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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Jun 24. 2020

장편소설 응모하기

봉투에 소설 응모라고 쓰자 파이팅하는 우체국 여직원.

담배 피우기 좋은 벤치, 옆에는 벚나무가 앞에는 남강이 보인다.





대화가 고팠다. 


한 달 꼬박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누구와도 마주 서서 마주 보며 말하기를 하지 않았다. 삼십 대. 이제 이 이상 철부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 긴 삶의 굴곡 어린 역경 앞에서는 아직이다. 생김새는 어른인데 간간이 이상스레 어른의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던 나날이 계속되는가. 그래서 미처 어른이 되지 못하였음에도 어른인 척 세상사 맞추어가기만 하고 맞추는 거마저 시행착오 중인 나는 역시 철부지다. 나는 생각했다. 맞추지 않겠다. 이제 기록해 둘 때다. 더는 미룰 수 없다. 어린 날의 기억을 사랑을 추억을 유념을, 그리고 어른의 역할을 위해. 진주시 상대동 연암도서관으로 갔다. 매일 아침 걸어서 갔다. 아침의 정경이 반복된다. 커다란 등산 가방을 짊어지고 계단을 올라 열람실에 간다. 나는 창가 구석진 자리에 가방을 내린다. 매일 앉는 자리다. 도서관에는 수많은 이가 드나들지만 수많은 뜨내기를 뺀 나만이 인정하는 동료가 있다. 이른 아침 나와 거의 동시에 짐 푸는 여자. 이십 대 후반이나 되었을까. 단발에 안경을 낀다. 하얀 피부에 드러낸 팔다리가 가늘다. 그녀는 반대편에 앉는다. 매일같이 나는 동편 끝에 앉고 그녀는 서편 끝에 앉는다. 이처럼 먼 거리에 떨어진 우리지만 일곱 시, 열람실 문이 열리는 시각, 우리는 공간을 둘이서 양분한다. 더없이 여성스러운 그녀, 잠시간 행복, 평화, 둘만의 흐름이 계속되는. 얼마간 시간이 흘러서 수많은 이가 들어오고 나가고 화장실 가고 매점 가고 와중에 누구든 먼저 커피를 마시러 나선다. 그러면 또 남은 이는 커피 마시는 곳 벤치로 뒤따른다. 우리는 벤치에 나란히 앉는다. 벤치 역시 이쪽 끝에 내가 앉으면 저쪽 끄트머리에 그녀가 앉는 식이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지 않는다. 대화도 없다. 그래도 우리는 동료다. 아침 일찍 꼬박꼬박 나오게끔 하는 동료. 커피를 마시게 하고 점심을 먹으러 가고 저녁을 지나 늦은 밤 열 시, 도서관이 마칠 때까지 도서관에 머무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녀에게는 내가 필요하고 내게는 그녀가 필요하다. 우리는 왜 하필 도서관에서 함께 할까. 공부가 독서실이나 집보다 도서관에서 잘 되듯이, 글쓰기도 집이나 절처럼 막힌 공간에서는 잘되지 않는다. 이른바 군중심리 때문. 군중심리는 끌려가는 성질을 발산한다. 마치 등산할 때 산악회를 통해 무리 속에서 내내 끌려가는 것 같은, 단지 앞사람만 보고 발걸음을 옮기면 되니까, 다른 잡생각이 끼어들 틈 하나 없이, 그리 큰 의지는 없어도 돼. 그러니 결심을 잊은 본인을 너무 탓하거나 괴롭히지 말고 자신을 인정하고 그저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공부하는 도서관의 귀재들에게 끌려가기를 선택했다. 끌어주는 신비한 기운을 양껏 받고자 나는 고개 들어 그녀를 의식했다. 그녀가 먼저 커피잔을 들고 도서관 뒤편 벤치로 간다. 거기서 그녀는 커피만 마시는 게 아니다. 커피 한 모금 스읍 마시고 담배를 꺼내 피운다. 나도 그녀 옆에 앉아서 담배를 입에 문다. 커피와 담배. 하나의 벤치 위 우리는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대략 한 시간마다 한 번,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 정해놓은 시간은 아니지만, 우리는 규칙을 지키듯 벤치에서 만난다. 이따금 상대가 늦을 때면 짧아진 담배를 차마 더 피우지도 못하고 하염없이 빈자리를 응시한다. 약속된 만남이 아니건만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한 자극을 주지 않기 위해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게 하기 위해 약속을 지킨다. 


