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살아도 괜찮다!
오늘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어봤습니다.
고전 중에 밀리의 서재 1위를 하고 있길래,
궁금해서 읽어봤는데요.
뭔가 좀 슴슴하지만,
그래도 작은 교훈들을 담고 있어서 좋았던 거 같아요.
(스포가 있습니다!)
[이렇듯 모두가 싯다르타를 사랑하였다.
모든 사람에게 그는 기쁨을 주었으며,
모든 사람에게 그는 즐거움의 원천이 되었다.
그렇지만 싯다르타 자신은
스스로에게는 기쁨을 주지 못하였으며
스스로에게는 즐거움의 원천이 되지도 못하였다.]
-> 싯다르타의 젊은 시절 이야기입니다.
싯다르타는 부처님과 태어난 환경이 비슷합니다.
아마 작가도 그걸 의도한 거 같은데요.
부유한 집안의 자식으로 태어납니다.
부처님은 아마 왕의 아들이었죠?
이름도 같습니다. 부처님은 고다마 싯다르타,
이 주인공은 싯다르타. 하지만 다른 사람이구요.
나중에 둘이 만나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 모든 환경이 만족스러웠고
사랑받는 사람이었지만, 본인 스스로는 그러지 못했다.
내면이 굉장히 갈등상태였다는 걸 보여줍니다.
[싯다르타는 내면에 불만의 싹을 키우기 시작하였다.
그는 아버지나 어머니의 사랑,
또한 친구인 고빈다의 사랑도 언제나
그리고 영원토록 자신을 행복하게 하여 주지도,
자신을 달래주지도, 자신을 흡족하게 하여 주지도,
자신을 만족시켜 주지도 못하리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는, 존경할 만한 아버지와 그 밖의 여러 스승들,
즉 지혜로운 바라문들이 자기에게
그들이 갖고 있는 최고의 지혜를 대부분 전달하였으며,
그들의 풍부한 지식을 자기가 기대하고 있는 그릇 속에
어쩌면 이미 다 부어 넣었는데도
그 그릇은 가득 차지 않았고,
정신은 만족을 얻지 못하였으며,
영혼은 안정을 얻지 못하고
마음은 진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하였다.]
-> 당대 학자들의 지혜를 전수받았지만,
정신적인 만족을 얻지 못했고,
영혼은 불안정했다는 걸 보여줍니다.
[“격하고 성난 말들을 입에 담는 것은
바라문이 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불쾌한 감정이 나의 마음을 뒤흔드는구나.
네가 그런 말을 입 밖에 내는 것을
두 번 다시는 듣고 싶지 않다.”]
-> 싯다르타가 출가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의 아버지의 반응입니다.
부처님도 장차 왕이 되어야 하는데,
출가를 결심해버리시죠.
이 싯다르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까지만 봤을 때,
'아 이게 부처님 이야기인가보다' 했는데
그냥 동명이인일 뿐입니다.
[“아버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렇게 한 시간마다 계속 아버지는 나와서
말없이 방 안을 들여다보았으며,
그때마다 꼼짝 않고 서 있는 아들을 보았다.
그러자 아버지의 마음은 분노로 가득 찼으며.
아버지의 마음은 불안으로 가득 찼으며,
아버지의 마음은 두려움으로 가득 찼으며,
아버지의 마음은 고뇌로 가득 찼다.]
[(동이 트기 전)
“싯다르타야.” 아버지가 말하였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느냐?”
“아버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날이 새고, 정오가 되고, 저녁이 될 때까지
언제까지나 그렇게 서서 기다릴 셈이냐?”
“저는 서서 기다릴 것입니다.”
“싯다르타야, 넌 지치게 될 것이다.”
“저는 지치게 될 것입니다.”
“싯다르타야, 넌 잠이 들게 될 것이다.”
“저는 잠들지 않을 것입니다.”
“싯다르타야, 넌 죽게 될 것이다.”
“저는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넌 아비의 말을 따르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거냐?”
“싯다르타는 항상 아버님의 말씀을 따라왔습니다.”
“그러면 너의 계획을 포기하겠다는 거냐?”
“싯다르타는 아버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 바라문은 싯다르타의 무릎이
가볍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싯다르타는 발걸음을 떼려고 할 때 옆으로 휘청거렸다.]
-> 싯다르타가 결국 출가를 하게 됩니다.
