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다큐멘터리 같은 삶을 표현한 영화
나는 어릴 적 이상하게 미나리를 싫어했다. 김밥도 미나리를 쏙 빼고 먹곤 했었다. 왠지 미나리 쑥갓 도라지 우엉 같은 향이 진하거나 뿌리 채소들이 어린 내겐 기호식품이 아니었던 것이다. 커서 보니 체질과 관련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미나리가 영화 제목인 영화를 보러 갔던 것이다.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 될 정도로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몰이 하는 영화라기에 관람 우선순위 1위로 가슴에 담아두었다가 시간을 내어 CGV를 찾았다.
영화 줄거리는 익히 알다시피 미국으로의 이민 붐이 일었던 1980년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희망을 찾아 낯선 땅 미국 사회에 정착하려고 몸부림 치는 어느 한국 가족의 삶을 그린 영화로 리 아이작 정(Lee Isaac Chung) 감독의 자전 이야기라고 한다.
병아리 감별사로 10년을 일하다 자기 농장을 만들기 위해 아칸소의 시골마을로 이사온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 아칸소의 황량한 삶에 지쳐 특히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들 치료 때문에 캘리포니아로 돌아가고픈 엄마 '모니카'(한예리), 딸과 함께 살려고 미국에 온 외할머니 ‘순자’(윤여정). 영화는 의젓한 큰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장난꾸러기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의 시선으로 그들의 모습을 포착해 나간다.
다들 여우조연상을 휩쓸고 있는 원로배우 윤여정을 주목하지만, 내게는 영화 <미나리> 그 이미지와 칼라를 존재 그 자체로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배우는 한예리 같았다. 그녀의 표정에서는 무척 힘이 드는 삶이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어떤 것이든 견디어내야 한다는 전세계에 퍼져 있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단단함이 사실 그대로 잘 나타나고 있었다. 주어진 것이니 묵묵히 그리고 근근히 살아가야 하는 우리 서민들의 삶, 잭팟(jackpot)이 터지는 것 같은 극적 반전도 없고, 법열(法悅)의 순간도 주어지지 않는, 늘상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한 뼘의 여유도 없이 살아가는 우리네 삶이 대개 그렇지 않은가.
이미지와 칼라라면 영화 <미나리>에서 느껴지는 것은 왠지 이유는 모르지만 지난 해 봤던 영화 <가버나움(Capharnaüm, 2018)>의 그것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러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같은 크기와 무게로 묵직하게 가슴을 짓누르는 아픔이 있었다. 영화와 같은 비현실이 아닌 바로 내 삶 속 현실에서 늘상 그러나 때때로 느끼는 그것으로 실감되는 그것!
115분간 내가 영화 속으로 깊이 몰입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영화 <미나리>가 우리의, 나의 이야기였던 까닭이리라. 사실 영화 <미나리>는 픽션이라기보다는 논픽션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 영화의 제작자가 브래드 피트(Brad Pitt)인 것이 신기했는데, 미국 사회가 이제사 동양문화에 눈을 뜨고 있는 것인가. 하필 최근 미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 범죄 사건들이 떠오르면서 그 묘한 대비에 묵직한 돌덩어리가 누르는 것 같은 생각에 잠겨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잘 살아보려고, 아메리칸 드림을 이뤄보려고 몸부림 치던 젊은 부부의 노력도 하필 아이들 보살핌 위해 모셔온 장모 순자(윤여정)의 실화로 인해 전재산을 잿더미로 날려 버리고, 그 농작물 저장소 화재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는 부부의 뒷모습 실루엣이 처연한데, 그 장면은 내가 감동 받는 타르코프스키(Andrei A. Tarkovsky) 감독의 영화 <희생(Offret, 1986)>의 그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제이콥이 데이빗을 데리고 외할머니 순자가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를 뿌려 일군 미나리 밭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끝난다. 우리네 삶 자체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재난 앞에 놓인 풍전등화와 같지만, 그럴지라도 그냥 씨만 뿌려놓으면 가꿀 필요도 없이 스스로 자라 하나 가득 밭을 이루는 미나리의 생명력이 바로 우리네 삶이라는 메시지인가. 마치 쓰다만 편지 같이 그렇게 영화는 마무리 되고 엔딩 크레디트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