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물’ 관람 후기
방학 첫날이 금요일인 것은 한적하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부지런히 즐기라는 계시다. 주말 아침에 종종 방문했던 아트하우스모모에서 영화를 봤다. 무진장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다기보다는 너무 상업적이지 않은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모모가 좋기 때문이다. 시간이 맞는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이었다. 지하철 광고로 개봉 소식은 알고 있었고, 스토리는 전혀 몰랐지만 워낙 유명한 감독이니 잘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영화가 시작하지 얼마 안 되어 아주 살짝 후회했다. 학교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직장 이야기를 영화에서까지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어쩌다 관람은 시작되어 버렸다.
영화는 꽤 흡인력이 높았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에서 3부로 갈수록 관객에게 반전에 반전을 보여준다. 나는 영화의 두 주인공 미나토와 요리가 1부와 2부에서까지만해도 미심쩍고 의심스럽고 이해가 되지 않아 답답했다. 하지만 미나토의 시선으로 사건이 진행되는 3부를 보고 나면 두 아이가 이해가 되면서 안쓰러워졌다. 물론 이 영화에서 가장 안쓰러운 사람은 최대 피해자인 호리 선생님이다. 스포가 되니 쓰지 않겠지만 이 영화는 교실에 소리 녹음되는 cctv 설치가 필요하다는 것에 힘을 싣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영화에 빠졌다.
영화의 제목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면서 두 소년이 아지트에서 하던 놀이의 제목이기도 한 ‘괴물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감독이 명백히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도대체 누가 괴물인지를, 누구를 비난해야 할지를 머리 굴리며 봤는데 결론은 괴물을 지목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을 납작하지 않게 입체적으로 잘 표현했다. 그럼에도 나는 괴물이 요리의 아빠, 그리고 요리를 따돌림하고 호리 선생님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린 학생들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의 의도는 ’ 누구도 괴물이라 할 수 없다.‘인 것 같지만.
영화에는 화재(불)와 수재(태풍과 폭풍우, 산사태)가 대비되며 클로즈업된다. 불과 물은 양날의 검과 같이 유용하지만 과하면 인간에 해가 되는 존재이다. 내 얕은 지식과 추론으로는 불은 화(anger)의 폭발,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 유언비어의 전파(spread), 인스타 라방을 가능케 하는 전파(electric wave)를 상징한다. 그리고 물은 위에서 아래로 무겁게 이러한 불을 짓누르는 힘이다. 미나토와 요리를 구원하는 게 물이었다. 요리가 방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재를 진압한 것은 소방관이 든 호스에서 나온 물줄기였고, 감당하기 어려운 미나토 마음속의 화염을 누른 것은 산사태까지 유발할 정도의 폭풍우였다.
폭우가 그치고 비현실적 이리만치 깨끗이 씻겨져 내려간 세상에 나오게 된 두 주인공을 담는 미장센은 너무 아름다웠다. 특히 요리의 미소가 어찌나 예쁜지. 둘이 영원히 그곳에서 행복했으면, 둘의 저 미소가 영원했으면 하고 기도를 하게 되었을 때 엔딩 크레디트가 올랐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피아노 소리를 감상하며 쿠키 영상도 없는 크레디트를 고요히 바라보며 영화가 남긴 여운을 느꼈다.
나는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영화를 좋아한다. 이 영화도 그래서 좋았다. 바로 유튜브에서 해석을 찾아보지 않고 내 나름의 분석을 한 다음 이동진 평론가의 영상을 찾아보았다.
이게 웬걸! 감독과의 비대면 대담 영상이 있어 흐뭇하게 감상했다. 놀랐던 것은 마지막 장면을 사후세계라고 확신했는데 그게 아니라 현실로 의도했다는 감독의 대답이었다. 내가 틀려서 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답이었다. 팟태기였는데 팟캐스트 여둘톡에서도 ‘괴물’을 다뤘다는 이야기를 듣고 들어보았다. 내가 놓친 디테일들이 꽤 있어서 이 영화는 다시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랜만에 ‘에에올’ 다음으로 해석할 거리가 있는 영화를 봐서 좋았고 무엇보다 눈호강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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