그 과정이 재밌었던 거 같아요.
서서 기다릴 거냐? 서서 기다릴 것입니다.
넌 지칠거야. 전 지칠겁니다.
이런 대화 방식이 재밌었던 거 같아요ㅋㅋㅋ
그리고 마지막에 휘청거렸다는 것까지,
아 이게 불교 경전이 아니고, 소설이 맞구나.
라는 걸 뭔가 알려주는 거 같죠.
그렇게 싯다르타는 집을 떠나서
‘사문’이라고 하는 명상하고, 단식하고
이런 집단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몇 년간 명상하고 단식하고 고행을 합니다.
근데 인도 어딘가에서 부처님이 나타났다.
살아있는 부처님, 고다마 싯다르타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사문 집단을 떠나기로 합니다.
그렇게 사문의 가장 어르신을 찾아갑니다.
[그는 최연장자에게, 젊은 제자가 갖추어야 할
예의와 겸손한 태도를 다 갖추어서 자신의 결심을 알렸다.
그러나 그 사문은 두 젊은이가
자기 곁을 떠나려 한다는 사실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으며,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면서
입에 담지도 못할 험한 욕설을 해 대었다.]
-> 이번에도 최연장자는 싯다르타를 떠나지 못하게 하죠.
하지만 싯다르타는 역시나 이번에도 떠납니다.
그래서 세존 부처, 고다마 싯다르타를 만나는데요.
이 때, 어렸을 때부터 함께했던 친구 고빈다는
부처의 제자로 들어가서 승려가 됩니다.
근데 싯다르타는 뭔가 모를 그런 거부감이 생기고,
반항심이 생겨서 들어가지 않는데요.
부처님과 우연히 대화할 기회가 생깁니다.
부처는 누구나 마음 속에 있는거고,
깨달음은 말로써 전달할 수 없는 거다.
그래서 나는 부처의 제자가 되지 않으려 한다.
이런 대화를 하고, 다시 그 자리를 떠납니다.
그 자리를 떠나면서 이 싯다르타는
뭔가 모를 깨달음을 느낍니다.
아, 지금 살아 있는 이 인생을 그냥 충실히 사는 것,
그게 곧 깨달음이다.
그러면서 시내로 들어가서 속세의 삶을 시작합니다.
여기서 그 명언이 나옵니다.
[“나는 사색할 줄을 아오.
나는 기다릴 줄을 아오.
나는 단식할 줄을 아오.”]
-> 너 할줄 아는 게 뭐니? 했을 때,
싯다르타가 한 말입니다.
사색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단식할 줄 안다.
근데 정작 이런 재주들 말고,
글을 쓸 줄 안다는 걸로 취업이 됩니다.
이후에 사업에 참여하고, 돈을 벌 때는
그런 재주들이 분명 좋은 효과를 보이기도 합니다.
[“싯다르타가 하나의 목표, 하나의 계획을 세우면
바로 그렇게 되지요.
싯다르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아요.
그는 기다리고, 그는 사색하고, 그는 단식을 할 뿐이지요.
그러나 그는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채,
몸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마치 물속을 뚫고 내려가는 그 돌멩이처럼,
세상만사를 뚫고 헤쳐 나가지요.
그는 이끌려 가면 이끌려 가는 대로,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놔두지요.
그의 목적이 그를 끌어 잡아당기지요.
왜냐하면, 그의 목적에 위배되는 것은
그 어느 것도 자기 영혼 속에 들여보내지 않기 때문이오.
이것이 바로 싯다르타가 사문들한테 배운 것이오.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사람들이
마술이라고 부르는 것이오.
(중략)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색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단식할 줄 안다면,
마술을 부릴 수 있으며,
자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소.”]
-> 그렇게 싯다르타는 부자가 됐지만,
술에 빠지고 도박에 빠지게 되면서
그런 사문 시절에 자신이 익혔던 여러 재주들을
점점 잃어버립니다.
이제 그냥 속세에 사는 사람들과
정말 다를 바가 없어진 거죠.
그러다가 싯다르타가 어느날 엄청나게 현타를 느낍니다.
그리고 속세를 떠나야겠다,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냥 아무 생각없이 훌쩍 떠나버립니다.
약간 충동적이고 극단적인 게 항상 있는 거 같아요ㅋㅋㅋ
(MBTI P?)
