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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하 Aug 05. 2023

그녀는 왜 말하기를 선택했는가?

단편소설 

정하는 방 한구석에서 머리를 싸매고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저녁 메뉴로 무엇을 먹을까, 하는 단순한 이유는 아니었다. ‘심각하다’라는 말에 걸맞은 고뇌를 하고 있었다. 그의 직업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정하는 중견 제약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한다. 그가 다니는 제약회사는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아는 회사는 아니지만, 제네릭약(저작권이 풀린 약성분의 동일 성분으로 만든 약품) 몇 개가 성공적으로 팔리고 있어 안정적인 궤도를 유지하고 있다. 너무 어렵지도, 쉽지도 않은 일을 매일 반복하는 평온한 연못 같은 생활. 이러한 일상이 정하는 참 맘에 들었다. 그러나 평온하기만 한 연못은 없다. 누군가는 연못에 돌을 던진다. 


2일 전, 금요일에 정하는 퇴근 하려고 회사의 문을 나오던 참이었다. 수척한 얼굴을 한 남성이 정하를 붙잡았다. 머리를 염색하지 못해 흰머리가 비죽 모습을 드러낸 사람이다.

“내 아내… 내 아내가 당신네 회사 진통제를 먹고 간이 망가졌어요. 매일 먹던 약이었는데. 손이 노래져서 병원 가보니 황달이래요. 간이 제 기능을 더 이상 못 한대요.”

“죄송합니다.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 저희 회사에 한 번 문의해 보세요.”

당황해서 그를 뿌리치고 서둘러 집에 왔지만, 정하는 마음이 찜찜했다. 아마 그 남자가 말했던 약은 진통제 ‘페인힐’, 회사의 스테디셀러 약일 것이다. 

‘그런 부작용이 있다고? 처음 들어보는데.’

찝찝함은 주말 내내 그의 머릿속을 들락날락했다. 친구랑 밥을 먹을 때는 까맣게 잊고 있다가, 친구랑 헤어지고 집에 들어오면 생각나는 식이었다.

그렇게 월요일이 왔다. 정하는 회사 자료를 열어봤다. 

‘어, 이상하다?’

진통제 페인힐에 관한 부작용 문서가 두 개였다. 하나는 정하가 익히 알던 부작용 설명서였다. 다른 하나는 보안 파일 항목에 들어있었다. 그의 아이디를 입력하니 문서가 열렸다. 문서의 중하단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었다. 

-간기능에 심각한 이상을 미친다는 통계가 있음.

정하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앞을 마지못해 대면했다. 그의 제약회사에서 중대한 부작용을 숨겼다. 

‘젠장, 그냥 신경 쓰지 말 걸. 아니면 문서를 찾지라도 말 걸.’

그의 뇌에 이미 새겨진 사실은 잊어버리려고 해도 잊을 수 없었다. 어떤 사실은 사람의 인생을 뒤바꿔놓는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금요일이 왔다. 그 남성은 아직도 회사 앞을 떠돌며 사람들을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회사는 거대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정하는 고민 끝에 침대에 털썩 누웠다. 지나칠 수도 없고 지나치지 않을 수도 없는 그 남성의 모습이 자꾸 아른거렸다. 그가 음악을 틀어 놓은 핸드폰에서 가수 신승은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잘못된 걸 잘못됐다

네가 말하고 왔던 날 

나는 얘길 듣다 술집에서

갑자기 펑펑 울었지 



‘왜 하필이면 노래가 이딴 게 나와. 나도 안단 말이야. 내 제약회사가 사람을 해쳤다는 것을.’

그는 두려웠다. 말해도 해결되는 건 없을까 봐, 해결되기는 커녕 그의 소중한 일상만 잃을까 봐. 

그는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을 알고 있었다. 대학원을 다닐 때 교수의 비리 사실을 고발했다가 본인만 매장당한 그의 친구 희원. 정하가 제일 소름 끼쳤던 점은 어떻게 희원의 모든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등을 돌렸는가였다. 그 과정은 한순간에, 조용히, 침묵 속에서 이루어졌다. 희원은 결국 대학원을 나갔다. 정하는 그때 망설이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노래는 이어졌다. 



나는 나의 그런 순간들에 

그러지 못했었지

괜한 미움을 살까 봐

누가 날 노려볼까 봐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이상한 단어로 날 부를까 봐 



정하는 회상 했다. 

“희원아, 넌 대체 왜 그걸 말한 거야. 그냥 입 다물고 있으면 되는데. 그냥 졸업하면 되는 거잖아.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그동안 너의 시간이 너무 아까워. ”

“정하야. 어떤 진실은 아무도 듣지 않아도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있어. 누군가는 그 소리에 반응할 수밖에 없어. 이번에는 그게 나였던 거야.”

‘희원아, 너는 그때 이런 기분이었니. 너를 이해하지 못해서, 지지하지 못해서 미안해.’

이번에는 그 진실에 응답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정하는 마음이 편해졌다.

정하는 전화기를 들었다. 그는 말할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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