그러면 나는 도서관에서 대체 무엇을 했나. 

가족에게는 공부한다고 말하고는 공부보다 글쓰기에 집중했다. 공부는 젖혀두고 글쓰기에 치중했는데 다름 아닌 소설이었다. 소설 쓰기. 그중에서도 하필 장편을 선택했다. 보통 단편을 여러 편 써서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거나 입상하거나 진입하는데, 나는 웬걸 장편을 쓴다. 사실 단편을 쓰지 않은 것도 아니다. 작년의 일이다. 틈틈이 단편소설을 스무 편 가량 썼다. 편당 백매씩 이천 매를 썼다. 이천 매라고 하니 엄청나게 많은 양 같다. 그래도 단편은 끽해야 백매로 호흡이 짧아 며칠 만에 해치우곤 했다. 11월 신춘문예 응모 기간에 맞춰 한 신문사에 하나씩 응모했다. 중앙지와 지역지 모두 찾아서 각기 다른 작품으로 보냈다. 12월이 왔다. 타 지역 번호가 찍힌 전화가 올 때마다 나는 깜짝깜짝 놀랐다. 수화기 너머에서 고객님이세요? 라는 말이 들릴 때마다 심장이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았다. 겨우 진정 평정을 외치며 정신 차리니 1월이 와버렸다. 겨울 철새가 도래하듯 새해가 도래하는데 나는 도래도래 고개를 흔들었다. 스무 편을 스무 곳이나 보냈는데 모두 낙방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간혹 심사위원들의 평을 보면서 아쉽게 떨어진 작품 중 언뜻 내 것에 관한 언급을 보면 내심 기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이것이 현실인가, 하면서도 현재를 뚜렷이 인지할 수 없었다. 환상 속에 살고 있구나. 나는 곰곰 따져보았다. 단편소설은 한 곳에 보통 백여 편에서 천여 편이 몰린다. 그러니 백대 일에서 천대 일의 경쟁률이 형성된다. 그런 배합 속에서 깔때기를 통과해 최종 비커로 떨어지는 한 방울, 그것은 나의 땀일까, 내 땀이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깔때기 바닥까지 그 물성을 유지한 채 무사히 미끄러져 내려가 찰박! 소리를 낼 수 있을까. 나는 상상해보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럴 수가 없다. 물리적으로 도저히 불가능이다. 최종적으로 비커 바닥에 도착한 그 물방울은 온전히 저만의 몸이 아니다. 다른 어떤 종류의 물기가 더해짐이 분명하다. 그래야 물방울로서의 형태로 최종 도달할 터다. 고작 물방울 한 방울이 오래도록 목적지까지 줄곧 원형을 유지하기란 하늘의 도움이 없는 한 미션 임파서블이다. 그러면 어쩌나. 결국 보다 경쟁률이 덜한 곳으로 시선을 돌리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블루오션, 장편소설이다. 장편은 원고지 백 매가 아니라 천 매의 세계다. 따라서 아무나 도전하지 못한다. 천 매가 실패했을 때, 그 후폭풍은 자못 가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많은 도전자는 처음 거의 다 단편에 매진한다. 신입일수록 그렇다. 나는 과감히 단편 지옥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그래, 장편이다. 도전하자. 그러나 나는 몰랐다. 이토록 외롭고 고달픈지를 몰랐다. 무엇보다 꾸준히 써야 했다. 꾸준히 쓰기 위해 나는 페이스메이커를 보듯 벤치에서 그녀와 만난다.  




눈이 따갑도록 노려봤다. 