[그녀는 싯다르타가 사라져 버렸다는 소식을
맨 처음 들었을 때 창가로 걸어갔다.
희귀한 새 한 마리를 잡아 가두어 놓은
금빛 찬란한 새장이 거기에 있었다.
그녀는 새장의 문을 열더니 그 새를
끄집어내서는 날려 보내 주었다.
그녀는 그 새, 날아가는 그 새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오랫동안 눈길을 떼지 않고 바라보았다.]
-> 싯다르타한테 돈을 벌 기회를 제공했고,
서로 사랑도 한 그런 사이인 카밀라가
이제 싯다르타를 보내준 상황입니다.
새를 날려보내준다는 걸로,
이 싯다르타를 마음에서도 내보내줬다는
그런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근데 알고보니까 이 카밀라가
싯다르타의 아들을 가졌고, 낳게 됩니다.
근데 싯다르타는 모르는 채로 떠났고,
강가에서 한 뱃사공의 제자가 됩니다.
그래서 뱃사공 일을 하고,
강을 보면서 삶을 배우는
이런 또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부처님이 위독하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부처님을 뵈러 부처님한테 가는데요.
카밀라랑 그 아들도 길을 떠납니다.
근데 숲에서 쉬고 있는데, 카밀라가 독사한테 물리게 돼요.
다행히 그 물린 카밀라를 뱃사공이 발견하게 되고
집으로 옮겨서 치료를 해주는데,
그래서 싯다르타랑 카밀라, 그 아들이 다시 만나게 되죠.
하지만 카밀라는 죽게 되고,
그 아들을 싯다르타가 맡게 됩니다.
이제는 또, 싯다르타가 아들한테 집착을 하기 시작합니다.
아들은 부잣집에서 곱게 자랐고,
또 유전자가 유전자라서 그런지
굉장히 반항심이 강한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뱃사공, 바주데바는 싯다르타한테,
너무 그러지 마라.
아이는 아이들이랑 어울려야 한다.
시내로 보내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 아이를 시내로 데려다주세요,
그 아이 어머니의 집으로 데려다주라는 말입니다.
그곳에는 아직 하인들이 있을 터이니,
그들에게 그 아이를 맡기세요.
(중략)
가르침을 받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소년들, 다른 소녀들과 어울리면서
그 아이의 세계에서 살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 맞는 말이죠.
지금 싯다르타는 도를 닦겠다고 강물을 보면서
뱃사공을 하고 있지만요.
이 아이는 한창 성장기이고,
본인의 삶을 살아야하는데,
우리의 삶을 강요하고 있으니,
보내줘야 한다는 얘긴데요.
여기에 대해서 싯다르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자주 그 점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그렇잖아도 부드러운 마음씨를 갖고 있지 않은 그 아이를
내가 어떻게 그런 세계로 내보낼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 아이는 사치스런 생할에 빠지지 않을까요?
그 아이는 쾌락과 권세의 늪에 빠져 버리지 않을까요?
그 아이는 자기 아비가 저질렀던 모든 과오들을
되풀이하지 않을까요?
그 아이는 혹시 윤회의 소용돌이 속에
온통 휘말려 버리지는 않을까요?]
[(바주데바가) 친애하는 친구여,
이러한 길이 어느 누구한테는
혹시 면제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당신이 설마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 싯다르타는 본인처럼 아이가 속세에 빠지지 않을까,
아니면 뭐 갑자기 사문이 되지는 않을까,
여러 과오들을 되풀이하지 않을까,
애지중지하며 보내주지 않습니다.
바주데바가 아무리 말리고
지혜는 전달할 수 없다며
그 아이 또한 직접 경험해야 배울 수 있다,
이렇게 합리적인 말을 해도,
본인 생각대로 하고 있죠.
고집이 아주 강한 타입입니다..ㅋㅋㅋ
근데 어떻게 될까요, 싯다르타 아들이잖아요?
역시나 바로 튀튀합니다..ㅋㅋㅋ
싯다르타 아들은 시내로 떠나고,
싯다르타는 혼자 남아서 다시 뱃사공 일을 합니다.
그러다 오랜 친구였던 고빈다를 다시 만나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 때 싯다르타가 하는 얘기가
작가가 우리한테 하고 싶은 얘기 같더라구요.
[지혜라는 것은 남에게 전달될 수 없다는 사실이네.
