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맞춤

어느 정도 거리가 자연스러운 것일까. (단편소설)

by 머피



궁리 끝에 마음을 굳힌다.

그녀 얼굴을 지켜보는 시간이 늘면서 어느 시점부터인가 대범하게 변해버렸다. 해가 뜨기 전 실행해야 해. 나는 망설이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용기 낸다. 어쩌면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보석을 포착한 하이에나처럼, 홀연히 보고도 보지 않은 것처럼 모르는 척 준비한다. 주워도 될까? 줍기까지 수많은 고민을 하고서 마침내 줍기 직전, 극도로 흥분한 심리 상태. 일촉즉발의 위기. 고냐? 스톱이냐? 콜이냐? 정말 괜찮을까? 따져보라. 계산하라. 마지막 갈등. 촤라라 숫자가 빠르게 흐르다 얼결에 작은방 친구가 덜컥 떠오른다. 계산 중단! 친구가 갑자기 들이닥치면 어쩌나. 그러면 대학 생활은? 아아 친구의 존재는 시베리아 북서풍의 냉혹한 기운으로 계산기를 얼려버린다. 포기하자. 그냥 모르는 척 이렇게 버티자. 이것은 내가 고의로 연출한 장면이 아니라며 애써 다독거린다. 사실 술이 전부 연출하지 않았냐며 따지고 싶다. 나는 거친 물결에 이리저리 떠밀려 그냥 이모양 이대로 흘러왔을 뿐. 마치 플랑크톤 같은 존재. 스스로 어떻게 만든 상황이 아니야, 라고 속으로 말한다. 속으로 말하면? 그게 면죄부가 되니? 알아듣니? 나는 다시금 계산기 전원을 켠다.


시간은 자꾸만 흐르고 새벽의 기운은 점점 파랗게 물들어간다.

기회라는 단어가 눈앞에 둥둥 떠다닌다. 그래, 이러한 상황에서 기회라는 놈에게 최소한 도리는 하자. 기회라고 생각한 것만도 벌써 여러 번인데. 생각은 생각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실행하자. 그제야 어떠한 기적을 위해 멈추었던 그림이 진행이란 것을 시작한다. 세상 만물이 드디어 움직인다. 나는 아직도 잠결이다, 잠을 자는 중이다, 라고 세상천지 모든 신에게 전하고 천천히 숨을 다듬어 두근두근 끝내는 멈추어 그녀의 입술에 입을 드디어 처음으로 살며시, 아주 천천히, 한없이 부드럽고, 소리 나지 않게, 마치 민들레 꽃씨가 공중에서 공기의 흐름을 감지하여 정확한 계산으로 재주 돌아 속도를 줄이고는 남거나 모자람 없이 목표한 땅에 사뿐히 착지하듯 ‘쪽!’ 맞춘다.


입을 맞추자 그녀의 숨소리까지 멈춘 것만 같다. 입술은 촉촉하다. 가만히 숨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가벼이 입술과 입술만이 터치한 것이 아니었다. 호흡과 호흡이 만났다. 사람과 사람이 접속되어 비로소 포털사이트가 와이파이를 타고 노트북 화면에 열리는 것처럼 그녀의 모든 정보가 내게 접속되고 나 역시 그녀에게 속속들이 활짝 개방한 것이다. 꽃씨는 성공적으로 싹 틔우려나. 온 세상이 잠잠해지고 지저귀는 새소리마저 멈춘다. 동시에 귓속이 꽉 막혀 적막에 휩싸인다. 이윽고 천천히 달콤하면서 은은한 향이 우리를 감싼다. 주위 세상에 소리와 색깔과 공간이 사라지고 시간과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 간다. 하늘 아래 온전히 우리만 남았다. 잘했다고 잘한 거라고 생각했다. 심장은 차라리 웅장하게 뛰지만 겉면은 고요하다. 더없이 만족감에 취해 나는 스르륵 원위치로 돌아온다. 그래 봐야 고개만 조금 뒤로 물러났을 뿐이지만. 나는 세상에 또 없던 진보를 이루어냈다. 주위 만면에 오색 빛깔이 번쩍거린다. 혁명의 선구자가 된 느낌이다. 성취에 도취하여 참았던 숨을 천천히 아주 조금씩 내보내고 ‘자연스럽게’를 수십 번 되뇌며 간격을 조절한다. 대체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자연스럽고 이상적인 것일까.




‘어라운드 view.’

