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진화심리학적으로 해석해보기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습니다.
자기계발서는 라면과 같고
고전은 집밥과 같아서
깊고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고
몸에도 좋다고 해서 읽어봤습니다.
우선 표지는 매우 간지가 났구요.
이방인을 읽은 제 소감은 좀 그렇습니다.
"아니, 이게 고전이라고?"
"그냥 중2병의 개똥철학 아니야?"
"아니, 의욕도 없고, 무미건조하게 사는 척하지만
성욕은 다 느끼고, 뭐야 얘?"
"고전이라더니 병맛이네"
하지만 알베르 카뮈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죠..
‘부조리’로 알려진 철학가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이방인의 유명한 구절들을 소개해드리고,
제 개인적인 후기,
그리고 왜 이게 고전으로 불렸는지
추가로 공부한 내용들을 설명드려보겠습니다.
(스포가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 1부: 사건 #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이 첫 문장으로 굉장히 유명한 소설입니다.
엄마가 죽었는데, 오늘인가 어젠가 모르겠다.
아 좀 냉소적인 사람이구나..
아니면 엄마랑 사이가 안 좋았던가?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근데 엄마 장례식을 다녀오고 나서
바로 다음날, 코미디 영화를 보고
데이트도 즐겁게 합니다.
오케이 뭐 여기까진 오케이..
엄마한테 크게 정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누구나 사연이 있으니까..
근데 아파트 옆집에서
남자가 여성을 폭행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피해 여성이 소리를 막 지르니까,
아파트 사람들이 다 나와서 무슨 일인지 확인합니다.
같이 있던 여자친구가 주인공한테 경찰을 부르자고 하죠.
이 때 주인공은
[그녀는 나에게 가서 경찰을 불러오라고 했지만,
나는 경찰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니..ㅋㅋㅋㅋ 이게 무슨..
경찰을 좋아하는 거랑, 맞고 있는 사람을 보는 거랑
연관이 있나? 아니 뭔, 뭐하는 새끼지?
근데 그런 일이 있고
경찰이 그냥 범죄자랑 피해자를 보내줍니다.
아니 이건 뭐 경찰도 정상은 아니네..
뭐 시대적으로 그럴 수 있으니까 그냥 넘어갔습니다.
근데 또 이해가 안되는 건,
그 범죄자랑 이 주인공이랑 같이 밥을 먹습니다.
범죄자가 밥 먹자고 했는데 주인공이 알겠다고 하거든요.
그리고 둘이 사이좋게 당구까지 칩니다.
[그 다음에 그는 창녀 집엘 가자고 했으나,
나는 그런 걸 좋아하지 않는 까닭에 싫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는데,
레몽은 정부를 혼내줘서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내게 아주 다정스럽게 구는 것 같았고,
나는 즐거운 한때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 이게 이해가 되시나요?
미친놈인거 같죠. 상식이 없고..
모든 걸 선호, 비선호로 판단을 하고
그걸 즐거운 한 때라고..?
아니 뭔… 이런 놈이 있나, 이게 고전이라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근데 나중에 해석을 들어보면
조금은 이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건 뒤에서 보도록 하구요.
다시 좀 시간이 지나고,
이웃집 할아버지랑 또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여기는 이웃끼리 굉장히 친하게 지내는 동네인 거 같아요.
아마 프랑스 바닷가 동네라고 했는데,
뭐 그런 거 같습니다. 굉장히 개방적이에요...
그 할아버지가 아끼는 개를 잃어버리십니다.
개가 목줄이 풀리니까 도망을 가버린 거에요.
그러면서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살라마노 영감에게 다른 개를 하나
데려오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지만,
영감은 자신이 그 개에게 길이 들었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옳은 말이었다.]
개에게 길이들었다, 다른 개를 그냥 데려와라..
이걸 보면 "아, 얘는 사이코패스구나" 좀 느꼈구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아내가 있으셨는데,
[아내와는 행복하지 못했지만
대체로 아내에게 길들어 있었다.
아내가 죽자 그는 매우 외롭다고 느꼈다.]
네, 사람간의 관계를 길들어 있다고 말하죠..
