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5억 직장인이 주말 아침 압구정 학원으로 향한 이유
"매니저님, 이번 딜(Deal) 클로징 고생하셨습니다."
클라이언트와 악수를 하고 나오는 길. 통장에는 두둑한 보너스가 찍혔다.
재무 자문업을 담당하는 Professional Firm의 6년 차 매니저.
남들이 보면 안정적인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시점이다.
연봉(원천징수)은 어느덧 1.5억 원을 찍었고, 팀 내에서는 실무를 총괄하며 인정받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통장의 숫자가 커질수록 내 마음의 빈칸도 커져만 갔다.
"나는 언제까지 조수석에 앉아 있어야 할까?"
자문사(Advisor)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클라이언트가 운전하는 차의 내비게이션 역할을 한다.
길을 알려주고, 위험을 경고하지만, 결국 핸들을 꺾는 건 클라이언트다.
M&A 딜이 성사되어도, 그 회사를 실제로 경영하고 키우는 건 내 몫이 아니었다.
나는 '드라이버 시트(Driver's Seat)'에 앉고 싶었다.
단순히 조언하는 사람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핸들을 잡고 직접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궤도를 벗어나야 했다.
임원 승진?
글쎄, 그건 더 비싼 내비게이션이 되는 길처럼 느껴졌다.
10년 뒤 내 모습이 저기 앉아 있는 임원이라면? 가슴이 뛰지 않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판을 바꾸자.
미국 MBA로 가자.
사실 MBA 고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4~5년 전, 이직 사이에 여유가 될 때 잠깐 GMAT(경영대학원 입학시험) 책을 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일도 바쁜데 무슨 MBA야"라며 흐지부지 덮었다.
하지만 내겐 확고한 지론이 하나 있다.
"직장이든 어떤 선택이든 갈지 말지는 합격 통지서를 받고 나서 고민해도 늦지 않다."
예전에도 그랬다.
최근 인센티브 많이 주기로 유명한 모 대기업 투자전략팀에 지원했을 때도,
"거기 가면 너무 빡세지 않을까?"라는 고민은 일단 접어뒀다.
면접을 보고, 덜컥 합격하고 나서야 비로소 치열하게 고민했고, 결국 가지 않았다.
(물론 지금 뉴스를 보면 조금 후회되긴 한다.)
MBA도 마찬가지다.
"지금 환율이 얼마인데...", "요새 MBA 가성비 안나온다던데"
이런 고민은 입장권(Ticket)을 손에 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다.
미국 Top 15 학교에 지원하려면 구 GMAT 기준 700점,
현행 Focus 기준 645점 이상의 점수가 필요하다.
이 점수가 없으면, 아무리 내가 뛰어난 경력을 가졌어도 원서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크다.
"일단 시험부터 본다. 점수가 나오면 지원하고, 안 나오면? 내 능력 부족이니 깔끔하게 접는다."
리스크는 명확했다. 잃을 건 학원비와 주말의 휴식뿐.
하지만 성공하면 인생의 2막이 열린다. 밑져야 본전, 아니 해볼 만한 장사였다.
원래 막연한 꿈은 '유럽'이었다.
미국 학부를 졸업하고, 현지에서 근무한 경험과 미국 MBA는 커리어 측면에서 중복인 것 같았다.
마침 파리 올림픽 배경도 너무 멋지고, INSEAD나 LBS 같은 유럽 학교에 가서 낭만과 커리어를 동시에 잡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답은 '미국'이었다.
미국 MBA 졸업 후 유럽으로 가는 문은 열려 있지만,
유럽 MBA 졸업 후 미국으로 넘어오는 문은 훨씬 좁았다.
게다가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유럽 현지 취업 시장에서는 제3외국어(현지어)가 발목을 잡을 게 뻔했다.
"기왕 가는 거, 가장 큰 물에서 놀자. Prestige가 확실한 미국 Top 15으로 가자."
목표는 정해졌고, 이제 남은 건 실행뿐이었다.
토요일 아침, 압구정동.
여자친구(지금의 아내)가 전철역까지 데려다주면서 말했다.
주말 아침 늦잠 대신 학원행을 선택한 내 모습이 낯설었다.
"잘하고 와. 끝나면 맛있는거 먹자."
여자친구의 응원을 뒤로하고 강의실 문을 열었다.
빼곡히 앉은 사람들.
나처럼 주말을 반납하고 인생을 바꿔보려는 직장인들의 열기가 후끈했다.
강의실 맨 구석, 작은 책상에 어색하게 몸을 구겨 넣었다.
대학 졸업 후 10년 만에 학생으로 돌아간 순간이었다.
설렘도 잠시, 두 번째 수업인 수학(Quant)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멘붕'에 빠졌다.
'나 미국 대학 나온 거 맞나?'
학창 시절 미국 경영학과에서는 수학 좀 한다고 자부했는데, 강사의 질문에 척척 대답하는 주변 수강생들 사이에서 나는 꿀 먹은 벙어리였다.
해외 체류 경험 때문에 오히려 한국식 수험 수학 감각이 무뎌진 탓일까. 얼굴이 화끈거렸다.
부끄러움이 밀려왔지만, 동시에 묘한 오기가 생겼다.
회사에서는 승진도 제때하고 이제 중간관리자 역할을 하는데, 여기서는 내가 제일 못하는 학생이라니.
이때부터였다. 내 인생의 우선순위가 바뀐 것은.
1. GMAT 점수 만들기
2. 회사 업무
물론 회사에는 철저히 비밀로 했다.
(나중에 친한 동료에게 들키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그건 나중 이야기다.)
수업이 끝나고 여자친구와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나 진짜 열심히 해볼게.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쪽팔리게 중간에 포기하진 않을게."
불판 위에서 지글거리는 삼겹살 소리를 들으며 다짐했다.
이제부터 나는 낮에는 '자문사', 밤과 주말에는 '수험생'이다.
안락한 조수석에서 내려, 내 인생의 운전대를 잡기 위한 이중생활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