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 군사정권설
# 1. 성장통
많은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은 '우리나라의 급격한 성장에 따른 부작용'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정말 많은 부분이 따지고 보면 군사정권의 영향으로 생겨났습니다. 다들 아시는 상명하복 문화와 수직적인 체계부터
서울 과밀화
시민단체나 노동조합에 대한 불신
정치적 표현을 금기시하는 문화
주입식 교육과 만능경쟁주의
긴 근로시간, 야근 문화, 연차 승진 문화
뇌물, 비리 관행, 토론보다는 지시
시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재벌들과 대기업 중심 사회..
많은 사회의 문제들이 긴 군사정권, 긴 독재정권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만물군사정권설이냐, 무슨 뭐 다 군사정권 탓이냐?” 할 수 있습니다만, 그때 생겨난 문제들은 여전히,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왜 이런 문화들이 군사정권에서 비롯됐다고 하는지? 그리고 이 만약 이 문화들이 없었다면 어떨지 공부해 봤습니다.
# 2. 교육: 경쟁만능주의
박정희 정권은 교육을 ‘국가 발전을 위한 인력 양성 도구’로 여겼습니다. 68년 '국민교육헌장'을 만들고 외우도록 했습니다. 이때부터 교육의 목표는 창의적인 인재가 아닌, 충성스럽고 성실한 인간을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입시제도를 통해 학생들을 성적으로 줄 세우고 끊임없이 경쟁을 시킵니다. 1등이 곧 모범생이고 착한 학생이다. 토론과 질문은 필요 없고 외우고 정답 맞히는 학생이 우수하다.
시험 잘 보면 장땡이다. 수능, 내신.. 사교육 시장이 너무나도 과열되어 있죠. 군사정권이 무너진 지 몇십 년이 됐지만 이 교육들은 여전합니다.
심지어 더 경쟁을 시켜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조금 덜 불행하려면, 경쟁을 좀 줄이고.. 우리 인재들이 세계적으로 좋은 영향을 주려면, 교육 방식도 좀 바꿀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 3. 회사: 야근이 미덕
군사정권 시절, “열심히 일해야 나라가 산다”는 마인드가 주입됩니다. 근면하고 성실해야 애국을 하는 거다. 개인의 삶보다 국가 성장이 우선시 되죠. 그래서 장시간 일하는 것이 회사에,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라고 여겨지죠. 쉬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으로 보여지구요. 제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연차 못 쓴 걸 자랑했습니다. "올해도 연차가 10개 남았네?" 이게 미덕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노조에 대해서는 빨갱이, 시끄럽고 이기적이다. 이런 분위기도 이때 만들어집니다. 전태일 열사 분신 사건도 박정희 정권 때구요.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노조를 좌파, 반정부 세력으로 간주합니다. 노조활동은 체제를 부정하는 세력이다.
또, 노조에 귀족노조, 노조 카르텔 이런 프레임들이 남아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환경 카르텔'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어떻게 카르텔이 이런 말에 붙을 수 있는 거죠...? 카르텔은 권력이 있는 기득권 층이 본인의 권한을 놓치지 않으려는 게 카르텔인데요. 노동자와 환경에 어떻게 카르텔이라는 말이 붙는지.. 참.. 어쨌든 이런 말들과 프레임들은 군사정권 때 나왔고, 아직 뿌리 뽑지 못했습니다.
회사의 수직적인 체계도 군사정권 때 만들어집니다. 제가 학교 공학철학 시간에도 배운 내용입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하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에 군사문화가 들어왔다. 군대 공병 장교들의 지휘 아래 우리나라 대기업 건설기업들이 참여했고 그때, 상명하복 문화와 지휘체계가 그대로 회사에도 이식됐다고 합니다.
부장, 차장, 과장, 대리, 사원, 회사의 계급화, 말단 직원은 회의시간에 아무 말 없이 시킨 일만 잘하는 게 미덕으로 여겨집니다. 연차가 적으면 무조건 존댓말을 해야 하고, 나이가 많든 적든 선배면 무조건 반말을 하죠. 승진도 연차에 따라 시켜줍니다.
# 4. 재벌 문화
재벌 문화. 대기업 중심 문화도 이때 생깁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나라가 산업화 계획을 짜고, 나라가 기업을 고릅니다. 골라진 기업들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독점도 시켜줍니다. 삼성은 전자, 반도체를 맡아서 정부의 지원을 받구요. 현대는 고속도로, 중공업, 조선소, 정부의 일거리를 다 받죠. LG는 전자와 화학.. 이렇게 정권의 선택을 받은 기업이 아직까지도 재벌로 남아있습니다.
군사정권 때 주요 은행은 국유화되었고 대출도 정부가 허가합니다. 기업을 찍어서 특혜로 대출을 해주고 세금을 줄여주고 시장도 독점시킵니다. 반대로 정권 눈 밖에 들면 생존이 불가능하죠. 기업들은 정권에 충성하고 정치자금을 주고, 뒷돈을 주고, 선거자금을 주고.. 뇌물과 로비를 하면서 정경유착이 시작됩니다. 이 영향은 아직까지 남아있죠.