아 얘는 안되겠다,
얘는 그냥 안될 거 같다..
이렇게 느꼈습니다..ㅋㅋ
근데 제가 이 책을 보기 전에 후기를 먼저 봤거든요.
(여기서는 스포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 주인공이 악의가 없는 사람인데
그냥 떠오르는 생각으로 행동을 했더니,
햇빛이 눈이 부셔서 총을 쏘고, 사람을 죽이고,
사형을 선고받아서 죽거든요?
그 분은 이 주인공이 악의가 없는 사람인데,
엄마 장례식 때 안 울고, 거짓말을 안해서
사법체계에 대한 비판을 하는 책이다.
이렇게 후기를 남기셨더라구요.
저는 '아니, 이건 악의가 없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람이 아니구만, 사이코패스가 맞고..
사법체계가 잘 작동한거구만 뭔소리를 하는거야?'
이런 생각을 가지고 책을 봤습니다.
나중에 이 주인공이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나름의 해석을 제가 공부해봤으니까요.
뒤에 해석도 기대해주시구요ㅎㅎ
다시 스토리로 돌아오겠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바닷가로 그 범죄자 친구와
여자친구랑, 여럿 해서 휴가를 갑니다.
근데 그 범죄자 친구가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가지고
칼에 좀 베이고 숙소로 돌아온 상황입니다.
[마송 부인은 울고 있었고, 마리는 하얗게 질려 있었다.
(마리는 여자친구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설명을 하는 게 귀찮았다.
나는 결국 입을 다물어 버리고
담배를 피우면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이거 그냥 미친놈이죠? 뭐하는 놈인가 싶었구요.
아까 말씀드린것처럼 햇빛이 따가워서
총을 5발 쏴서 사람을 죽입니다.
[총알들은 깊이 들어가 박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소리와도 같았다.]
이걸 보면 본인이 불행의 문을 연 거는 알죠.
근데 그 죽은 사람은 보이지가 않나봐요.
총알을 보려고 하고, 지 입장에서만 생각을 하는
아주 무자비한 놈입니다..
이후 경찰에 잡혀서 감방에서
변호사랑 재판을 준비하는데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그는 화가 난 얼굴로 나가버렸다. (중략)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나를 원망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고,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그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변호사가 나가버린 거죠 열받아서..
변호사가 지극히 정상이에요ㅋㅋㅋ
근데 이 주인공은 본인이 다를 바 없다 남들과,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공감능력이 없는 게 선천적인거다.
이건 남들도 나처럼 태어나면 비슷할걸?
이런 말로 들리죠.
근데 그렇다고 남을 해치는 게 정당화 될 수는 없죠..
그래서 저는 계속 이 미친놈.. 하면서
열을 받은채로 소설을 읽었습니다.
여기까지가 1부구요,
재판 내용이 2부입니다.
# 2부: 재판 #
[그는 여전히 좀 피곤한 표정으로
내가 한 행동을 후회하느냐고만 물었다.
나는 잠깐 생각해본 뒤,
진정한 후회라기보다는
차라리 좀 귀찮다 싶은 느낌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날의 일은 그 정도에서 그쳤다.]
예심판사와 주인공의 대화입니다.
예심판사도 주인공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만, 예심판사는 그리스도를 언급하며
종교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본인의 종교를 약간 강요합니다.
시대가 그래서 그런가.
너가 그리스도를 안 믿어서 그런 거 같다.
이렇게 주인공을 이해합니다.
여기서 무신론자인 제가 이걸 읽으면
모든 걸 종교적으로 해석하고 그걸 강요하는
예심판사도 이해가 안되고,
예심판사와 저는 이 감정이 없는 주인공이 이해가 안되고.
그래서 본인의 종교를 강요하는 모습에서
예심판사도 저는 이해가 안되는 행동이라는 게,
뭔가 주인공이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을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생각이 드는,
약간 재밌는 부분이었던 거 같아요.
[모든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순조롭고 소박하게
진행되어, 나는 ‘가족적인 분위기’라는
어처구니 없는 인상을 받기까지 했다.]
사형 재판이 가족적이라고 하는 주인공입니다.
