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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중규 Aug 10. 2023

1919년이냐? 1948년이냐?건국 논쟁 / 정중규

제78주년 광복절 기념 대한민국의 정체성 대토론회

이종찬 광복회장 "1919년이 원년", 윤석열 대통령 "건국 운동"...건국 논쟁, 절충점 찾나

- 요즘 대한민국 역사를 보며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룬다"는 성경말씀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지나간 역사에 일어난 모든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와 우리들의 역할은 과거 기억의 치유, 과거 인물들과의 화해가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차원과 관점에서 이른바 '건국 논쟁'도 펼쳐져야 할 것이다.

제78주년 광복절 기념 대한민국의 정체성 대토론회

제국(帝國)에서 민국(民國)으로

일제강점기의 대한민국

2023.8.10. 오후2시. 국회 도서관 대강당

주최 : 윤주경 국회의원, 광복회, 독립기념관

광복절을 앞두고 대한민국 건국 시점 관련 논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건국시점을 놓고 그동안 진보, 보수 진영은 1919년론과 1948년론을 내세우며 대립해왔다. 그러나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독립 운동'을 '건국 운동'으로 표현하며 임시정부 수립 이후를 일체의 '건국 과정'으로 보는 균형적 시각을 제시하면서 건국 시점에 대한 논쟁이 절충점을 찾을지 주목된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기념 대한민국의 정체성 대토론회에서 "대한민국의 원년은 1919년"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는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과 광복회, 독립기념관이 공동주최했다.


이 광복회장은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면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결과가 된다. 대한민국의 발전이 일본 식민통치로 공짜로 얻어진 것처럼 해석하게 되는데 이런 식의 억지 역사는 항일 독립운동을 의도적으로 부정, 폄훼하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뒤흔들려는 저의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과정을 설명하며 “과거 상해 임시정부, 연해주 국민회의 정부, 한성 임시정부 등 3개 체제가 통합돼 임시정부의 행정 수반은 이승만을 선출했다”며 “이후 대한민국이란 국호와 태극기란 국기가 계승됐고 헌법에서 명시된 바와 같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것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건립이 추진되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에 대해 한·미동맹 체제의 초석을 마련한 이 전 대통령의 성과 등을 설명하며 “임시정부가 내세웠던 이승만 박사를 상기해 광복회는 기념관 건립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일부 (1948년 건국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기념관 설립을 기화로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며 "북한 헌법에 김일성이 공화국의 창시자요 시조라고 돼 있는데, 기념관을 만들 때 이승만이 대한민국의 창시자요 시조라고 쓰면 되겠느냐? 이 전 대통령을 신격화해 ‘건국대통령’ 혹은 ‘독재하는 왕이나 다름없는 대통령’ 등의 모습으로 몰아가는 것에는 찬동할 수 없다는 것인데, 이런 식으로 만들지 말자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 자신이 부정하는 식민사관을 왜 굳이 그분에게 덧칠하는가"라며 "왜 독립운동가이고 대일항쟁과 민주공화정에 앞장섰던 이승만 대통령을 다시 4.19직전 정권욕을 탐한 대통령으로 끌어내리려 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이런 괴물기념관이 건립된다면 우리 광복회는 반대할 것임을 분명하게 말씀드린다"고 했다.


이어 "1948년 건국론은 이런 역사의 지속성을 토막내고 오만하게 이승만 건국론으로 대체한 것이고 우리는 이에 반대한다"며 "이승만 대통령 자신은 건국론 같은 오만한 말을 하지도 않았다. 그는 '이 국회에서 세우는 정부는 기미년(1919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임시정부의 계승이다'라고 했다"며 "이 전 대통령 자신이 부정하는 식민사관을 왜 굳이 그분에게 덧칠하냐"고 말했다.


이 광복회장은 "이제 우리 자신은 대한민국의 발전 근원이 무엇인지 정리할 때가 됐다"며 오늘날 대한민국의 발전은 기미년 독립선언에서 비롯됐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토막내지 말자"며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1919년부터 계승돼 왔다고 강조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및 유족 초청 오찬에서 독립운동을 '건국운동'이라고 표현한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우리의 독립운동은 단순히 일제로부터 빼앗긴 주권을 찾는 것만이 아니었다. 왕정국가로 되돌아가려는 것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공산 전체주의 국가가 되려는 것은 더욱 아니었다. 우리의 독립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운동이었다"고 했다. 이어 "따라서 우리의 독립운동은 우리 민족을 넘어서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도 보편적이고 정의로운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는 조국의 자유와 독립, 그리고 인류 보편적 가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던 선열들을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며 "이분들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국가의 정체성과 국가의 계속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는 대한민국 역사의 연속성에 의미를 부여해 건국일 논란의 타협점을 찾으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머니투데이 the300과 통화에서 전날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기본적으로 역사라는 게 단편적인 사건이 아니고 역사적 사건들이 연속선상에 있는 과정이니까 독립과 건국이라는 게 우리 항일운동, 해방정부 수립, 6.25 전쟁, 산업화, 민주화까지 일련의 과정이 우리나라를 세우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건국이 1948년이냐 1919년이냐가 아니라 그 자체가 우리나라를 만드는 과정이었고 지금도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노력을 계속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고 후세에 보면 그것도 다 나라를 만들어온 과정이지 않겠나"라고 했다.


