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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첩 Jul 05. 2019

상냥하지 않아도 좋아해 줄래?

수첩의 결혼(1)

연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비교적 명확하다. 나름 좋고 싫고 기준이 있다. 큰 기준은 자신에게 잘해주는 것이다.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에게는 당연하게도 호감을 가진다. 하지만 잘해준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는 일. 만나자마자 자신에게 잘해주는지 아닌지 알 수는 없다. 첫인상에서 연필이의 호불호 기준은 자신에게 상냥한가 아닌가 다.

연필이는 상냥한 사람을 좋아한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인가. 하지만 연필이가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은 이런 자신의 마음을 아주 솔직히 드러낸다는 것이다. 상냥하지 않은 사람에게 예의상 감정을 숨기지도, 혹시 상냥한 태도 뒤에 다른 마음을 숨기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도 하지 않는다. 부드럽고 친절하게 웃는 얼굴로 대하면 좋아한다. 연필이는 그동안 학교와 주간보호센터 등에서 많은 낯선 이들을 만나왔는데, 이왕이면 친절하고 상냥하고 잘 웃는 이들에게 더 빨리 마음의 문을 열었다. 고함치듯 또는 퉁명스럽게 말하는 사람은 옆에서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외면했다. 마치 없는 사람처럼 대하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음을 열지 않고 이별의 시간을 맞이하기도 했다.


연필이가 외면해도 너무 서운해 마


결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남편이 집에 첫인사 올 때 나는 조금 걱정을 했다. 남편은 내게는 귀엽고 잘 생겼고 착한 남자였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는 상냥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 같아서다.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는 결국 마음을 열지만 그러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리겠지. 그렇다고 남편에게 평생 살아왔던 것과 달리 상냥하게 연필이 대해 달라는 것은 너무 무리한 부탁이었다. 남편의 성격, 그의 성향을 있는 그대로 보이지 않고 꾸미는 걸 강요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내 동생의 마음에 들기 위해 내 배우자가 될 사람이 그렇게 노력해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니 자신의 모습 그대로 연필이를 대해도 언젠가는 마음을 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때까지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전까지는 남편이 집에 오면 그를 외면하고 방 한구석에 들어가 나오지 않겠지. 연필이는 낯선 사람이 집에 오면 그 사람이 갈 때까지 방에 콕 박혀서 잘 나오지 않는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처음 왔을 때 연필이는 이렇게 방으로 들어갔고, 몇 번 더 집에 오거나 밖에서 만나서 친해져야 피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낯선 사람이 왔는데 거실에서 맞이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매우 싫으면 본인이 방에 들어가는 걸로 끝나지 않고 그 사람에게 가버리라고 할 수도 있었다.


남편이 우리 집에 인사 올 생각을 해 봤다. 다른 사람들은 배우자 될 사람이 자신의 집에 인사 올 때 부모님과 배우자 될 사람 사이의 것을 주로 생각하던데. 나는 연필이와 관련된 것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남편이 왔는데, 연필이가 처음 보는 그를 맞이할 순간을 생각하니. 남편에게 벌써 좀 미안해지기도 하고, 낯설고 맘에 안 드는 사람 때문에 방에 들어가서 몇 시간 동안 안 나올 연필이도 안쓰럽고 뭐 그랬다. 그렇지만 연필이가 그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 감정은 연필이의 것이다. 내가 강요할 수는 없다. 남편과 결혼하는 사람은 나니까, 연필이가 처음에 싫어한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연필이의 장애에 대해 다시 간단히 설명하고, 혹시 이런 태도를 보인다면(내 마음속으로는 거의 99% 확정적이었다) 너무 서운해하지 말라는 말을 남편이 인사 오기 전에 하는 것 밖에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름 잘 해준 연필이


걱정이 무색하게 연필이는 남편을 피하지 않았다. 밥을 먹고, 연필이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부모님은 연필이에게 저 사람이 '형부'라고 알려줬고, 생소했을 '형부'라는 단어를 금방 익혔다. 처음 보는 상냥한 편이 아닌 사람이 집에 왔는데 피하지 않고 눈도 몇 번 마주쳤다. 남편은 당시 잘 몰랐겠지만 연필이는 남편에게 아주 잘 대해줬다. 아빠도, 엄마도, 나도 신기해했다.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른다. 그저, 다행이다, 고맙다고 생각할 뿐. 결혼해 살다 보니 남편과 연필이가 식성이 좀 비슷한데 혹시 자기와 닮은 뭔가를 느꼈나. 아니면 그냥 언니가 결혼할 사람이라니 잘 대해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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