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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첩 Jul 19. 2019

내 결혼식날 연필이

수첩의 결혼(3)

결혼식이 다가올수록 바빠지고 신경 쓸 것도 많다. 부케는 어떤 걸로 할지부터, 결혼식장에 식사와 예식에 대한 내용을 확인하고, 메이크업 업체, 드레스 업체 등과도 확인하고 선택하고 진행해야 한다. 우리 가족은 여기에 생각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연필이에 관한 거였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막연하게 이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진작부터 연필이를 집에서 돌봐주실 분을 찾아 부탁할 생각이었다. 나는 연필이가 내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는 걸 생각하지 않았는데.

혼주석에 의자 세 개는 어때?


나는 처음에 신부 혼주석에 의자를 세 개 놔 달라고 할까 생각했었다. 엄마는 그건 사돈께 너무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아무래도 부모님과 젊은이인 연필이가 앉아있으면 낯선 장면에 사람들이 주목할 거라고 했다. 결혼식이라 평상시와 다른 차림의 가족들과 더 낯선 사람들 사이에 있다 보면 돌발행동이 나올 수도 있고, 그러면 식이 진행되는 동안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될 거라고 했다. 그걸 보고 수군거리는 사람도 있을 거고, 그렇게 되면 사돈 손님도 계실 텐데, 체면도 있으실 거고 라고 하셨다. 그리고 식 자체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해 사돈과 사위, 그리고 딸인 내게도 미안한 일이라고 했다.

그럼 다른 형제자매처럼 뒤에 의자에 앉아있거나 하면 어떨까 했지만 그것도 엄마는 반대였다. 연필이는 낯선 곳에서 부모님과 꼭 붙어있어야 한다. 아마 학교나 주간보호센터에서처럼 선생님과 다른 친구들과만 있으면 몰라도, 눈 앞에 부모님과 내가 보이는데 본인은 낯선 사람들 틈에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랬다. 부모님이 앞에 있는데 본인은 그 옆에 못 있는다는 걸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자신도 부모님 옆으로 오려고 애를 쓰겠지. 그럴 연필이를 타이르고 진정시킬 만한 친척이나 지인이 마땅히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빠는 이에 대해 엄마의 뜻을 따르기로 하신 듯했다)

내 맘대로 울 거야


신부대기실에서 나는 오랜만에 보는 할머니, 삼촌, 이모, 고모, 외삼촌들, 다른 친척들, 사촌들, 친구들, 선후배들과 인사를 하고 사진까지 찍었다. 하지만 연필이는 없었다.

결혼식 시작 전 입장을 기다릴 때부터 눈물이 나려 했다. 연필이에게 애쓰면서도 나에게도 애썼던 엄마와 아빠, 자리에 없는 연필이, 그리고 다른 집과 조금 다른 상황에서 자랐던 나, 어렸을 때부터의 추억들, 결혼 전까지 항상 같이 살았던 내가 없으면 셋이 꾸려갈 일상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지나갔다. 복잡한 감정이 섞여 눈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같았다. 꾹 참던 눈물은 부모님께 인사하는 순서에서 터져 나왔다. 눈물이 터지는 그 순간에 또 다른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신부가 너무 울면 보기가 안 좋다는데, 화장이 복구 불가할 정도로 망가지면 어쩌지 같은. 괜히 결혼하는 게 슬픈 거 같아 보일까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그러다 연필이도 못 왔는데, 우는 것도 내 맘대로 못 하냐는 생각이 들어 그냥 편하게 울었다. 내 결혼식에서 내가 우는데 뭐 어때.

내가 울 동안 연필이는 돌봐주시는 분과 밥 잘 먹고 집에서 잘 있었다고. 그렇게 결혼식날 새벽에 본 연필이는 결혼식과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연필이는 내가 결혼한 걸 못 봤다는 생각에 미안함이 마음 한쪽에 머물렀다. 내가 좀 더 고집을 부릴 걸 그랬나. 내 결혼식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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