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 때 나는 '을(乙)'일까
수첩의 결혼(2)
결혼 소식을 주변에 알렸다. 좁은 인간관계에 회사도 그만둔 터라 많은 사람에게 알리지 않았다. 내 나름 결혼식장에 와주면 감사하고 기쁠 사람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나와 마음을 나눴던, 소중하다 여긴 사람들에게 정중히, 결혼식에 와달라 청했다. 물론 오든 오지 않든, 그건 상대방의 선택이라 강요할 수 없는 문제다.
축하한다는 말 뒤에 이렇게 물어봤던 D가 있었다.
"너, 시부모님이 동생 '그런 거' 아셔?"
'그런 거'가 뭐냐고 묻자, 내 동생 장애를 말하는 거라 했다. 나는 알고 계신다고 답했다. D는 결혼 허락을 받은 거냐고 조심스레 다시 물었다. 나는 '허락'이라는 말이 좀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어쨌든 시부모님들은 나를 환영해주셨고 결혼 진행을 독려해 주셨으므로 그렇다고 말했다. D는 다행이라는 듯이 빙긋 웃으며 내게 "넌 진짜 시댁에 잘해야겠다"라고 말했다. 나는 당연히 남편의 부모로서 예의를 다 하고 마음을 쓸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라는 건 그 사람도 나도 아는 것이었다. 나는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다. 내가 결혼식에 와줬으면 할 만큼 소중하다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이 기분을 솔직히 말하고 사과를 받고 털어버리고 싶었다.
D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그것이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런 큰 결정을 해 주셨으니 충분히 평생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최대한 부드럽게 말하려 노력하는게 보였다.
아마 마음 한 조각을 주고, 여러 추억을 공유하는 사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여기서 대꾸를 하지 않고 그냥 무시해버렸을 거다. 아니, 애초에 기분 나쁘다는 얘길 하지 않았겠지. 아, 아예 결혼한다는 얘길 하지 않았을 테니까, 이런 일 자체가 없었으려나. 그러나 마지막 남은 마음을 짜내 나는 거기에 대꾸를 해 주었다.
내게 장애인 동생이 있다는 사실은 바꿀 수 없는 거잖아. 그런데 그게 싫고 견디기 힘드시다면 결혼을 반대하셨을 거고, 그렇다면 나도 굳이 억지로 결혼을 할 생각은 없었어. 내가 빈다고 그분들이 싫었던 나의 한 부분이 바뀌는 건 아니니까. 그건 평생 서로 괴로운 상황일 테니까.
나중에 연필이에 대한 내가 할 역할이 생긴다면 그걸 충실히 이행하겠지만 그것이 내 삶을 포기하고 매달리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랬기에 나는 연필이의 장애를 고지해야 할 사항이지만, 내가 안절부절못하며 고개를 숙여야 하는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고개를 숙인다고 더 좋아질 것도 없었다. 그렇게 서로 불편한 '갑과 을'의 관계를 만들며 결혼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런 나의 생각을 듣던 D는 "그래, 그런 당당함 좋다"라며 하하하, 하고 웃었다. 어색한 웃음. 그리고 이어진 어색한 침묵. D는 다른 주제로 말을 돌렸고, 그렇게 다른 것에 대해 깊지 않은 대화를 조금 더 나눴다. 그렇게 D와의 마음속 거리가 더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