모니터를 보고 또 봤다. 처음에는 진중하게 고치고 세심하게 퇴고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퇴고 속도는 더뎠고 조급한 마음은 커져만 갔다. 이게 과연 제대로 된 문장일까. 자문해보지만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늘 초고 쓰는 기분으로 서둘렀다. 장편소설이란 무엇인가, 원고지 일천 매의 압박이란, 대체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구성을 짜야 하나, 화면에서 하얀 커서가 깜빡깜빡 인지되고 암담하기만 한 순간도 여러 번. 나는 백지 위에서 무엇을 쓸까, 무엇으로 이야기를 채울까, 이것이 글인가 독백인가 속삭임인가 낙서인가 아니면 타자 연습인가 분별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마감이 다가왔다. 마감일이란 즉 응모 마지막 날이다. 마감일 소인이 유효하다는 말에 나는 결국 최종일인 금요일까지 소설을 끌고 왔다. 금요일 오후 마감이 채 한 시간도 남지 않았을 때 나는 바삐 도서관 자료실로 달려가 프린트 카드를 샀다. 그리고 컴퓨터실에서 로그인하고 화면에 소설을 띄웠다. 쭉 훑어보고 인쇄를 클릭했다. 프린트기에서 한창 종이를 투다다 내뱉고 있을 때 아차, 쪽 번호를 매기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허겁지겁 취소 버튼을 클릭했지만 이미 늦었다. 촉박한 시간에 쫓겨 볼펜으로 숫자 1부터 123까지 한 장 한 장 손수 적었다. 내용만 좋으면 괜찮겠지, 하고 자가 치유를 했다. 이윽고 두툼한 종이 뭉치를 들고 상대동 우체국으로 갔다. 우체국은 시청 옆에 있다. 시청 옆 큰길은 공무원들과 민원인들로 붐비는 곳이다. 저마다 분주한 걸음으로 공적 볼일을 보는데 나는 혼자 사적 볼일을 위해 공적 거인들의 가랑이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우체국 한쪽에 섰다. 원고지 천 매를 에이포 용지로 환산하니 123 매다. 여기에 신상이 담긴 한 장을 더하니 124매. 양면 인쇄를 할걸 그랬나? 아니다. 한 면씩 꽉 채워 124장이다. 무게감이 중요하다. 묵직한 종이 뭉치를 봉투에 넣어 봉하려다가 다시 꺼내 겉면에 조심조심 기재사항을 먼저 적었다. 주소를 적고 봉투 중간에 '장편 소설 부문 응모'라고 빨간 매직펜으로 커다랗게 썼다. 마침내 124매에 입 맞추고 봉투에 넣었다. 입구에 풀칠하고 테이프까지 덧붙였다. 마감까지는 이십 분이 남았다. 핸드폰으로 다시 한번 공고를 보고 마감일 소인까지 유효하다는 문구를 새겼다. 나는 그제야 번호표를 뽑아 창구 앞에 섰다.


머릿속으로 지난 한 달이 뮤직비디오처럼 스쳤다. 

정신없이 초고를 다듬어 고치고 급기야 어느 부분은 고심 끝에 삭제하고 다시금 정해진 양을 채우려 골머리를 싸맸던 시간. 생각 같아서는 한 번만 더 퇴고하여 좀 더 부드러운 문장을 만들고 싶지만 그러기엔 시간과 인내가 손을 들어 어쩔 수가 없었노라, 내용만 좋으면 됐지, 이것이 최선이다 하고 끄덕거렸다. 끊임없이 괜찮다면서 합리화하는 마음. 이렇게 장편 소설 하나를 끝내는 게 중요한 거야. 도중에 멈추지 않았잖아. 아무렴 난 성장하는 거라고. 나는 자신에게 칭찬하고 있었다. 차례가 되어 봉투를 내밀었다. "빠른 등기로 부탁합니다." 그러자 창구 여직원이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고객님 근데 빠른 등기는 월요일에 도착하고요, 특급은 내일 오전까지 도착합니다. 특급으로 변경해 드릴까요?" "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빠른 등기면 됩니다." 나는 잠깐 특급으로 할까 생각을 해봤지만, 어차피 일반적인 마감 시한에는 늦은 터라 토요일 오전에 도착해봐야 받아볼 직원도 없을 거라 짐작했다. 또 나처럼 마감날 소인으로 보낼 이가 아무래도 수두룩할 것이다. 소설이란 게 그렇다. 잡고 있어 봐야 뾰족한 수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손에서 척! 옜다! 하고 내놓지를 못한다. 밥을 먹다가도 화장실에서 힘을 주다가도 돌연 생각나는 바 있어 퇴고에 들어가기 일쑤다. 그렇게 고쳐볼까, 그렇구나! 바로 그런 마무리가 있었어, 그런 반전이 타당성 있으려면 초반 복선도 손을 봐야겠는데, 이처럼 소설은 마감 전까지 끝없이 내용이 바뀌기 마련이다. 특히 나 같은 초보의 글은 마감 며칠을 남겨두고 심지어 마감 당일 아침에도 결말은 고쳐지는 법. 그리하여 대부분 문예 응모작들은 마감 소인을 찍고 담당자에게 느지막이 도착한다. 나 역시 종일 진땀이 났다. 정말이지 제정신이 아니었다. 고치고 인쇄하고 송부하기까지 지나간 한 달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이제 끝이구나. 내 손을 떠나는 그대, 안녕.


