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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하 Mar 26. 2023

서바이벌 오디션, 오징어게임과 다를까?

서바이벌 오디션, 절박함을 소비하다 

나 혼자서는 TV 나 영상을 거의 안 보지만, 부모님이랑 같이 있을 때는 셋이 둘러앉아 TV를 본다. 요즘 채널고정한 프로는 미스터트롯 2이다. 미스터트롯 1 때부터 가족들이 모이면 간간히 이 프로그램을 봤다. 다양한 공연들을 삼삼한 재미로 봤던 것 같다. 사실, 그냥 같이 앉아서 볼 만한 콘텐츠가 필요했다. 미스터트롯 2는 다양한 눈요깃거리들을 보고, 이야기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어제 본 경연의 내용은 팀매치였다. 팀매치는 5명씩 팀을 구성해 전체 팀의 공연으로 1라운드 점수를 매기고, 각 팀에서 1명, 대장들의 공연으로 2라운드 점수를 매긴다. 내가 충격을 받았던 것은, 1라운드 점수와 2라운드 점수 배치가 같았던 것이다. 2라운드, ‘대장’들의 대결은, 5명끼리 힘들게 구성한 것에 맞먹는 무게감을 지니고, 그 무게감은 각 팀 대장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또한, 나머지 4명의 운명의 반을 ‘대장’에게 맡겨, 4명은 대장의 공연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본 매치는 데스매치로, 1:1 경연으로 통과와 탈락 위기를 결정했다.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여한 각 가수에게 이 서바이벌은 너무나 큰 기회이며, 그러기에 절박함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TV 조선이 구성한 프로그램 구조는 실력을 가려서 뽑는 오디션이 아니라, 시청자들의 재미를 위한 서바이벌에 가까웠다.


 미스터트롯 2를 보면서 오징어게임과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징어게임은 참가자의 절박함을 이용하여, 목숨을 걸고 게임에 임하게 만든다. 그리고 관객들은 이를 재미로 즐긴다. 마찬가지로, 미스터트롯 2도 가수로서의 생명, 기회를 걸고 온 힘을 다해 경연에 참여한다.

 하지만 게임은 공정하지 않다. 운 적인 요소가 상당히 많이 차지해 잘한다고 무조건 통과하는 것도 아니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 하나하나 속에서 참여자는 기댈 구석이 없다. 경연이나 게임 참여자는 재미를 위해 소비된다는 점에서, 이 둘은 닮은 점을 보인다. 


 꽤 오랫동안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은 ‘붐’을 이루었다. 오디션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공연 프로그램들이 탈락자를 만들어낸다. 한 때 춤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스트리트 우먼 및 맨 파이터도 이미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팀들을 매치를 통해 1~2팀씩 떨어뜨렸고, 노래 프로그램 또한 탈락자를 가리지 않는 프로그램은 눈 씻고 찾아봐도 찾기 어렵다. 

 TV에서는 어차피 사람의 일부 모습만 볼 수 있고, 이 또한 필요에 의해 편집되기도 한다. 다만, 그것이 실제 숨 쉬는 사람을 너무 납작하게 하나의 게임말로써, 캐릭터로써만 즐기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사람의 서사와 감정들은 하나의 유흥거리로 소비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디어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 즉 미디어 리터러시이다. 단, 단순히 정보를 파악하는 능력뿐만이 아니라 현재 미디어의 방향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 경향성은 무엇이고 어떤 것들을 유의해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는 해석적 능력이 필요하다.

 방송들은 자극적 방향으로 가기 정말 쉽다. 자극적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을 더 자극적인 것을 찾게 만들고, 재미를 좇는 시청자들을 위해 더 참여자 소모적인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진다. 콘텐츠를 위해 사람을 소비하는 방식은 점차 정교해져만 간다. 


우리는 쏟아져 나오는 콘텐츠들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여기에는 누가 어떤 방식으로 보여 소비되는지 알고, 때로는 좋은 프로그램이 뭔지 생각하고 말할 수 있어야 우리는 주체적인 콘텐츠 소비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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