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이라는 착각, 침묵과 양비론의 위험성
# 1. 정말 중립인가?
연예인이라면 정치적 중립을 강요받습니다. 투표시기에 무슨 색 옷을 입으면 "애국보수다" "개념진보다" 몇몇 연예인은 양비론을 펴기도 합니다. "오른쪽이나 왼쪽이나 똑같다" "둘 다 못한다." 근데 이런 양비론과 침묵은 정말 중립일까요? 사실 이런 정치적 침묵과 양비론은 중립이 아닙니다. 하나의 또 다른 선택으로 볼 수 있는데요.
흑인 노예들이 석방운동을 하고, 백인 노예주들은 반대운동을 한다고 합시다. 거기에 대해 "노예나 노예주나 똑같아" "둘 다 잘한 거 없어" "나는 중립이야." 이게 정말 중립일까요? 노예제도에 대해서 침묵하고 양비론을 주장하는 건, 노예주들을 지지하는 거랑 다름이 없습니다. 힘이 세고 힘이 약한 사람들이 대치를 할 때, "둘 다 잘못했다", "나는 침묵한다", "중립이다." 이건 결국 힘센 사람들을 지지하는 것이겠죠.
그니까, 이런 중립, 침묵, 양비론은 때로 기득권을 보호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어느 쪽이 더 문제인지, 어디에 구조적 폭력이 존재하는지 따져봐야 하는데, 그냥 도덕적으로 판단을 회피하는 거겠죠. 결국엔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선택이라는 점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 2. 최소한의 책임감
정치적으로 중립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지금 이 사회에서 직접적인 피해를 받지 않는 그런 위치에 있다는 뜻입니다.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가족을, 일자리를 지키려고 하지만 "그 싸움을 나는 모른다", "둘 다 문제다" 얘기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특권이자 위선이고 도덕적 회피가 될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우리 모두가 지금 자유롭게 일하고 연예인이 활동하고 자유롭게 걸어 다니는 것은 누군가의 투쟁과 희생 덕분에 만들어졌습니다. 군사정권에 대항한 수많은 시민운동이 없었더라면 지금 이렇게 자유롭게 생각을 얘기하고 연예인들이 검열 없이 티비에 나올 수 있었을까요? 아동노동에 대한 투쟁이 없었더라면 우리도 어렸을 때, 한창 커야 할 때, 공장에서 일하고 몸을 다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투쟁과 희생에 대한 우리의 자유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을 느낀다면 정치적으로 침묵하고, 기계적으로 중립을 지키고 양비론을 펴는 것은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 3.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
그렇다고 정치인이 아닌 연예인이, 일반인이 모든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 발언하고 항상 피해자 편을 들 수는 없죠. 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고, 복잡하고 전문적인 이슈는 하나하나 다 공부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정책 하나하나, 정치적 논란 하나하나에 모두 발언할 필요는 없습니다.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침묵하면 절대 안 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생명과 안전이 희생되었을 때겠죠. 피해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도 없고 침묵한다면, 본인이 희생당했을 때 아무도 공감해주지 않을 겁니다. 또, 인권이 침해당하거나 소수자라 혐오당하고, 사회적으로 차별당했을 때. 이런 혐오 상황에서 침묵한다는 건 그런 혐오를 방조하는 잘못이 됩니다.
그리고 계엄령, 독재, 쿠데타 등의 사건으로 헌법이 침해당했을 때. 이건 정치적 상황이 아니라, 국민이 선택한 헌법을 침해한 것이기 때문에 이 때도 침묵하는 것은 폭력에 동조하고, 현재의 자유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도 지지 않는 거겠죠.
"어째서 침묵이 동조가 될 수 있느냐?” 혐오 범죄가 일어났는데 모두가 침묵한다면, "아, 이래도 되는구나", 가해자에게는 인정을 해주는 겁니다. 계엄령이 일어났는데 "아 모르겠고, 둘 다 잘못했다"하면 "음, 다음에 또 계엄령 해도 된다." 이렇게 해석되는 거죠. 한 마디로 침묵과 양비론은 최소한의 책임마저 회피하는 자세라고 생각됩니다.
# 4. 침묵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자유로운 일상, 그 일상을 만든 투쟁, 희생, 목소리를 단지 누리려고만 하고, 침묵하고 양비론으로 정치혐오를 부추긴다면 그건 결국 기득권을 지지하는 침묵의 공범이 됩니다. 그렇다고 모든 정치적 사안에 발언하자는 게 아니라 도저히 침묵할 수 없는 순간에는 과감하게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침묵해야 할 때와 말해야 하는 순간을 구분할 줄 아는 그 정도의 지식과 양심은 우리가 이 사회를 누리고 있는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생각됩니다..
시중에 헌법 책이 있습니다. 가격도 얼마 안 하고 분량도 엄청 적습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런 자유와 권리가 어떻게 헌법에 기록되어 있는지 한 번쯤 읽어보면 언제 침묵해야 하고 언제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제 생각에 대해서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