한편 여직원이 나의 작품, 봉투를 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으레 이 타이밍에서 나올 질문을 알기 때문이다. 내용물은요? 내용물이 뭐지요? 라고 물어올 것이다. 그러면 뭐라고 답해야 하지? 서류요 라고 하면 무슨 서류요 라고 물어볼지도 모른다. 종이요 라고 하면 무슨 종이냐고요 라고 다그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직원은 알 듯 모를 듯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말없이 타이핑만 한다. 나는 그런 여직원을 보며 긴장한다. 질문을 기다리는데 왜 질문을 안 하는 거냐. 어쩌면 빨간 글씨로 커다랗게 적힌 '장편 소설 응모'를 보면서 추측했을지도 모른다. 저 남자가 소설을 썼구나. 신춘문예 같은 건가. 그런데 장편소설이라니. 장편소설은 오래 걸리는 게 아닐까. 멀쩡한 남자가 장편 소설이라니? 과연 얼마나 걸렸을까? 그것도 진주에서? 여긴 고작 지방의 작은 도시일 뿐인데? 아무리 봐도 삼십 대 같은데 이따위 장편소설이나 쓰는 팔자라니, 가족도 없나? 먹여 살릴 처자식도 있을법한데? 처자식이 없더라도 저 한창나이에 장편소설이라니, 소설 같은 걸 쓰고 있으면 가족이 싫어할 텐데? 아마 장가도 가기 힘들 거야, 이 정도 분량을 쓰려면 적어도 몇 달은 걸렸을 텐데, 그동안 먹고사는 일은 어떻게 했지? 라고 여직원이 생각하지나 않을까 나는 염려스러운 눈길로 마치 송아지가 떠나는 제 어미를 보며 끔뻑끔뻑 하듯 창구를 바라봤다. 이윽고 창구의 여직원은 컴퓨터를 보며 발 수신 주소를 입력하고 영수증과 스티커를 출력했다. "이천육백삼십 원이요." 여직원은 모니터를 보며 말했고 나는 꼬깃꼬깃 만 원짜리를 꺼내 창구 접시에 놓았다. 내가 휴우, 식은땀을 닦는데 여직원이 잔돈을 거슬러 주며 말했다. "꼭 성공하세요." 그리고는 등기 스티커를 봉투에 붙였다. 순간 나는 아찔하여 "네?" 하고 물었다. 역시나 내 짐작이 맞았군. 저 여자는 그리 생각했던 것이다. 아주 한심한 인간이라고, 나 따위 딱한 인간이 쓴 소설이 뽑힐 리가 없다고, 그리고 뽑힌다 해도 그게 또 뭐 대단한 거라고, 세상천지 한창나이에 도서관이나 골방에서 소설 따위나 쓰고 있노라 당당히 광고하는 거 아니냐고,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두 손 번쩍 환호성이나 지르지 않으면 다행이지, 라고 생각했을 게 분명하다. 나는 두려움 어린 눈으로 여직원을 봤다. 여직원은 그런 마음도 모르고 살짝 올려다보며 "파이팅이요!" 하고 싱긋 손들어 주먹마저 쥐어 보였다. 나는 벌게진 얼굴로 어색하게 손을 들었다. "아, 예 감사합니다." 나는 돌아서서 부랴부랴 우체국을 빠져나왔다. 놀림당한 기분이 들었다. 뭐라고 한마디 반박하지도 못하고 낯선 이에게 젊은 날 모든 것이 까발려진 것 같은, 벌거벗은 몸에서 영원히 비밀로 숨기고 싶었던 콤플렉스를 고스란히 들킨 것 같은. 왜 그렇게 견디기 힘들었을까. 