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고기한테 지신 게 아니에요.
노인은 84일동안 고기를 잡지 못한 어부입니다.
그럼에도 85일째, 바다로 향합니다.
오랜기간 고기를 잡지 못했지만,
그의 힘이나 기술은 여전합니다.
바다에서 드디어 미끼를 문 것 같은 느낌이 옵니다.
매우 큰 물고기임을 직감합니다.
물고기가 낚시바늘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줄을 팽팽하게 유지하고,
너무 팽팽해져서 끊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줄을 계속 조절해줍니다.
매우 큰 물고기라 그런지
물고기는 계속 해서 배를 끌고다닙니다.
물고기가 지칠 때까지 노인은 낚싯줄을 붙잡고
계속 조절합니다.
85일 낮에 미끼를 물었던 고기는
85일 밤, 86일 낮, 86일 밤, 87일째 낮까지
2박 3일동안 계속해서 배를 끌고 다닙니다.
드디어 고기가 지쳐서 수면 위로 올라오고,
노인은 작살을 꽂아서 물고기를 잡아냅니다.
작은 노인의 배보다 50cm가 더 큰,
900kg 쯤 되어보이는 청새치입니다.
이틀 밤을 새워서 물고기를 잡았고,
노인의 손과 몸에는 치열한 사투의 상처들이 남았습니다.
이제 고기를 배와 묶고 항구로 돌아가야하는데,
고기에서 흘러나온 피냄새를 맡고 상어들이 쫓아옵니다.
작살을 고기 잡는 데에 써서
칼을 노에 연결해서 상어들을 죽입니다.
그래도 상어들은 계속해서 물고기를 먹으러 옵니다.
상어들을 계속해서 칼로 찌르고 몽둥이로 때리면서
항구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엄청난 크기의 물고기 뼈만 남았습니다.
노인이 실종된 줄 알았던 마을 사람들은
비행기까지 동원해 노인을 찾았다고 합니다.
노인은 지쳐서 잠에 들었고,
마을 사람들은 노인의 배에 묶여있는
엄청난 크기의 뼈와 머리를 보고 놀랍니다.
노인은 내가 졌다고 합니다.
[“그놈들한테 내가 졌어, 마놀린.
놈들한테 내가 완전히 지고 만 거야.”
노인이 말했다.
“할아버지가 고기한테 지신 게 아니에요.
고기한테 지신 게 아니라고요.”
“그렇지. 정말 그래. 내가 진 건 그 뒤였어.”]
노인과 바다, 그 유명한 소설을 이제야 읽어봤습니다.
요새는 부산을 두고 노인과 바다,
청년들이 떠나가서 그렇게 부른다고 하던데요.
참 슬픈 현실이죠.
헤밍웨이는 이 책을 통해
결과보다는 과정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습니다.
어차피 죽어 없어지지만,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된 책인 거 같아요.
[좋은 일이란 오래가는 법이 없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차라리 이게 한낱 꿈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 고기는 잡은 적도 없고,
지금 이 순간 침대에 신문지를 깔고
혼자 누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인간은 패배하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포기할 순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
사람이 진정으로 마음을 놓을 때가 끝이라는 거죠.
사람이 마음을 놓지만 않으면, 도전은 계속된다는 겁니다.
[희망을 버린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더구나 그건 죄악이거든.
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자,
하고 그는 생각했다.]
저는 유튜브를 하고 있습니다.
근 1년 가까이 지났고,
돈을 많이 주던 회사를 나와,
혼자서 영상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저는 1년동안 아직 고기를 잡지 못한 어부 같습니다.
나름대로는 치열한 사투를 1년간 해오고 있지만
제가 잡은 물고기는 한 마리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저한테
그건 패배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더라구요.
고기는 뼈만 남았고,
이틀 밤을 새고 바다에서 싸운
노인이 얻은 건 아무것도 없지만,
그 과정은 아무도 무시할 수 없고,
남은 뼈들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경외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유튜브를 도전하다가
결국엔 실패하더라도 이 과정은,
적어도 저만큼은 이 과정을
가치 있게 기억해주면 되는 것 같습니다.
만약에라도 제가 성공한다면 이런 과정들이,
남아있는 수 많은 고기 뼈들이
제 성공을 더 빛내줄 수도 있구요.
이렇게 좀 소설을 보면서
제 유튜브 생활에 나름대로 조언을 찾아봤습니다.
어부가 고기를 잡듯이,
저는 유튜버니까 영상을 계속 만들어봐야겠습니다.
그것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헤밍웨이가 말해주고 있으니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