또다른 대통령실 관계자 역시 "(역사를)이날이 건국이냐, 다음 해가 건국이냐 이런 식으로 얘기할 수가 있나. 기본적으로 하나의 여정"이라며 "임시정부 이후 정부 수립까지 그리고 지금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건국의 큰 도정"이라고 했다.


한편 청와대 영빈관에서 8·15 광복절을 앞두고 독립유공자 및 유족과 관계 기관 대표 등과의 만찬 자리에서, 지난 6월 출범한 이승만대통령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윤 대통령에게 "대통령이 관심이 많다는 것을 많은 분이 알고 있어 건립 추진에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하자, 윤 대통령이 이 회장에게 "김 전 총리가 하는 일에 관심과 도움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이 회장은 "이승만 기념관 설립에 대찬성이다. 팔 걷어붙이고 돕겠다"라며 "단순히 설립뿐만 아니라 운영까지도 세심하게 살피겠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중요한 것은 (기념관 건립이) 빨리 추진이 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 내에 추진이 빨리 잘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보훈부 등 정부가 중심을 잡고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며 “국민 성금에만 맡길 게 아니라 정부에서 중심을 잡고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3일 자로 발행된 '광복회보' 기고문에서도 "대한민국 이승만 초대 대통령 기념관 건립은 만시지탄이지만 환영할 일"이라고 찬성 의사를 보였다.


앞서 이 회장은 지난 1일 '대한민국 정체성 선포식' 개최에 앞서 미리 배포한 인사말에서 "이승만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을 기화로 또다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신격화하려 한다"고 밝혀 기념관 건립에 부정적인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를 부인한 것이다.


윤 대통령과 같은 주빈석에 착석했던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인 김미 김구재단 이사장은 “대한민국은 하나다”며 “후세 사람들이 자꾸 편을 가르는 것 같아 후손으로서 안타깝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윤 대통령은 “김구 선생이야말로 가장 공산주의에 반대한 분”이라며 “후세 사람들이 편을 나눠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건국일 논란은 2006년 8월 뉴라이트 계열이었던 이영훈 당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라는 제목의 칼럼을 한 일간지에 기고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후 '건국절'이라는 용어가 역사학계에서 처음 공론화되기 시작했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1948년 건국론을 기반으로한 건국절 제정법이 발의되면서 정치 쟁점화됐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철우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건국은 1919년과 1948년의 대립구도로 설정한 것을 많이 보는데 이는 건국이라는 용어가 '건국절 제정 운동'에 쓰이면서 마치 1948년 전에는 대한민국이 존재하지 않았다가 신생국이 탄생했다는 논리가 됐다"며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립됐다고 하면 1910년에 대한민국이 없어졌다가 3.1운동으로 부활했다는 논리가 되고 이 역시 1948년 건국론의 오류를 똑같이 범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광복회는 1919년을 원년이라고 할 뿐"이라며 "없었던 신생국이 태어났다가 아니고 '민주공화국'으로 체제가 변화했다는 것이 정확하다. 민주공화국을 선택했고 국가가 건국된 것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이라는 체제의 대한민국이 탄생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최근 다시 논쟁이 불거진 '1948년 건국론'은 북한의 논리에 동조하고 일제 강점을 정당화해 국가정체성을 훼손하는 행위라는 주장도 나왔다. 건국론자들이 '건국 대통령'으로 추대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도 정작 자신은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임정)의 정통성을 계승했다는 점도 강조됐다.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인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축사에서 "대한민국이 1948년 건국됐다고 하면, 독립운동 성과로 건립한 1919년의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며 "1948년 건국설은 민족의 정통성을 가진 대한민국을 정통성과 관계없이 세워진 괴뢰국 북한과 동일하게 만드는 것으로, 북한을 매우 이롭게 해 주는 결과가 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건국 정통성 논쟁은 북한 정권이 앞장서서 주도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김희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장은 "북한은 한반도에서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정통성을 주장하고 나섰는데, 거기엔 임정에 대한 극단적 비판이 깔려있었다"며 "이 전 대통령부터 대한민국 정부가 임정을 계승한다는 사실을 천명했기 때문"이라며 “김일성 우상화, 항일투쟁사 왜곡 등을 갖다 붙인 이유”라고 밝혔다. 김 관장은 또 지난 1980년대 일부 진보 성향 역사학자들 중심으로 제기된 민중사학에 대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짓밟는 북한의 논리를 계승했다”며 “유신정권, 군사정권이 배타적인 정통성을 주장하는 방편으로 임시정부를 부각하자 이에 맞서 임시정부의 역사와 가치를 짓밟고 나선 것”이라고 비판했다.


머니투데이 김지영 기자 안채원 기자 2023.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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