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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Feb 20. 2023

신문 한 부로 버티는 세상

잠도 오지 않는 밤 신문을 뒤적이며





신문을 사고 기뻐하는 순간




아침이면 무엇으로 일어나는가?



허리를 일으키고 손을 디뎌서 일어나는가? 이부자리에서 일어나려면 무언가 동력이 필요해. 나를 일으킬 동력은 무엇인가? 동력이 없다면 어쩌면 일어나지 못할지도... 오직 일어나기 위함으로 나는 동력을 만들고 또 만들며 아침을 떨쳐낸다. 그럼 무엇으로 떨쳐내는가?

 

한때는 담배 한 개비를 피기 위함으로 일어났고 다른 때는 믹스커피 한잔을 타먹기 위해 일어났으며 어느 때는 신문 한 부를 보기 위해 일어났다.


아직 담배와 믹스커피를 모르던 어린 시절 오롯이 신문을 보기 위해 일어난 적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대문 사이에 끼인 신문을 덥석 집어들 때의 감촉.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은 새 신문. 내가 젤 먼저 발견했어. 아아 정말이지 행복 자체인 순간. 접히고 접혀 한 손에 들어오던 도톰한 두께. 아직 펼치지 않은 미지의 정보. 미지의 세계. 미지의 사람들. 미지의 이야기가 수많은 이들로부터 파생되어 하나의 책자로 모인 집결체. 그것이 신문이다. 신문을 펼치면 세상을 펼치는 것과 같다. 난 신문을 보기 위해 일어났다. 신문을 생각하면 눈이 반짝 떠졌고 신문을 집어 들기 위해 발딱 발딱 잘도 일어났다. 그러고선 신문을 고이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한글자라도 놓칠세라 두세 번씩 거듭 세상을 읽어나갔다. 아주 작은 자투리 칸에도 나름 독립된 이야기가 자리했다. 작고 독립된 이야기는 작고 독립된 세상을 만들었다. 어떤 기자가 어떤 글을 써 놓았나? 그래 그래서 그렇게 그랬구나. 신문을 보고 알았다. 한 장 두 장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까지 왔다. 마지막 기사까지 세상 돌아가는 걸 어슴푸레 파악할 즈음 중얼거린다. 정녕 신문 한 부를 다 읽었단 말인가. 곧바로 나는 다른 신문사 신문을 사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나간다. 다른 신문을 보고 싶다. 다시 새 신문을 보고 싶은 욕망.  


자전거를 타고 늘 가던 슈퍼를 찾아갔다. 장사가 잘 되지 않던 가게. 그래서 여태 팔리지 않은 가판대 속 신문들. 나는 신문을 가리지 않았다. 스포츠 신문 두 부에 일반 신문 한 부를 집어 계산했다. 한 부에 400원 정도 했던 것 같다. 천 이백 원을 지불하고 손에 든 신문 세 부. 신문만 세 부씩 사가던 청년. 그 순간 나는 부자가 된다. 읽을거리가 넘쳐난다. 신난다. 신문 세 부를 겨드랑이에 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두둑하다. 가슴이 쿵쾅거린다. 읽지 않은 신문. 거기다 오늘자 최신판 신문. 이보다 더 역동적인 것이 존재하려나? 나는 새로운 세상을 가졌다. 세상 돌아가는 판을 보면서 즐길 것이다. 스포츠 신문 구석구석 만화조차 재미있었다. 연재되는 모든 게 좋았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끝나지 않은 세상. 나는 신문을 유달리 좋아했다.


군대를 가고 휴가 나올 때 시외버스 탈 일이 많아졌을 때도 터미널에서 신문 두 부씩은 꼬박꼬박 샀다. 버스에 올라 신문을 펼치면 비로소 안심이 되고 재미있는 휴가가 시작되었다.  


어릴 적 초등학교 4학년 즈음이었다. 초등학교에 배달 오는 신문은 소년 조선일보와 소년 한국일보가 전부였다. 대다수가 소년 조선일보를 구독했다. 나는 일부러 흔한 조선일보가 아니라 드문 한국일보를 선택했다. 소년 한국일보는 한 장으로 구성되고 네 페이지로 이루어졌다. 신문은 접고 접혀서 우유팩과 함께 교실로 배달되었다. 아이들이 "야! 한국일보는 누구 거야?" 하면 달려가 쑥스러운 듯 "내 거야" 하면서 받아 들었다. 펼치고 펼치면 신문 한 장이 크게 보였다. 크게 사방을 둘러싼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 그 신문을 나는 한 글자도 놓칠세라 정독했다. 거기다 두세 번 정도 반복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너무 자주 들여다봐서 아예 외울 정도가 되어서야 신문을 놓았다. 나의 신문 중독은 그때부터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혼자 살던 시절. 혼자가 퍽 외롭던 시절. 늦은 밤 사택에 들어갈 때면 편의점에 들러 신문을 샀다. 신문 한 부를 사다가 이불속에 누워서 펼쳐 보다가 스르륵 신문을 덮은 채 잠들곤 했다.


비 오는 날이면 불안했다. 혹시 신문이 배달 안되면 어쩌지? 신문이 없는 아침을 버틸 수 있을까. 나가보니 신문은 비닐 속에 넣어져 배달되었다. 정성스레 비닐 속에 든 신문. 이 포장의 수고로움에 감동했다. 신문을 쥘 때의 바스락거리는 감촉. 섣불리 비닐을 뜯을 수 없다. 뜯지 못하고 그저 비닐 속 신문만 만지작거리며 그 감촉을 즐겼다. 아아 난 아직 새 신문을 간직하고 있어. 비닐 속 신문을 보라지. 뜯으면 금방이라도 손에 쥐어질 거야. 특유의 부드러운 촉감. 내 손가락 지문이 비닐을 눌러 신문을 느낀다. 아직 보지 않았기에, 내가 모르는 무궁무진한 세상이 손안에 들려있어. 난 세상을 가지고 있는 거야. 가지고 있는 세상을 펼쳐보면 얼마나 신날까. 신나는 그 순간을 고대하며 신문을 사랑스레 내려다본다. 이 속에 가족, 친구, 사람들 모두 들어가 있지. 신문 보는 시간은 곧 외로움을 잊는 시간.


신문이 내게는 그러했다.  



신문을 보며 세상을 만날 때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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