또 다른 자아는 공중으로 붕 떠올라 아래를 내려다본다. 나는 위에서 보내준 신호를 받아 어느 때고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자세를 조절한다. 완전범죄가 되려면 그녀가 눈 떴을 때 나는 눈 감은 상태여야 한다. 하지만 잠시도 그녀의 자는 얼굴을 놓치지 않으려 조금이라도 더 오래도록 보고 싶은 욕구에 눈 감을 수 없다. 그렇게 겉으로만 반쯤 자는 척하며, 밀린 과제를 해치운 뿌듯함에 취해 지켜보는데 흠칫, 아아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놀라운 움직임이 포착된다. 믿을 수 없는. 이번엔 그녀가 천천히 다가온다. 내가 했던 것처럼. 이것은 꿈일까? 꿈이 아니다. 떨고 있을 당신 마음을 생각하니 나는 더 떨린다. 내가 그랬듯 당신 또한 얼마나 갈등했을까. 그녀는 내가 움직인 속도보다 더 느리게 스르르 다가와 또 한 번 입을 맞춘다. 츱! 입술과 입술이 만나는 소리. 마치 무심결에 불쑥 움직이는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러운 잠투정의 동작이다. 그것은 이른바 우주쇼. 우주에서 수없이 발생하는 누적 인자가 곳곳에 작용하여 움직인다. 태양 달 지구. 그러다 마침내 일직선으로 나란히 선다. 위성에서 우주인이 보고 놀란다. 감동한다. 개기 일식은 그렇게 발현된다.


다시 호흡을 멈춘다.

한참을 입 맞춘 자세로 버틴다. 이번엔 내가 저지른 사고가 아니야. 그렇기에 섣불리 물러날 수는 없다. 어쩌면 그녀가 무안해할지도 모른다. 먼젓번엔 손 내밀어 보석을 주웠는데 이번엔 보석이 바람에 날려 알아서 내 손에 안착했다. 보석은 바람에 날리는 인자가 아닌데. 한편 나는 버틸 수 없었다. 숨을 내쉬어야 한다. 숨이 막혀서 세상이 캄캄해진다. 버텨야 한다. 버틸 때까지 버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나 숨을 참아본 적이 있던가. 생각아, 너 생각하고 내게 대답하는 것 맞니? 혹시 참았던 숨결이 거칠게 터질까 겁이 난다. 필사의 정신으로 그녀가 했던 것처럼 잠결의 행동임을 연출하여 세상천지를 속이고는 겨우겨우 반대편으로 몸을 돌린다. 비로소 조용히 아주 길게 숨을 몰아쉬었다. 드디어 그녀는 비교적 벌떡 일어나는 것처럼 움찔하다가, 몸을 일으킨 신속함에 비해 목소리는 금방 잠에서 깬 듯 말했다.


“응? 벌써 아침이네. 일어났어? 물 좀 줄까?”


나는 물끄러미 그녀를 보며 어쩐지 연극처럼 보인다고 말하려다 말았다. 그런 그녀를 보다가 어쩐지 여유가 생겨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토록 촉박했던 시간 뒤에 세상은 걱정보다 훨씬 더 느리다는 생각에 안심했다.


“응. 좋지. 근데 내가 왜 여기서 잤지?”


소중한 장면이 이대로 사라지는 게 아쉽다.

마주 보는 느낌이 좋은데, 좀 더 달콤한 시선과 이야기를 나누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 일어나지 마. 다시 여기 내 옆에 누워,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급히 일어나더니 조금 전 일들은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밖으로 나가 물 잔을 들고 왔다. 아무래도 자신의 어색한 연기를 덮으려는 속셈의 재빠른 동작인 듯싶었다. 우리는 부엌 식탁에 마주 앉았다. 곧 여섯 시다. 작은방 문을 열어보니 그녀의 친구는 아직도 뻗어 자는 중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녀 친구가 독한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하며 먼저 쓰러져 이탈한 연유로 그녀와 내가 안방이라는 독특한 공간에서 은밀하게 속닥속닥 대작할 수 있었음이라. 짐짓 일부러 자는 척을 했다 할지라도 그 속내를 들여다보니 내심 가슴이 아프다.


식탁에서 부스스한 모습으로 우리는 서로를 말없이 바라본다. 십여 분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말하지 못한 마음을 서로에게 말한 듯 밝은 표정을 짓는다. 아마도 ‘나는 네가 한 짓을 알고 있다’를 공유함 이리라. 나는 작은방 친구가 깰세라 그녀에게 학교에서 만나자며 인사를 하고 대문을 나선다.



또 다른 세상이 시작될 것만 같은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