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서사를 만들어 가는 사람
헤드윅 뮤지컬은 지금까지 여러 번 공연되며 사랑받은 뮤지컬로, 나는 작년에 이 뮤지컬을 보게 되었다.
헤드윅은 참 기묘하고 기구한 캐릭터이다.
트랜스젠더이자, 남자의 사랑을 계속 갈구하지만 분노의 1인치, 즉 수술 실패로 남겨진 1인치의 성기로 인해 버림 받은 인물이다.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과 욕망을 위해 주체적으로 생을 헤쳐나간다.
헤드윅의 대략적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결말을 포함한다.
동베를린에서 지내던 소년 ‘한셀’은 어렸을 때부터 여성이 되길 원했다. 그러던 중 미군 남성을 만나 결혼하기로 하고, 성전환 수술을 받았지만 실패해 분노의 1인치, 1인치의 남성기가 남게 되었다. 미국에 왔지만 남편에게 버림받고 어려운 삶을 산다. 그러다 16살 소년 토미를 만나서 음악을 가르치고, 서로 사랑하게 되었지만 토미는 그의 1인치에 대해 알게 되고 달아나 버린다.
헤드윅의 노래를 훔쳐 발표한 토미는 톱스타가 되고, 분노한 헤드윅은 토미의 공연을 따라다니면서 맞공연을 하게 된다. 크로아티아에서 투어공연을 하던 중 드랙퀸(여장 공연을 하는 남성)인 이츠학을 만났다. 미국에 오고 싶은 이츠학을 여장을 다시는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밴드의 서브보컬로 데려오게 된다.
결말
이후 헤드윅과 토미의 관계가 대서특필되는 사건이 있었고, 토미는 노래를 통해 자신의 사과를
전한다. 노래를 듣고 난 후 헤드윅은 가발, 화려한 구두 등 자신의 모든 치장들을 벗어던진다. 반 정도 협박으로 곁에 잡아둔 이츠학을 또한 보내주고, 진정한 본인으로서 노래한다.
헤드윅 자체의 캐릭터는 뾰족하고 남을 이용하며 자기 자신의 여성성을 탐닉하는 사람으로, 실제로 내가 만났다면 별로 좋아할 만한 사람은 아니다. 내가 헤드윅의 이야기를 알지 못하는 채 겉으로만 보았다면, 겉멋에 찌든 재수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겠다. 그러나 헤드윅 뮤지컬을 보고 나는 어떠한 울림을 느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적어보고자 한다.
헤드윅은 자기 자신에 대해 회피하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간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 - 록 음악, 사랑받음 등-을 향해 용기있게 나아갔다. 수술에 실패하고,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버림받는 등 수많은 상처들이 있지만, 헤드윅은 자신의 아픔에 도망치지 않는다. 대신 고개를 꼿꼿하게 세우고 자신만의 공연을 해 나간다. 깨어진 아메리칸 드림, 실패한 수술 등으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관객들 앞에서 자신의 아픈 기억들을 얘기한다. 그렇게 헤드윅의 이야기는 하나의 서사가 된다.
그녀는 헛된 희망이라고 보일지언정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애정에 대한 욕망에 솔직하다. 절벽 아래로 떨어진 사람이 벽에서 튀어나온 돌을 하나하나 그러잡고 올라가듯, 헤드윅은 나락 아래에서 벽을 잡고 올라가며 다시 한 번 도전한다.
두 번째로 자신을 화려하게 꽁꽁 싸맸던 헤드윅이, 토미의 노래를 계기로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노래 불렀던 그 장면이 마음에 파동을 남긴다. 헤드윅은 작품 내에서 논란 그 자체인 사람이었다. 화려하고, 성적이고, 까칠하다. 화려한 공작새 같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시를 바짝 세운 고슴도치를 닮기도 했다. 정체성은 여성이지만, 여성으로 인정받는 몸을 갖지 못했고 그래서 더 화려한 가발과 신발에 집착한다. 자기 자신을 계속 숨기고 포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토미의 노래는 헤드윅의 장벽을 녹인다. 진심이 담긴 사과, 헤드윅의 존재에 대한 인정은 헤드윅 그 자신이 그렇게 움켜쥐고 있었던 여성으로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집착을 놓게 한다. 헤드윅 그녀는 그 자체로 괜찮으며, 자신을 꾸미고 부풀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헤드윅은 자신의 치장들을 내려놓고, 맨 몸으로 무대 앞에 선다. 그리고 서로의 필요로 붙어 있던 관계인 이츠학을 놓아주게 된다.
마지막 곡인 Midnight Radio (자정의 라디오) 의 일부분이다.
Breath, Feel, Love (숨쉬고, 느끼고 사랑하라)
날아가라 You know, you are free (넌 자유야, 그걸 알잖아)
꿈틀대는 영혼, 붉은 심장처럼
너와 난 하나
가사처럼, 둘은 이미 서로 동질감을 가지고 있다. 둘의 의존적인 관계가 해소될 때, 둘은 스스럼없이 하나가 된다.
변치말고 지금처럼
서로 안고 끌어 주고
모두가 하나된 이 밤
마지막 손을 들어-! 를 반복하는 후렴구에서는 하나가 된 모두가 음악에 취해 손을 흔든다. 이 때 갈등 해소의 짜릿함을 느끼게 된다. 헤드윅은 스스로에 대한 갈등을 풀어냈고, 그리고 그로 인해 관계의 갈등 또한 풀었다.
헤드윅의 이야기는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부터 풀어내면서 관객들과 아픔을 나누고, 소통한다. 그리고 내면의 갈등, 자신이 여성성을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을지에 관한 갈등을 해소한다. 그렇게 헤드윅은 자기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며 진정으로 자유로워진다. 헤드윅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한 편의 작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