지혜란 아무리 현인이 전달하더라도
일단 전달되면 언제나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리는 법이야
(중략)
지식은 전달할 수가 있지만,
그러나 지혜는 전달할 수가 없는 법이야.
우리는 지혜를 찾아낼 수 있으며,
지혜를 체험할 수 있으며,
지혜를 지니고 다닐 수도 있으며,
지혜로써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지혜를 말하고 가르칠 수는 없네.
바로 이러한 사실을 이미 젊은 시절부터
나는 이따금씩 예감했으며,
이 때문에 내가 그 스승들 곁을 떠났던 거야.
(중략)
내가 깨달은 최고의 생각이란 이런거야.
‘모든 진리는 그 반대도 마찬가지로 진리이다.’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이렇네.
‘진리란 오직 일면적일 때에만 말로 나타낼 수 있으며,
말이라는 겉껍질로 덮어씌울 수가 있다.’
생각으로써 생각될 수 있고 말로써 말해질 수 있는 것,
그런 것은 모두 다 일면적이지.
모두 다 일면적이며, 모두 다 반쪽에 불과하며,
모두 다 전체성이나 완전성, 단일성이 결여되어 있지.]
저는 좀 이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싯다르타가 부잣집 아들로 살다가,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문이 되었다가,
다시 사문의 반대를 무릅쓰고 부처를 찾아갔다가,
친구의 반대를 무릅쓰고 부처를 떠났다가,
속세에서 부자가 되고 향락에 빠져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뱃사공이 되었다가,
아들을 키우면서 집착하게 되었다가,
아들을 떠나보내면서 집착을 놓게 되고,
다시 뱃사공의 삶을 살면서..
정말 고집이 세죠.
하지만 그 때 그 때 마다 본인의 길을 선택한 이유가
나름대로 있었고,
나름대로는 최선의 선택을 합니다.
돌아보면 여러 다양한 삶을 살았죠.
그리고 주변의 반대는 듣지 않고 본인 생각대로 살죠.
그렇게 지혜를 찾으며 살았지만,
지혜는 전달할 수 없구나.
지혜는 경험하면서 배우는 거구나.
이 복잡한 세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고,
그러니까 말로서 이 지혜는 전달할 수가 없다.
인생을 살아봐야 안다. 경험을 해봐야 아는 거다.
그리고 이런 싯다르타의 삶을 통해서,
어떤 길을 가던 괜찮다.
네 마음 속에 떠오르는 대로 살아도 된다.
라는 걸 말하고 있는 거 같아요.
어떤 삶이던 나름의 지혜를 배울 수 있으니 괜찮다.
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것 같더라구요.
저도 초중고, 대학교, 군대를 지나서 회사를 다니고,
회사를 나오고, 저만의 일을 해보고,
언젠가는 또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고,
아무리 남들이 뭐가 맞다, 이게 맞다 하더라도
내 마음속에서 들리는 길을 가도 된다.
왜냐면 각자 모두 다른 사정이 있고,
그 사정을 설명하기에 말은 한계가 있다.
그러니 지혜는 전달될 수가 없다.
그러니 너만의 삶을 살면 되고,
그래도 된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 같았고,
저도 좀 위로를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름 잔잔한 깨달음을 배운 것 같구요.
지혜는 전달할 수가 없는 거다.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아, 지혜 유튜버인 나는
그럼 무슨 이야기를 해야하나ㅋㅋㅋ 싶기도 했는데요.
이렇게 지혜를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고전을 읽고 또 소개해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이 길을 가는 게 맞을까,
내가 가고 싶은 길로, 가도 되는 걸까?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께
이 문장을 마지막으로 선물해드리면서 마치겠습니다.
[아니 모든 중생 개개인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바로 그 생성되고 있는 부처를,
바로 그 부처가 될 가능성을 지닌 부처를,
바로 그 숨어 있는 부처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되네.
고빈다,
이 세계는 불완전한 것도 아니며,
완성을 향하여 서서히 나아가는 도중에 있는 것도 아니네. (중략)
아무도 다른 사람에 대하여 그 사람이
스스로의 인생행로에서 얼마만큼 나아간 경지에 있는가를
감히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는 없네.
도둑과 주사위 노름꾼의 내면에 부처가 깃들어 있고,
바라문의 내면에 도둑이 도사리고 있으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