이제 뭐 놀랄 것도 없죠?
반대로 그에게 가족은 대체 뭐였는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ㅎㅎ
[그와 동시에 나는 마리를 바라보았고,
원피스 위로 그녀의 어깨를 꼭 껴안고 싶었다.
나는 그 얇은 천을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천 말고 더 바랄 게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마리가 말하려는 것도 바로 그것이었으리라.]
진짜 이 사람은 성욕은 있나봐요 감정은 없으면서,
참 이해가 안되는 분이죠.
[가령 여자에 대한 욕정이 고통거리였다.
젊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특별히 마리가 생각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냥 욕구 그 자체인 사람이죠..
그냥 갓난아기 수준이라고 보여집니다..
성욕은 당연한거라고 하면서, 참 이해가 안되는 분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죄수로서의 생각 밖에 없었다.
나는 안뜰에서 하는 매일의 산책이나
내 변호사의 방문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나머지 시간은 그럭저럭 잘 보낼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만약 누가 나를
마른 나무둥치 속에 들어가 살게 만들어
아무것도 없게 된다 해도,
차츰 그 생활에 익숙해졌으리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여러 해 만에 처음으로 나는
바보같이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심정이 되었다.
왜냐하면 내가 그 모든 사람들에게
얼마나 미움을 사고 있는지를 느꼈기 때문이다.]
재판 과정에서 배심원들이, 기자들이
주인공을 경멸하듯이 쳐다보니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미움을 사고 있는 걸 느끼고, 울음도 나온다..
감정이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참 연구대상감입니다..
이제 판사가 다른 증인한테 물어봅니다.
주인공 엄마 장례식 때, 같이 있었던
엄마의 남자친구 분의 증언인데요.
검사가 주인공이 엄마 장례식 때 울지도 않더라.
그만큼 얘는 냉혈한이다.
페레스 씨, 얘가 우는 거 보셨어요?
그랬더니 페레스 씨는 "못 봤습니다." 이렇게 대답합니다.
여기서 주인공의 변호사가 이렇게 반론을 폅니다.
[‘내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 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페레스는 “(그것 또한) 없습니다.”하고 대답했다.
방청객들이 웃었다.
그러자 내 변호사는 한쪽 소매를 걷어붙이면서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것이 바로 이 재판의 모습입니다.
모든 것이 다 사실이고 어느 것 하나 사실인 게 없습니다.”]
굉장히 유능한 변호사죠.
페레스 씨는 사실 우느라 정신이 없어서
주변을 잘 못봤다고 하시거든요.
그러니까 주인공이 우는 것도 못봤지만,
안 우는 것도 못봤던 거죠.
그걸 정확히 짚어낸 겁니다.
그러면서 검사가 지금 요지를 벗어난 주장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걸 짚은 거죠.
배심원들이 웃기까지 했구요.
어떤 분은 변호사가 무능한 변호사라고 해석을 하셨던데..
음.. 저는 그 부분은 동의하기 어렵더라구요.
그리고 검사가 주장을 이어서 펼쳐나갑니다.
[레몽은 그것도 우연이었다고 대답했다.
검사는, 이 사건에서 우연은
이미 양심에 많은 폐해를 가져왔다고 반박했다.
그는 레몽이 자기 정부의 뺨을 때렸을 때,
내가 말리지 않은 것도 우연인지,
내가 경찰서에 가서 증인을 서준 것도 우연인지,
그때의 증언이 레몽을 두둔하는 내용 일색이었던 것도
우연인지 알고 싶다고 했다.]
검사가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대신 해줍니다.
속이 시원하죠. 아주 유능한 검사입니다.
그리고 검사는 사형을 구형합니다, 주장한거죠.
그랬더니 주인공은
[나는 더위와 놀라움으로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사형 구형을 했더니 이런 반응을 보인 겁니다.
눈치도 없고.. 어리둥절하다니요,, 당연히 사형이지..
그게 더위랑 또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죠.. 참 화가 납니다..
여기서 좀 궁금하더라구요.
이 사람한테 고통을 주거나, 아프게 하거나,
죽게 하면, 피해자처럼..
