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망적인 일이 발생하면 냉철해지는 편이다.
와르르 무너져 내릴 정도의 충격이 인생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극 T가 고난을 극복하는 방법이랄까. 울어도 해결되는 것은 없으니까.
우선 사태를 정확히 파악한다.
그다음 ’그래서 내가 뭘 해야 하지?‘라는 고민과 함께
조사를 시작하고 해야 할 행동을 순차적으로 실행에 옮긴다.
일단락 해결이 되고 나면, 한숨을 쉬며 잠깐 회상을 한다.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이겨냈다.’
끝.
하지만 그렇게 넘어간 사건은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남아 있다가
내 껍질이 약해진 순간에 표면으로 올라온다.
마음을 단련한다는 것은 이러한 생채기가 어디에서 발생했는지 알고,
생채기가 딱지가 되어가는 과정을 스스로가 바라보는 일이 아닐까.
어젯밤에는 잠을 설쳤다.
일어나니 6시도 안 된 시간.
방학 2일 차인데 출근할 때보다 잠을 더 못 자고 눈이 떠져버렸다.
미루던 집안일을 좀 하다가 서이초로 향했다.
가서는 편지를 쓰지 못할 것 같아 집에서 미리 써갔다.
서이초가 보이는 사거리부터 눈물이 왈칵 났다.
학교 전체를 둘러 화환이 있었다.
세월호, 이태원 때와 비슷한 무력감이 들었다.
전국에서 도착한 수많은 근조 화환과
학생, 학부모, 교사, 주민, 돌아가신 선생님을 가르쳤던 서울교대 교수님 등 다양한 사람들의 글을 읽으니 답은 명확해졌다.
시스템의 개선이다.
교사 개인이 더 이상 복불복, 퐁당퐁당 (한 해는 학생+학부모 운이 좋고 다음 해는 그렇지 못하고)에 맡겨져서는 안 된다.
개인이 그 힘듦을 오롯이 감당하고 집단이 외면하는 그런 상황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내 동료들은 지금도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너이고 너는 나이다.
당신의 한숨이 나의 한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