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국내 유입 초기인 2020년 2월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 시진핑 주석과의 전화통화에서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에 있어 가장 가까운 이웃인 중국 측의 노력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한다”는 덕담을 건넸다. 앞서 취임 첫 해인 2017년 중국을 국빈방문해서는 “한국과 중국은 운명적 동반자”라고 했고, 그 밖에도 “중국은 큰 산, 한국은 작은 산” 등 중국에 대한 호감을 내비친 문 대통령이다.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 참여, 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협력’을 하지 않겠다는 문 정권의 ‘3불(不)’ 약속은 국가자위권을 포기하는 ‘제2의 을사늑약’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기회 있으면 말하는 것처럼 중국과 우리는 운명공동체이고, 어려울 때 힘이 되는 이웃이고, 중국의 번영이 곧 한국의 번영인 것일까? 역사는 결단코 “아니다”라고 말한다.
중국몽은 인류에겐 악몽
『중국 갑질 2천 년』(황대일 저, 기파랑, 2021)은 한중 ‘악연’의 역사를 고조선 시대부터 톺아 나간 책이다.
기원전 109년 한 무제의 고조선 침공과 이듬해 고조선 멸망,
수나라와 당나라의 잇단 고구려 침입과 뒤이은 나당전쟁,
중국 스스로 자기네 역사로 내세우는 요(거란)와 원(몽골)의 고려 침입과 간섭,
임진왜란 항왜원조(抗倭援朝) 미명으로 들어온 명나라 군대의 횡포와, 정묘호란을 부른 잔류 명군의 부작용,
삼전도의 굴욕으로 끝난 병자호란과 조선 말 간도 강탈,
원세개(위안스카이)의 국정농단으로 인한 근대화 골든타임 상실,
일제와 결탁한 중국 군부, 뒤이은 중국공산당의 한인 사냥,
6·25 남침 사주와 중공군 참전까지-
중국으로 인한 한반도 피눈물의 기록은 차고 넘친다. 한민족의 커다란 전쟁은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제외하면 전부 중국과 치렀다. 일본이 왜란과 식민통치로 한민족을 괴롭혔다지만, 통산 반세기도 안 되는 일본의 침략 기간과 그로 인한 우리의 고통 강도는 중국과 비교하면 족탈불급이다. 고조선 이래 한반도 역대 왕조·국가가 치른 대외 전쟁 중 마지막도 바로 1953년 정전(停戰)하고 여태도 휴전 중인 6·25전쟁이다. 북한 대표와 함께 중화인민공화국(중공)을 대표해 펑더화이(팽덕회)가 유엔군의 카운터파트로서 정전협정에 서명했다.
지난 2천 년 이상 동아시아의 유일 강대국으로 군림해 온 중국의 대외 행태를 저자는 ‘조폭 마인드’로 규정한다. 아쉬울 땐 숙이고, 부당한 요구를 순순히 받아 주면 주종관계를 형성해서 공생하다가도 빈틈이 보이면 가차없이 짓밟는다. 그들이 지리멸렬할 때 아시아는 평화로웠고, 그들이 강성할 때 주변 약소국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중국의 무수한 침략과 약탈, 간섭은 그 자체가 한민족에게 고통이었지만, 그 갑질이 남긴 후과도 뼈아프다. 고조선 멸망후 한사군 설치는 문명의 이동 통로를 가로막음으로써 한반도 남부 삼한(三韓) 지역이 고대국가로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명나라가 멸망(1644)한 후에도 조선에 남은 명나라 잔병(殘兵)의 존재는 그 자체가 조선 경제에 부담이었을뿐더러 막 일어난 만주족의 청나라가 조선에 형제관계를 강요한 정묘호란의 빌미를 제공했다. 청말 원세개의 조선-대한제국 국정농단은 서세동점의 시기 대한제국이 서양 나라들에 문호를 열고 근대국가로 성장할 길을 가로막아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는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했다. 김일성에 남침을 사주하고 나중에는 아예 100만 병력을 보내 수많은 한국인과 유엔군의 피를 흘린 6·25전쟁 때 북한군을 실질적으로 중국인민지원군이 지휘한 사실은 중국이야말로 한반도 분단 고착화의 원흉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미국과 더불어 세계 G2 국가로 급부상한 오늘날에도 중국은 주변 국가들을 윽박지르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도 400년 전 ‘재조지은(再造之恩)’을 또다시 내세우며 ‘친중반미’를 압박하고 있다.
나라 망친 ‘조선 탈레반’의 후예들
역사 속 중국의 갑질, 특히 조선왕조 성립 후의 대중국 저자세는 사대주의 늪에 빠진 조선 지배층이 부추긴 면도 없지 않음을 책은 솔직히 고백한다.