어떻게 얘기할까?
피해자의 심정은 생각해본적이 없는지..
거기에 대해서 물어보면,
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그건 다른 것이다. 라고 얘기할 거 같더라구요.
아니면 별 생각없이, 그럴수도 있겠네요, 이제 알았다.
이럴 거 같더라구요. 이 어리석은 주인공은..
화가 많이 났던 거 같아요.
결국 재판이 끝나고, 판사는 당연히 사형을 선고합니다.
그리고 이제 하루하루 사형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그 때 당시에는 단두대에 갈지 모른다는
그런 불안함을 느끼면서 감옥에서 삽니다.
그래도 싼 놈이죠 아주..
[그 순간의 추론에서 좀 난처한 점은,
앞으로 이십년을 더 살 수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돌연 마음속에서 끔찍한 그 무엇이 치솟는 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십년 후 내가
어쨌든 그런 입장이 되어야 한다면
그 때 내 생각은 어떠할까를 상상함으로써
눌러버리면 그만이었다.]
본인이 죽을려고 하니까,
무엇이 치솟긴 하는 구나.
억울함인지 아쉬움인지.
근데 그것마저도 냉소로 눌러버리는 모습이죠..
참.. 치가 떨리더라구요.
[아무도,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본인이 엄마 장례식 때 안 울었던,
그걸 스스로한테 설명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슬퍼할 권리는 없다, 뭐 그럴 수는 있죠.
근데 슬퍼하잖아요 보통, 그러면 왜 너는 안 슬픈거냐?
슬퍼할 권리가 있던 없던, 보통 슬픈데,
너는 왜 안 슬픈거냐? 물어보고 싶죠.
그냥 안 슬프니까 그걸 포장하려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려고 이런 말을 한 거 같더라구요 저는.
그리고 주인공 뫼르소는 사형을 앞두고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다가 소설은 끝이 납니다.
# 해석 #
이 책의 저자인 알베르 카뮈는
이 내용이 사법체계의 비판을 담고 있다고 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여기서 정면으로 공격받고 있는 대상은
윤리가 아니라 재판의 세계입니다.
재판의 세계란 부르주아이기도 하고
나치이기도 하고 공산주의이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 시대의 모든 암들입니다.
뫼르소를 말하자면
그에게는 긍정적인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거부의 자세입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있다고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자기가 아는 것보다 더 말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도 의미합니다.]
카뮈 본인의 해석이지만
저는 굉장한 궤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 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아니죠.. 저는 이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을 때까지는
얘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범죄를 보고도 경찰이 싫어서 경찰을 안부르고,
남자한테 부당하게 맞고 있는 여자를 보고도
남자 편을 들었고
그 남자랑 밥을 먹고 당구를 치고, 여자친구를 소개하고,
그런 과정에서 이 주인공의 속생각을 들으면서
미친놈이다..라고 느낀 겁니다.
정리하자면, 저는 이 책을 보면서,
별로 느낄 수 있는게 없었고,
작가의 해석에도 동의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작가가 말하는 철학이라는 것도
개똥철학으로 보여질 뿐이었습니다.
근데 여기서 멈추면 좀 그렇잖아요..
이 '이방인'이라는 책,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노벨문학상 받은 작가의 책이고,
고전이라는데, 왜 그런가?
이해를 하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GPT랑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GPT한테 이방인을 고전이고 뛰어난 작품이라고
옹호하는 측에서 말하도록 저를 설득하도록 시켜봤습니다.
GPT 1:거짓말하지 않는 인간
대부분의 사람은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
장례식에서 안 슬퍼도 울어야 하고,
판사 앞에서는 반성하지 않아도 반성하는 척 해야 하고,
하지만 뫼르소는 그걸 거부했어.
울고 싶지 않으니 울지 않는다.
반성하지 않으니 반성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게 비인간적인 사이코패스처럼 보이지만,
다른 시각에선 가장 솔직한 인간인거야.
나 1: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어. 솔직한 인간.
근데 인간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내 감정이 맞는 감정인가,
올바른 감정인가 확인해야하는데,
얘는 그냥 본인한테 떠오르는 생각을 그냥 받아들이고,
그게 진리다, 맞다, 솔직하다.
