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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하 Aug 01. 2023

딱, 멈춰서다

책 원고 쓰기 프로젝트의 일시중단

글이 정말 안 써진다. 아무리 앉아있어도 밍기적대면서 이리저리 피한 기간이 2주 가까이 된다. 글 쓴 기간이 1년이 좀 안 됐지만, 이렇게 글을 못 쓴 경우는 정말 오랜만이다. 책 원고를 쓰겠다는 목표로 매주 두 편씩 꾸준히 쓴 게 2 달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게 별 건가? 싶을 수 있겠지만, ‘성실해야 한다’, ‘생산성이 있어야 한다’라는 생각에 가득 찬 나에게는 정말 빅 이벤트다. 어떻게 내가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맘 잡고 계속 쓰다 보면 필요한 만큼의 원고를 다 채울 수 있을 줄 알았다. 웬걸, 10편 남짓 쓰다 보니 딱 막히게 되었다. 원래 나의 계획은 늦어도 연말까지 원고를 완성해서 기획 출판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도저히 글을 못 쓰겠다. 아무리 앉아있어도 밍기적거리고, 이리저리 회피할 뿐이다. 


진짜 미칠 것 같았다. 나는 글을 써야 하는데. 계속 글을 뽑아내야 하는데. 글을 써서 책 원고도 올해까지 써야 하고 글쓰기 과외에도 내야 하는데. 진짜 어떡하지? 하루하루가 나를 향해 밀려 들어왔다가 쓸려 나갔다. 글을 못 쓰는 날들은 지속되었다. 불안했다. 여기저기 자문 또한 받았다. 인풋을 좀 더 넣고, 다른 에세이들의 엔딩, 메시지 또한 참고한다. 


어제, 목요일에도 글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내가 생각한 구조적인 글은 나오지 않고, 나의 고뇌만을 자꾸 쓰게 되었다. 나는 착한 의사 자아에 갇히기 싫다. 나의 글들은 하나하나는 괜찮았지만,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나의 메시지들은 비슷했다. 나도 괜찮고, 당신도 괜찮은 사람이다. 좋은 의사가 되고 싶다. 무언가 부족했다. 나는 변화를 바랐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나는 창작자로서의 내 자아와 대면해야 했다. 나는 창작을 하면서 무엇을 바랐던가? 나는 창작을 원했는가, 아니면 인정을 원했는가? 둘 다였다. 나는 글을 쓰는 게 즐거웠다. 내 마음을 올올이 풀어내어 화면 위에 얹는 작업이 좋았다. 한편, 책을 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컸다. 나의 업적으로 책을 만들어 남기고, 이를 자랑하고 싶었다. 특히 내가 책을 냈다는 사실을, 카톡 프로필에 올려 내 동기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나를 단순히 특이종자로, 아니면 갈등의 원인으로 느꼈을 동기들에게 나는 잘 살고 있다고 당당하게 보여 주고 싶었다. 


질문은 계속되었다. 현재 프로젝트에서 보여주는 나의 자아, 착한 의사 자아가 아닌 창작자로서 나의 자아는 무엇일까. 어느새 의사의 가면은 내 얼굴에 딱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나의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다. 환자 옆에서 같이 뛰는 착한 의사. 일할 때 나는 그 자아, 좋은 의사 자아와 결코 떨어질 생각이 없다. 나는 계속 아픈 자들과 같이 버티는 의사가 되고 싶다. 하지만 내 창작의 자아는 어떠한가. 나는 글을 쓰며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해 주고 싶었는가? 막연히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소통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사실, 지금은 이 수많은 질문들에 답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 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 창작하는 친구가 말했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닌 방향성이라고. 다른 친구는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과의 친한 관계라고 말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이제는 좀 더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지만, 아직 나는 나와 화해를 덜 했다. 나는 내가 성실할 때, 무언가를 잘할 때만 나를 좋아하고, 그렇지 못한 나는 비난했다. 나에 대한 미안함으로 눈물을 흘리지만, 약한 나를 용서하진 못했다. 


오늘 아침에 출근하며 이전에 재밌게 읽었던 에세이를 다시 펼쳐보았다. 그 에세이는 참 다양한 이야기, 다양한 사유를 담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안일하게 나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만으로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 부족한 것은 사유와 깊이였다. 결심했다. 이 프로젝트를 중단해야겠다. 사실 진행이 불가능한 있었다. 글 자체가 안 써지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열심히 진행해 왔던 프로젝트를 내려놓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일시정지이지, 포기는 아니다. 언젠가 써둔 글들을 다시 꺼내 먼지를 닦고 펼쳐놓을 생각이다. 당분간은 그림을 좀 더 그리고 싶다. 일상적인 글들을 쓰려한다. 잠시 앉아 운동화 끈을 묶고, 다시 걷고 달리면 된다. 지금은 좌절감이 들지만, ‘인생은 새옹지마 테크트리 타야지’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또다시 잡겠지.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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