나는 종종걸음으로 우체국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경보하듯 걸었다. 뛰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제트기보다 빨랐다. 한참을 걸어 어느 작은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혼자서 "으하하" 소리 내 웃었다. 왜 이렇게 부끄럽지? 소설 응모라는 문구를 보고 그런 말을 했겠지 하니 더더욱 오그라드는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마치 작은 미꾸라지 한 마리가 러닝셔츠 안에 들어가 꼬물꼬물 간지럼 태우며 기어 다니는 것 같은 기분. 뜬금없는 여직원의 파이팅 한마디에 한 달간의 초조함이 날아가버리는 것만 같았다. 한 달 만의 대화. 나는 주머니 속 영수증을 아무렇게나 구겨서 길가 쓰레기봉투에 튕기고 도서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마냥 가뿐해야 할진대 어딘가 서늘한 기운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뭘까, 이건 설마? 아차! 나는 서류철을 우체국에 두고 온 것이 떠올랐다. 급히 고민에 휩싸였다. 서류철에는 초고와 소재거리가 잡다하게 인쇄된 용지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 서류철이 어떤 이의 것인지, 여직원은 즉시 알아챌 것이 분명하다. 나는 슬픈 예감에 푹 고개 숙였다. 우체국을 누비며 고객의 안내를 도맡던 늙수그레한 국장이 말할 테다. "어라? 여기 서류철이 있네, 누구 거지?" 그러면 퍼뜩 여직원이 나서겠지. "조금 전 소설 지망생 아저씨가 두고 간 거네요. 국장님도 보셨죠? 멀쩡하게 생긴 삼십 대 아저씨요. 일단 제가 가지고 있을게요. 어디 보자, 여기 주소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보관하던 여직원은 분명 그것을 찬찬히 들춰보리라. 서류철에는 아무런 잠금장치가 없다. 감싸는 파일이나 봉투라는 겉옷도 없다. 여직원이 열고자 하면 언제든 친절하게 열릴 것이다. 서류철은 부드러운 여성의 손길에 놀라 나의 모든 부끄러움을 활짝 열어젖혀서, 어서 읽어다오, 찬찬히 읽어다오, 간지러워도 일단 참을 것이다, 라고 할 터다. 의리 없는 놈. 단지 종이 한 장 들출 의지만 있으면 읽힐 것이다. 나는 깊이 한숨 쉬었다. 시간은 이미 우체국 업무시간을 넘어섰다. 도리없이 내일까지 아니, 월요일까지 초고들은 그 맨살을 드러내고 있어야 한다. 그냥 초고를 포기할까 마음을 고쳐보지만, 그녀의 '파이팅'이라는 한마디가 자꾸만 걸렸다. 그놈의 파이팅만 없었어도 초고를 포기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순간, 핸드폰으로 모르는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나는 불안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저기, 작가분이시죠? 우체국이에요." 