대외적으로 중국에 조공할망정 대내적으로, 그리고 다른 주변국들에는 황제급의 위상을 지니기도 했던 역대 왕조와 달리 유독 조선이 중국 앞에 고분고분해야 했던 배경을 저자는 이성계 역성혁명에서부터 찾는다. 조선 중엽 이후 중국보다 더한 교조주의적 성리학자들이 나라를 거덜낸 행태를 ‘조선판 탈레반’에 비유하며, “오랑캐(청)가 들어섰으니 이제는 조선이 중화”라는 인식으로 멸망한 명을 끝까지 섬긴 상징물들인 만동묘, 대보단, 관왕묘를 ‘사대주의 3종 세트’라 꾸짖는다.
마찬가지로 유교문화권이고 중국과 지상 국경을 맞댄 베트남의 사례를 책은 마지막으로 거울 삼아 소개한다. 베트남은 기원전부터 통일신라가 멸망한 직후인 939년까지 무려 1천 년 이상 중국의 직접 지배를 받은 나라고, 독립 후에도 무려 11차례나 중국과 전쟁을 치렀지만, 프랑스의 침략에 한 번 무너졌을 뿐 중국 상대로는 꿋꿋이 국권을 지켜 냈다. 베트남전에서 한국과 총부리를 마주한 흑역사가 있고 중국처럼 베트남 공산당 ‘월공(越共)’이 통치하면서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넘어서는 ‘도이 머이(쇄신)’ 정책으로 ‘공산주의를 넘어서는’ 월공 단계까지 나아가는 베트남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시하는 바 크다.
G1 패권을 꿈꾸는 ‘시황제’ 시진핑의 시대에 문재인 정부의 과도한 친중 자세는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 다만, 필요 이상의 반중(反中)과 혐중(嫌中)은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어 백해무익하다는 조언 또한 책은 빼놓지 않는다. 역사 속 중국의 갑질 행태를 되돌아본 이 책이 한갓 역사서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교훈서로 읽히는 이유다.
책속에서
중국의 군마가 우리 영토를 짓밟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109년부터다. 한(漢) 무제(武帝)가 고조선을 침략해 이듬해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4군을 설치했다. 삼국 위(魏)와 북조(北朝)·오호(五胡) 나라들, 그리고 중국을 재통일한 수(隋), 당(唐), 요, 금, 원, 명(明)의 홍건적, 청이 잇따라 한반도를 침략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에는 항미원조(抗美援朝)를 표방한 중공군의 참전으로 한반도 전역이 공산화할 뻔했다. 그 당시 사망과 학살, 행방불명 인원만 145만 명을 넘었다. 남한을 지원한 16개국이 유엔 결의로 파병한 데 반해 중공군은 일방적으로 개입한, 북한의 침략 공범이다.
중국은 1839년 아편전쟁 이후 서구 열강에 의해 국토가 찢기고 이권을 침탈당했을 때조차 한반도를 상대로 분풀이를 해 대는 비겁함을 보였다. 1880년대에 조선이 자력 근대화 기회를 상실한 데도 중국의 잘못이 크다. 청나라 대표로 조선에 군림한 원세개(위안스카이)의 부당한 간섭 탓에 조선은 근대화를 위한 골든타임 10년을 그냥 날려 버렸다.
목차
책머리에
들어가며_ 한중 악연의 역사에서 배우기
제1장 주먹질과 악수(고조선~고려)
악연의 시작, 한 무제의 고조선 침략 / ‘패륜 황제’ 수 양제의 고구려 침공 / 당, 아쉬울 땐 손 벌리고 힘 세지면 침략 / 소동파 “고려는 개돼지”
제2장 갑질의 노골화(조선 전기)
본격적인 사대는 조선부터 / 인신 약탈 외교 / 중국 사신 ‘천사’의 횡포 / 조선의 굴욕 외교
제3장 재조지은이라는 유령(임진왜란, 정묘호란)
항왜원조의 진실 / 한반도 분할 기도의 원조 / 정묘호란 빌미 된 명군 조선 주둔
제4장 조선 쇠망의 도화선(병자호란~국권 상실)
짧은 전쟁, 긴 후유증 / 청의 간도 점령 / 청 내정 간섭으로 근대화 골든타임 놓쳐 / 한반도 식민지화는 의화단운동 ‘나비효과’
제5장 야욕의 대물림(일제강점기~6·25)
군벌과 중국공산당의 한인 학살 / 장제스 속셈은 한반도 지배 회복 / 중공군은 침략군
제6장 갑질 부추긴 사대주의
조선 사대주의의 근원, 이성계 역성혁명 / 나라 망친 조선성리학 / 육참골단 각오로 국권 지킨 베트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