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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셀로나 Aug 06. 2024

나를 믿지 못하는 매니저에게 인정받으려면

해외 스타트업에서 살아남는 첫번째 원칙 

작년 말,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시니어 디자이너 타이틀을 달아주었다. 한국으로 따지면 과장-차장 급의 포지션이다. 프로젝트를 리딩하기도 해야하고, 주니어 디자이너들에게 피드백을 건설적으로 주기도 해야한다. 감개가 무량했다. 찌랭이 같은 내가 승진까지 하다니. 


스페인에서 졸업하고 첫 스타트업에서 일하던 때가 생각났다. 지금 회사에서 최종 잡오퍼를 받기 전에 1년간 스페인 테크 스타트업에서 일을 했었다. 타이틀은 "유럽 테크 스타트업"이어서 있어보였지만 여느 스타트업이 그렇듯 매달 월급을 주기도 벅차보일 때가 있었다. 스탭들에게 워킹 비자는 제대로 안주고 (세금 안내려는 명목) 학생비자를 소지한 스탭들을 풀타임으로 돌리면서 최저 시급이 안되는 월급을 주었다.


첫 달 월급은 500유로였다. 월세를 내기조차 어려운 금액이었다. 돈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건 회사의 문화였다. 리더십이 건강하지 않다보니 직원들의 퇴사가 빈번했다. 팬시한 인테리어의 사무실,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사무실에서 대표는 자주 직원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나와 함께 일했던 매니저 J는 동시에 3개의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었다. J는 엄청난 실력의 디자이너였지만 매니징 스킬은 전무한 사람이었다. 프로젝트가 복잡하고 업무량도 많았지만 J는 나도, 프로젝트도 잘 관리하지 않았다. 


그렇게 회사에서 3개월을 보냈지만 나는 여전히 뭘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빈 화면을 멍하게 바라보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매니저가 나를 불러 내가 일을 제대로 안하는 것 같다며 의심했다. 그래서 내가 한 일들을 보여줬더니 어제 몇시부터 몇시까지 피그마에 접속했는지 물어보며 마이크로 매니징을 시전했다. 매니저가 나를 닦달하니 눈물이 떨어졌다.


이참에 잘됐다 싶어서 '에라 모르겠다, 나랑 얘기좀 해' 하고 회의실 문을 닫고 매니저와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내 심정을 털어놓았다. 이 프로젝트가 엄청 크고 복잡한데, 나는 아직 프로젝트를 다 이해하지도 못했고 나는 너랑 얘기할 기회조차 몇번 없었다고. 나 정말 이 프로젝트 잘 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뭘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매니저는 당황하면서 자기가 미안하다고 했다. 앞으로는 일주일에 한번 고정 미팅을 잡고 그 시간마다 디자인 피드백을 주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진짜 이 프로젝트를 열심히 해서 결과를 제대로 보여주리라 이를 악물었다. 월급은 최저고, 회사는 똥같고, 아무도 나를 관리하지 않지만 어쨌든 이건 내가 맡은 내 프로젝트였다. 그때부터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1년만에 3개의 프로덕트를 UX부터 UI까지 완성했다. 매주 미팅을 하면서 매니저와 리더십에게 끈질기게 피드백을 요청했다. 10개월쯤 지났을때는 마케팅 전략도 함께 세우기 시작했다. 6개월이 지났을 때쯤 대표는 월급을 500유로의 딱 다섯배로 주기 시작하며 어디 가지 말라고 나를 붙잡았다.  


이 때의 경험을 발판 삼아 회사에서 일을 할때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원칙을 세웠고 1년간 회사의 리더십과 매니저와 지속적으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1. 아무리 회사가 똥같아도 프로젝트는 내 것이고 결과물은 내 포트폴리오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2. 문제가 있을때는 기다리지말고 정리해서 바로 보고한다. 

3. 매니저에게 적극적으로 미팅 요청을 해야한다. 수동적으로 기다리고만 있으면 결국 내 책임이 된다. 

4. 불평하기 보다는 어떤 부분에 어려움이 있는지 솔직하게 소통하고 해결책도 제시한다. 


결국 나는 이 결과물로 더 좋은 회사로 갈 수 있게 되었다. 1년이 딱 지났을때 세 곳의 회사가 경쟁적으로 나에게 최종 잡 오퍼를 주었고, 그 중에 가장 월급이 높았던 곳을 선택했다. 퇴사를 이야기하고 마지막으로 근무하던 날 매니저 J가 나에게 말했다. “너를 데려가는 회사는 진짜 럭키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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