이걸로 포장하는 걸로 밖에 안보여..
GPT 2: 사회가 싫어한 건 살인이 아니라 그 솔직함
재판 장면을 보면, 살인 자체보다
엄마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게 더 큰 문제로 다뤄져.
사회는 범죄의 본질보다 관습을 따르지 않는 태도를
더 위험하게 보고 있는 거야.
이건 사법체계와 사회도덕의 위선을 고발하는 거지.
나 2: 사법체계를 비판하려는 거 같긴 해
근데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아?
그 사건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면,
모든 살인 사건에서 사형을 구형해야 해.
근데 그런 일차원적인 판결을 하지 않고,
오히려 발전된 사법체계이기 때문에
다른 범죄자들한테는 기회를 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GPT 3: 부조리 속에서 긍정 찾기
마지막 장면에서 뫼르소는 죽음을 받아들이면서도
오히려 평온함을 느껴.
“삶은 본질적으로 의미가 없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살아도 된다.”
이게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 철학의 핵심이고,
뫼르소는 그걸 몸으로 살아낸 인물인거야.
나 3: 삶은 본질적으로 의미 없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살아도 된다.
이게 부조리 철학의 핵심이라고?
부조리 철학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봐아겠네..
GPT 4: 사이코패스냐, 철학적 인간이냐
너가 생각한 건, “공감도 못하는 미친놈”
옹호하는 쪽은 “사회가 요구하는 거짓말을
죽음 앞에서도 하지 않은 인간”
둘 다 맞아.
카뮈는 그 불편함 자체를 보여주려고 했다고 할 수 있어.
독자가 영웅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의도한 거지.
그러니까 너의 반응은
카뮈가 의도한 불편함을 그대로 경험한 거야.
이 인간은 쓰레기다.
라는 생각 자체가 이 작품의 효과일 수 있는거지.
# 삶의 부조리함 #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알베르 카뮈의 ‘부조리 철학’입니다.
부조리 Absurb 란
"세상에는 분명하고 확실한 의미가 없는데,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 의미를 갈망한다."
는 모순을 말합니다.
내가 당하는 어떤 부조리한 일, 억울한 일이 아니구요.
인간은 본인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하는데,
사실 본질적으로 삶의 의미라는 건 없는 거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이 부조리를 겪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카뮈는 이 부조리 앞에서
사람들이 3가지 길을 선택한다고 설명합니다.
1)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삶의 의미가 없으니 회피
2) 철학적 회피: 종교, 이념, 환상 같은 절대적 답을 만들어 덮어버리는 것
3) 부조리를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
그래서 카뮈는 세번째, 부조리를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길이라고 주장을 하는 겁니다.
이 소설이 등장한 게, 1942년이구요.
세계 1차 대전 이후에, 2차 대전 중에 쓰여졌죠.
이 때는 사람들이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고, 전쟁으로 힘들고..
그럼에도 살아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렇게 삶의 의미를 갈망할 때 쓰여진 책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삶의 의미라는 건 뭔가요?
사실 2025년 현재,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이미 밝혀졌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의미라는 건 본래 없는 거죠.
인간이라는 건, ‘생존’과 ‘번식’을 제 1순위, 제 2순위로
생각하게 프로그래밍된 생명체입니다.
우리는 부족사회 시절의 유전자를 그대로 가지고
현대를 살고 있구요.
진화심리학, 과학은
인간한테 ‘행복’이라는 게 뭔지 이미 밝혀냈습니다.
‘생존’에 유리한 일을 하거나 ‘번식’에 유리한 행동을 하면
뇌에서 ‘행복’이라는 걸 느끼게 해줍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행복을 느끼면서
인간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도록 진화되어있는 거죠.
모든 생명체가 마찬가지입니다.
다람쥐도 그렇구요, 토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토끼와 다람쥐는 삶의 의미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원래 없는 거니까요.
근데 인간은 발달된 뇌를 가지고 있어서
이 부조리가 생깁니다.
역설적으로 진화의 결과로
우리는 이 부조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부조리를 갖게 된 유전자가 생존한 결과죠.