여직원이었다. 나는 그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견딜 맷집이 모자랐다. 버거웠다. 목소리는 견디기 힘든 부분, 간지러움을 참기 힘든 한계를 건드렸다. 갑자기 작가라니? 나는 작가가 아니다. 글을 썼지만, 작가는 아니고 더구나 여직원에게 작가라고 소개한 적도 없는데 불현듯 작가라니, 이것은 저 여자가 읽어본 것이 틀림없다. 나를 빠짐없이 다 아는 저 여자는 누군가. 가슴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쿵쾅거렸다. 어떤 대답이라도 끄집어내야 했다. "네, 맞아요." 자신은 작가가 아닌데 작가가 맞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더 이상의 설전은 무리한 거라 설정하고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여기 원고를 두고 가셨던데요? 지금 우체국 앞에 가지러 오시겠어요?" 당혹스러운 말이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네, 죄송합니다. 오 분 안에 뛰어갈게요." 나는 전화를 끊고 또 자책했다. 내가 왜 뛰어간다고 했을까. 어찌하여 뛰어간단 말인가. 뭘 잘못했길래? 우체국 영업시간이 지났으니 직원들은 곧 퇴근할 때다. 그러니 마땅히 뛰어가야 한다. 단지 그것뿐? 물론 아니다. 나는 초고의 원초적인 속내를 들켜서 낱낱이 스캔당할 것을 두려워한다. 한시라도 빠르게 탈취하여 삼십 대라는 연령이 종이 몇 장으로 판단될 가벼운 거라고 치부되기 싫어서다. 이십 대가 보기에 삼십 대가 되면 뭔가 대단한 게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터. 그래서 삼십 대가 두렵지만, 은근히 기대되기도 한다. 한데 이 초고를 보아하니 방황하는 정도는 이십 대든 삼십 대든 별반 차이가 없군, 그렇다면 한 살이라도 어린 이십 대가 낫단 말인가. 삼십 대는 초라하기만 한가? 아니야, 뭔가 있을 거야. 이게 전부 일리가 없다고. 나는 다른 것을 생각할 틈이 없었다. 헐레벌떡 길 따라 뛰었다. 나의 삼십 대를 위해, 맨살을 지켜야 해. 나의 소중한 피부. 피부 속 여문 살. 살 아래 검은 피, 핏속에 혈소판, 상처가 얼마나 많았던가, 피날 때마다 아물고 다칠 때마다 굳었다. 상처 위에 상처가 났고 아픔 속에 아픔이 묻혔다. 그러한 과정을 그렇게 훔쳐보는 것은 허락하지 못한다. 때마침 저 앞 교차로 신호등이 녹색불로 바뀌자 나는 혀를 빼물고 내달렸다. 입을 벌려서 단 하나의 글자도 용납하지 못한다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싶었다. 치부란 무엇인가.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 그게 전부가 아니다. 들키고 싶지 않은 속내 깊은 곳에는 근원이 존재한다. 근원의 속성은 사악하다. 사람은 사람을 모르기에 사람으로 대할 수 있다. 근원은 들키면 안 되거나 부끄러운 부류가 아니라 몽땅 사라져 버리는 성질을 가졌다. 네가 내 얼굴을 봤기에 사라진다. 너는 날 몰라야 했다. 보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이제 알았기에 나는 네 앞에 설 수 없다. 존재의 가치가 날아가 사라진다. 더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못하는 것. 들켜서 껍질이 날아가는데 껍질은 밑바탕이다. 바탕이 없는 삶은 껍질만 남고 껍질만 남아서 가치가 없는, 썩은 나무줄기처럼 변하게 된다. 헐떡이는 머릿속에서 여직원의 얼굴이 떠오른다. 새치름한 눈에 당돌한 말투로 파이팅이요, 파이팅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강타한다. 그만! 파이팅하지 마! 나는 무엇을 위해 파이팅받고 파이팅을 하나. 어느새 우체국 앞 골목이 보인다. 단숨에 도착했다. 나는 전봇대를 부여잡고 가쁜 숨을 쉬었다. 이미 내 손을 떠났다. 심사위원들도 냉철히 읽을 터다. 이 단계를 극복해야 해. 눈에 안 보인다고 해서 그들이 소설을 내버려 둘지 만무하다. 눈으로 보지 않았다고 해서 부끄러움이 상쇄되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 직접 대면하는 건 또 어떤 것인가. 아직 거기까지는 고려하지 못했다. 대체 언제까지 숨겨둘 것인가. 내가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하는 중 골목 어귀에서 불쑥 여직원이 나타났다. "여기 계셨어요? 안 오시는 거 같아서 집에 가던 길인데, 여기 서류요. 받으세요." 나는 얼결에 서류철을 돌려받았다. 서류철을 보며 생각했다. 그녀는 어찌하여 품에 가지고 있나, 마주치지 못했다면 집에 가져가려고 했나,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소설을 쓰는 동안 혼자만의 세상에서 헤매었다. 심사위원들이 깐깐하게 읽어도 좋다. 나는 각오할 거야. 나의 삼십 대는 이렇습니다. "좋은 소식 있으면 알려주세요." 그녀는 손 흔들며 다른 동료와 함께 멀어져 갔다. 헤어지고 난 뒤 한 블록 지날 즈음 빨간 차 한 대가 지나간다. 골목길 막히는 구간에서 차가 선다. 차 안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린다. 귀에 익숙한 목소리다. "아까 그 작가 봤어요? 수줍어하는 얼굴이 정말!" 나의 도둑 귀는 그 한 문장을 잡아내었다. 순간 나는 번개같이 몸을 돌려 숨기고 어둠 속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여직원의 비웃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요즘 한 달에 한 번 상대동 우체국 앞에 간다. 