‘재벌’이라는 단어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단어입니다. 소수 대기업이 시장을 독식하고 중소기업이 낄 수가 없습니다. 신산업도 재벌이 먼저 진입을 하구요. 새로운 스타트업이 들어갈 수가 없죠. 정치권과 재벌이 서로 정치자금을 주고 특혜를 받습니다. 재벌들은 이상한 지배구조로 '주주들의' 회사를 본인 것 마냥 자식에게 상속합니다. 재벌가 사람들은 불법을 저질러도 경제를 살리고 있으므로 집행유예, 특별사면, 적자가 나면 국민 혈세로 정부지원금. 그러면서 수많은 직원들은 정직원과 계약직, 본사 직원과 파견 직원, 협력사 직원들과 임시직원들.. 사회 양극화는 심화되죠.
재벌문화는 군사정권이 낳고 아직도 낫지 않은 한국 사회의 염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재벌들이 아니었더라도 충분히 뛰어난 중소기업들이 경제를 지탱하고 건강한 경쟁을 하고 좀 느리더라도 충분히 경제를 살릴 수 있었을 거라고 보거든요.. 워라밸도 지켜지고, 대기업 중소기업 임금격차도 줄어들고, 근로자 인권도 지켜지고, 조금이나마 더 건강한 기업문화가 되었을 텐데.. 좀 아쉽습니다.
지금은 재벌 기업들이 힘을 못 쓰고 있죠.. 우리 혈세로 키워줬더니, 잘 못해서 손해를 보면 나랏돈으로 살려줘야 한다? 재벌기업들을 죽여야 한다는 게 아니라 공정한 경쟁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 5. 정치: 침묵
마지막으로는 간단하게 정치분야입니다. 최근에도 연예인이 정치발언을 하면 굉장히 논란이 되죠. 비슷한 관련된 행동만 해도 논란이 됩니다. 이것 또한 군사정권의 산물입니다. 군사정권, 또는 몇몇 정권에서는 정치적 발언을 한 유명인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랐죠. 실제로 생계가 어려워졌구요.. 지금도 정치 이야기 꺼내면 "침묵이 미덕이다.", "중립이 미덕이다."
반면에 독일은 나치에 침묵했던 역사 때문에 오히려 이런 침묵이 또 다른 죄로 여겨집니다. 우리나라는 반헌법적인 계엄령이 일어나도 침묵해야 하는 것이 미덕이 되었습니다.
서울 과밀화 역시 군사정권의 잔재입니다. 군사정권은 중앙 집중을 통해 통제를 하려고 했습니다. 행정, 교육, 언론, 기업들을 모두 다 서울에 뒀죠. 지방은 공장이나 군사적 용도로만 활용됐습니다. 지방자치제도는 실질적으로 95년부터 시작됐습니다.
시민단체와 노조에 대한 불신도 군사정권 때 심해졌습니다. 군사정권은 이들을 빨갱이,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했죠.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시민단체, 노조에 대해서 그렇게 바라봅니다. 시위를 하면 시끄럽고 불편하다고 생각하구요. 참 여러모로 우리 사회를 아프게 한 군사정권입니다.
# 6. 잘 사는 거, 누구 덕인데?
사실 저도 이런 오해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군사정권이 여러 문제를 일으킨 건 맞지만, 경제 발전에는 좋은 일 했다. 하지만 이건 '뉴라이트적 역사관'이 은근히 퍼져있는 결과인 것 같습니다. 역사, 서사가 부족한 보수 진영에서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을 미화하고 그래도 경제는 발전시켰다는 프레임을 만들었죠. 그리고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치켜세우면서 보수의 정통성을 만들었습니다. 요새는 일제강점기도 근대화를 시켰다며 미화합니다.
하지만 군사정권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경제발전을 하지 못했을까요? 저는 느리지만 더 확실하고 탄탄하게 성장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재벌 몇몇 집안이 시장을 독식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들이 공정하게 경쟁했을 수 있구요. 다양한 혁신 기술이 우리나라에서 나오고, 시장 독점 문제도 덜했겠죠. 정경유착이 없어져서 회사는 투명하게 경영되고 정치는 공정하게 이루어졌을 수 있습니다.
상명하복 문화보다는 토론하고 수평적인 문화가 만들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야근이 미덕이라는 문화보다는 저녁이 있고 사람답게 살 수 있었을 겁니다. 연예인, 공무원, 교사, 학생, 누구나 정치적 의견을 표현할 수 있었을 겁니다. 우리 노동자들의 삶이 재벌 몇몇의 손에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회사들에 의해 운영되면서 빈부격차가 많이 줄었을 수도 있죠.
역사에는 만약이 없다지만, 이런 만약을 생각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를 또 그려볼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