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에 집중호우 물난리로 40명이 넘는 사망·실종자와 각종 피해를 낳았던 장마와 태풍이 지나가자 이번에는 폭염이 선선한 가을을 맞는다는 처서(處暑)를 지나서도 물러나지 않고 있다.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해병대 故 채수근 상병을 비롯한 희생자들의 명복을 거듭 빌며,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불볕더위 속에서 수해복구에 땀 흘리는 이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조금만 일찍 통제했어도 14명의 아까운 생명이 희생당하는 인명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던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 지하차도 침수 사고는 더욱 안타까웠다. 그런데 그 사고 원인을 둘러싸고 다른 논란으로 번져갔다. 청주시 환경단체들이 미호강 강바닥 준설작업을 “환경파괴 하는 제2의 4대강 사업” 운운하며 막아 강물이 범람하는 사고를 불렀다는 것이다.
이번 참사를 ‘인재’라고 하는데, 문재인 정권 때인 2021년 미호강 둑을 1m 이상 높이려는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의 공사를 반대해 무산시킨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풀꿈환경재단 등 환경단체들에게 그 ‘인재’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발’이란 단어만 뜨면 무조건 반대부터 하고 보는 환경단체들의 폐습이 초래한 참사라는 것이다.
정용승 미호강개발추진위원장은 “미호강은 강폭이 좁고 면적이 작으니 강바닥을 15~20m 깊이로 준설하고 둑을 1m 이상 높이자고 수년 전부터 주장했지만, 환경단체 반대 등으로 물거품이 됐다”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둑을 높이 쌓고 강물이 수용할 수 있는 용량을 확대해야 한다”고 안타까워한다.
■ 내가 환경운동에서 멀어진 이유
필자 역시 젊은 시절 환경운동에 함께 했었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이 그 단초였다. 수많은 환경 이슈에서 환경운동가들과 함께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들에게서 멀어진 것은 ‘개발’ 단어만 뜨면 일단 반대부터 하는 단순 흑백논리의 너무나 비현실적인 주장들 때문이었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당사자이자 장애인복지 전문가로 환경과 개발 사이의 모순은 특히 나를 힘들게 했다. 예를 들어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설치 관련해서 환경단체들이 오체투지까지 하며 극심하게 반대했는데,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입장에선 그것이 설악산에 접근할 유일한 편의시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요즘 산이나 공원마다 휠체어로 다닐 수 있는 나무데크로 만든 ‘배리어 프리(barrier-free)’ 휠체어 길을 설치한다. 제주도 올레에도 야자매트나 재생타이어로 휠체어 길을...심지어 해운대나 광안리 해수욕장에도 바닷가로 다가갈 수 있게 나무데크로 모래사장 위에 휠체어 길을 만들어 놓는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전국 도로망에 닦아놓은 자전거도로는 휠체어 장애인들에게는 편한 길이다. 이처럼 복지는 일정 부분 자연환경의 파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파행의 원인 그 뿌리
지난 8월 1일 새만금에서 열렸다 대회 준비 미비로 파행을 거듭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나서 컨틴전시 플랜까지 가동해 가까스로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폐영식과 ‘K-POP 슈퍼라이브 콘서트’를 치르고 나서야 마무리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국제적 망신을 자초할 만큼 미비한 대회 준비 상황을 보고 국민들은 전라북도가 무엇 때문에 이런 큰 국제대회를 유치하려 했었는지 다들 의구심을 가졌다.
2017년 전라북도 싱크탱크 전북연구원에서 발간한 ‘새만금과 전북 대도약 자신감 획득’이라는 제목의 연구 보고서에서 그 속내가 드러나 있는데, 곧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유치를 명분 삼아 정부로부터 천문학적 예산을 받아 새만금 부지 내 부족한 기반 시설(SOC) 구축에 속도를 내려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염불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있었다는 것이다.
전라북도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이해가 되는 것이 새만금에 대한 필자의 추억 때문이다. 2016년 국민의당 최고위원 시절 현장 민생정치를 위해 전북도의회에서 최고회의를 열고 군산을 방문해 시민사회단체장들과 조찬을 가졌는데, 당시 화두가 새만금 개발 문제였다. 마침 현 전북지사인 김관영 의원이 새만금에 카지노를 유치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다들 한목소리로 반대하는 것이었다. 하기야 새만금 매립 자체를 환경단체들이 반대했으니, 이해되는 바 없지 않았다.
거기서 필자는 주장했다. “영호남 경제 격차 이야기하지만, 근본 원인은 호남이 산업화 과정을 거치지 않아 파생된 것 아닌가. 이왕지사 만들어진 새만금 간척지라면 884㏊에 달하는 이 광활한 공터에 산업단지 등을 유치해 호남 경제발전에 도움 되는 길을 찾아야 할 것 아닌가. 나는 비록 카지노는 좋아하지 않지만, 그것이 호남 경제에 도움 된다면 유치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 내용으로 설득했던 기억이 난다.
새만금개발청에 따르면 애초에 새만금 간척지를 산업·연구(1권역, 74.4㎢ ), 복합개발(2권역, 62.1㎢), 관광·레저(3권역, 31.6㎢), 배후도시(4권역, 10.0㎢), 농·생명(5권역, 103.6㎢) 등 5개 구역으로 세분화해 개발하려 했지만, 개발사업 자체가 30년 넘게 공회전하면서 개발 밑그림도 확정하지 못하고 ‘붕’ 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 지역 특유의 반산업화·친환경론자들의 개발 반대 움직임이 걸림돌이 되고 있음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애초에 새만금이 계획대로 개발이 추진되었더라면 전라북도가 6년 전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유치하려 궁리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볼 때, 결국 잼버리대회 파행 원인의 뿌리도 오랜 세월 새만금 개발 반대해 온 환경단체들에 책임의 일단이 없다고 할 순 없는 것이다.
■ 문명은 자연환경을 어느 정도 훼손하는 치산치수에서 시작된 것
세계 4대 문명 발상지는 모두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 중국의 황하 유역 등 큰 강을 끼고 있다. 강물이 범람하는 홍수로 사회공동체를 파괴하는 그 강을 다스리면서 문명은 일어났다. 문명은 자연환경을 다스리는 치산치수(治山治水)하면서 이뤄진 것이다.
환경이냐, 개발이냐? 이 말은 환경보전과 경제개발의 딜레마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경제개발은 환경 부담 없이 이루어지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딜레마적인 상황이 극복하고자 최근에는 환경도 살리고 경제개발도 제대로 추진하는 환경친화적인 개발 곧 지속 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을 표방하는 것이다. 지구 전체를 하나의 생태계로 보고 인간사회가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자유롭게 발전의 기회를 얻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환경단체에서는 ‘지속 가능한 개발도 개발이다’고 극단적으로 주장할 수도 있다. 장애인복지에 '적절한 배려'하는 말이 있는데, 이 적절함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환경과 개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며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 환경보전과 개발 사이에 적절한 접점을 찾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