시청 옆 우체국은 여러 산악회의 버스 타는 지점이다. 일요일 아침이면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선다. 등산객은 시청에 주차하고 산악회 버스를 탄다. 그리고 저녁이면 산악회 버스에서 내려 시청에서 기다리던 각자의 차를 타고 귀가한다. 떠나고 돌아오는 곳. 그곳이 현재의 시청 옆 우체국이다. 아침이면 설레고 저녁이면 아쉬운 곳. 우체국 앞에서는 설레고 아쉬움의 감정이 모여 소용돌이친다. 124매를 봉투에 넣어 보낼 때도 그랬다. 설렜다. 오늘 보냈으니 며칠간은 행복하리라.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막연히 당첨을 기대하는 상상, 뽑히면 어쩌지? 어떤 소감을 준비하나, 소소한 행복, 나는 희망을 품고 오늘을 기다린다. 그러다 발표일이 지나고 묵묵부답 소식 오지 않으면 지극히 아쉬움의 물집이 잡힌다. 물집은 점점 커진다. 건드리면 아프고 가만두자니 염려되는. 간밤에 물집을 바늘로 꿰어 실을 묶어 둔다. 그러면 조금씩 섭섭함, 아쉬움이 묻어 나와 아침이면 물기가 다 빠진다. 지나고 보니 지나간 시간이 실 같다. 기다란 실에 아쉬움은 끝없이 배어 나와 마르며 치유된다. 어렵사리 헤어났다. 소설을 공상하던 날, 벤치에 함께 앉아 담배 피우던 그녀, 아침부터 밤까지 옆에서 동반자가 되어준 존재, 나는 물끄러미 그녀가 있던 쪽을 바라본다. 그곳엔 어린 왕벚나무가 서 있다. 파란 잎사귀가 나뭇가지 마디마다 빽빽이 났다. 잎사귀는 내가 담배 연기를 보낼 때마다 바람에 팔랑거린다. 연기는 잎사귀를 통과해 하얀 구름이 된다. 구름은 내게 말한다. 오늘도 늦지 않게 나왔네. 계획대로 하루에 오십 매는 써야 하는데 어제는 삼십 매 밖에 쓰지 않았네. 왜 그래? 힘 좀 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긴 머리를 휘날리듯 이파리는 팔락거렸다. 나의 그녀가 되어 준 나무. 도서관 벤치가 놓인 경사면에는 앳된 벚나무가 사방에 있어서 정진하던 이들의 짝꿍이 되어주곤 한다. 마침내 나는 도서관을 박차고 나왔다. 아내가 말했다. "써볼 만큼 써봤지? 이제 속이 시원해?"


나는 가보았다. 

도서관 벤치에 앉아 그날처럼 남강을 보는데 문득 벚나무가 옆에서 힐끔거린다. 오랜만이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나는 그녀에게 더는 보내줄 게 없다고 말한다. 나무는 파란 이파리를 내보이며 지금은 자기도 보여줄 게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벚꽃이 필 때 오라고 한다. 그때 다시 구름을 만들어보자고 한다. 나는 시무룩이 속삭인다.


어쩌지? 나 담배 끊었는데. 


그래도 가끔 보러 올게.      





도서관 뒤편에는 벤치가 곳곳에 있다.
나 홀로 벤치에서 구름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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