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딸기청을 만들려고 하는가?
나는 사실 상당히 게으르다. 집안일도 미루다 하고, 혼자 자취한다는 이유로 요리도 따로 안 해 먹는다. 어떻게 보면 생존집안일만 하는 것이다. 나도 코로나 때 학교를 쉴 때 요리를 해 먹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식사를 혼자 먹으니 음식이 남기 일쑤였고, 그것을 다 먹든 버리든 해야 하는 것이 골치가 아팠다. 현재 요리를 안 하다 보니 저녁은 밖에서 샌드위치 등을 사 먹는 것이 일상이 됐다. 과일도 깎거나 씻기 귀찮아서 잘 안 먹었다. 딸기 또한 그렇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과일이지만, 씻고 꼭지를 따는 (심지어 꼭지는 따로 치워야 한다)것이 귀찮아서 쉽사리 사지 않았다.
그러나, 논산딸기축제를 입구까지 갔다가 못 들어간 것이 한이 됐다. 인파가 너무 많아 주차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아, 딸기가 너무 먹고 싶다!
딸기에 한이 맺혀버렸다. 며칠간 일부러 딸기가 들어간 메뉴를 사 먹다가, 휴일 전 날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꽂혔다. 딸기청을 만들자! 딸기청은 내가 요리했던 시절, 3년 전에 만든 적이 있었다. 되게 맛있었고, 병 열탕 소독과 딸기 손질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외에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딸기청을 만들기로 한 나는 집념에 가득 찼다. 홈플러스보다 더 싸기 때문에 일터 근처의 시장에서 딸기를 3kg 사고 (2kg는 딸기청용, 1kg는 먹을 용), 설탕을 2kg 샀다. 집 근처 다이소에서 딸기청을 담을 유리병도 여러 개 샀다. 내 손에는 짐이 가득했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기에 가방과 비닐봉지에 딸기와 설탕을 합쳐 도합 5kg을 짊어지고 삐그덕 삐그덕 자전거를 탔다.
귀찮다는 이유로 딸기조차 안 사던 내가, 딸기청을 사려고 이 노력을 하다니. 스스로에게 놀라웠다.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일단 재밌을 것 같다. 마침 휴일이 다가왔고, 오전 시간이 남아있었다. 딸기축제를 못 간 아쉬움도 한몫했으며, 내가 이전에 딸기청을 만들었던 경험도 딸기청을 만드는 데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덜어 주었다. 딸기 만들기는 나에게 특별한 이벤트였고, 반복되는 일상보다 더 흥미로웠다. 어떻게 보면, 나는 일상생활에는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려 하고, 무언가 특별한 일에는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는 것 같다.
딸기청을 만들기 위해 빼놓을 수 없었던 열쇠는 같이 먹을 사람들이었다. 이틀 후 친한 친구들을 만날 계획이었고, 회사에 가져가면 내가 잔뜩 만들어 놓은 딸기청을 먹을 입들이 충분히 있었다. 그들이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설레었다. 친구나 애인을 만날 때도 작은 선물을 자주 챙겼던 나에게는, 남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나에게도 큰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남들에게 고마움을 받고 싶은 마음, 내가 어떤 역할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나에게는 큰 갈망이었다. 그래서 학생 때보다 일할 때가 더 좋은 것도 있었다. 학생 시절에는 아무런 역할 없이 단순히 공부하거나 교수님들을 따라다녔다. 일을 할 때 나는 내 역할이 있고, 나로 인해 좋아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무엇보다 큰 보람이 됐다. 나는 남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그로 인해 인정과 고마움, 사랑을 받고 싶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남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자신의 존재를 만들어 나간다. 하지만, 남들의 인정이 전부일까? 자신의 고유값을 만들 수는 없는 걸까. 내가 학생 때 그렇게 힘들어했던 이유는, 바쁜 커리큘럼 때문에도 있지만 나는 별 쓸모가 없다는 무력감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항상 무언가를 해야 했다. 무언가 부당한 바가 있으면 말을 해야 했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실천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괴로웠다. 나는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존재했다. 진취적이고, 활동적이며, 목표지향적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무력감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남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스스로에 대한 불인정이 있었다.
친구와 대화했을 때, 이러한 고민을 얘기했다. 남들의 인정이 너무나 중요하여, 이것에 스스로의 정체성을 의탁하고 있지 않는가. 남들이 나를 보는 것으로밖에 나를 정의할 수 없는 것일까. 친구의 답은 이러했다. 나 자신의 고유값, 즉 타인이 없을 때의 내 가치도 찾아볼 것. 주체적인 자아, 그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의 고유값은 무엇인지, 타인이 없을 때 나의 행동을 결정하는 동력은 무엇일지 알아나가는 것이 나의 과제다. 계속 생각하고, 스스로의 내면을 탐구하려 한다. 내 고유값을 찾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