각하며 어떻게 하나 어째야 풀리나 떠오르지 않는 답안을 궁리한다. 궁리하며 쪼르르 소변을 본다. 소변을 다 보기 전에 해답을 찾고 싶다. 오줌 줄기가 변기 속 웅덩이 가운데로 향하면 행여 숙면에 빠진 아내와 딸아이가 깰세라 물가 쪽을 공략한다. 물밖은 오줌 줄기가 튀게 되고 물안은 폭포처럼 시끄럽다. 물안도 밖도 아닌 물가가 타깃 포인트다. 물가는 물웅덩이를 요란하게 하지도 않고 밖으로 튀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하다. 포인트를 노리며 쪼르르 싸다 보면 다시금 무의식에 빠진다. 가장 걱정이었던 생각들이 어느새 지나가고 오직 실수하지 않기 위해 집중하게 된다. 짤짤짤~ 마지막 한 방울까지 포인트에서 벗어나지 않게 조심히 털어낸다. 성공했다. 그제야 고개 들어 화장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본다. 이게 나구나! 잠결에 반쯤 감긴 눈으로 희뿌연 조명아래 당신 얼굴을 본다. 아니야 아니야 이건 진정한 내가 아니야 하며 레버를 내린다. 쏴아아 하는 소리가 지나가면 살며시 화장실문을 연다. 물 한 모금 마실까 하다가 그냥 침대로 향한다. 어둠 속 엉금엉금 침대 끝을 짚어가며 베개를 찾는다. (언젠가 무의식에 가다가 침대 모서리에 박치기한 적이 있다) 베개 아래 내 영역을 침범한 아내의 팔다리를 저쪽으로 밀어낸다. 비로소 확보된 침대한쪽 좁은 공간. 가운데도 아니고 바깥도 아니다. 아늑하다. 내 한 몸 누일 곳은 바로 여기구나. 따뜻한 이불속. 사지를 쭉 펴고 편안함을 즐긴다. 다시금 잠드는 시각. 


안녕 지난밤의 낯선 얼굴이여. 오늘밤 할 일은 했으니 내일 일은 내일 보자고. 난 모르겠다고. 걱정 따윈 그냥 귀찮다고. 일단 자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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