"삶의 의미는 뭐지..? 삶이란 뭐지..? 나는 뭐지..?"
이게 카뮈가 설명한 부조리죠.
과학적으로 보면 이 부조리는 쉽게 설명이 가능합니다.
삶의 의미라는 건 원래 없죠.
하지만 그걸 고민하는 사람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던 겁니다.
그래서 오랜시간 살아남아서 우리가 되었죠.
A라는 사람은 삶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B라는 사람은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망하면서 살아갑니다.
몇 만년이 지났을 때,
B의 후손들이 더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고,
A의 후손들은 대가 끊겨 사라졌을 겁니다.
그 결과로 우리 인간들은 누구나 이 부조리를 경험하죠.
카뮈가 이 소설을 발표한지 4년 뒤 1946년,
2차대전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돌아온
한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이 발표됩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만약 삶에 목적이 있다면
시련과 죽음에도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이다.
만약 그것을 찾아낸다면
그 사람은 어떤 모욕적인 상황에서도
계속 성숙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니체가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빅터 프랭클은 인간이 삶의 의미를 찾아낸다면,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알베르 카뮈와는 다른 말 같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말입니다.
삶의 의미는 없죠. 우리가 정하는 거죠.
우리가 각자의 삶의 의미를 정하고,
그걸 만들어 낸다면,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습니다.
알베르 카뮈는 삶의 의미는 본래 없는 것이니,
그걸 인정하면 행복이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카뮈는 이 ‘이방인’이라는 소설을 쓴 겁니다.
삶의 의미는 본래 없는 것이고
그걸 받아들이면 행복이 찾아온다는 걸
주인공 뫼르소를 통해 보여준거죠.
그래서 뫼르소는 본인이 느끼는 생각을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행동으로 옮깁니다.
데이트가 하고 싶으면, 하구요.
경찰이 싫으면 부르지 않습니다.
범죄자랑 놀고 싶으면 놀구요.
총을 쏘고 싶으면 쏩니다.
판사 앞에서 반성하는 척을 하기 싫어서 하지 않구요.
사형을 선고받고 항소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습니다.
그냥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행복을 느낍니다.
이런 뫼르소를 통해서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를 인정할 때,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해하고 해석해본
이 고전 ‘이방인’에서 카뮈가 하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물론 ‘행복’이라는 말의 의미가 조금 다르긴 합니다.
행복이라는 건, 우리가 생존이나 번식에
유리한 행동을 할 때, 뇌가 느끼게 하는 것이지만,
카뮈는 어떤 편안함?
삶의 의미는 원래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오는
그런 안정감을 말합니다.
그런 면에서 철학은 과학보다 선행한다고 느꼈습니다.
철학에서 삶의 의미는 본래 없는 것, 그걸 인정해야 한다.
아 그래? 그러면 정말 없는 것인가? 한 번 찾아보자.
행복은 뭔가? 행복은 왜 느끼는지 연구해보자.
해서 약 8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행복의 정체를 알게 되었고,
삶의 의미는 본래 없는 것이라는 걸
과학적으로 증명했습니다!
재밌습니다..
그러면 아직 과학이 증명하지 못했고,
철학이 접근하고 있는 문제들은 어떤 문제들이 있을까요?
의식이라는 건 무엇인가?
생각한다는 건 전기 신호인가?
경험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AI도 경험할 수 있나?
자유의지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윤리라는 건 어떻게 정의해야하는가?
자아라는 건 어떻게 정의해야하는가?
이런 문제들이 있죠.
그래서 또, 이런 과학이 아직 정리하지 못했고,
철학이 다루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또 다른 책을 읽으면서 여러분들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굉장히 긴 시간을 통해
여러분들께 고전 ‘이방인’을 소개하고
제 방식대로 해석해봤습니다.
어떠셨나요?
그렇게 길지 않은 소설이니 한 번 읽어보시면
또 나름대로 여러분들만의 생각을
해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댓글 부탁드리고,
내용이 재밌으셨다면 좋아요 구독도 부탁드리고,
고전을 읽어보니
여러 생각도 할 수 있고,
참 재밌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고전들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