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첩 Jul 26. 2019

가끔 보는 사이

수첩의 결혼 후

당연한 말이지만 결혼 후 연필이를 매일 보지 못한다. 엄마를 통해 거의 매일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듣고 있다. 내가 알고 있다는 걸 연필이는 모르겠지. 결혼 전 살던 집에 가도 연필이가 주간보호센터에 가 있는 평일 낮 시간 동안 엄마를 보는 경우가 많아서 실제 연필이와 만날 일이 더 드물게 됐다.


함께 살 때는 매일의 연필이와 나, 그리고 가족들의 삶이라 그렇게 시간이 그냥 흘러가기만 했다. 연필이와 엄마, 아빠와 떨어져 지내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도 나고, 예전 일도 생각나고,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 쓸 수도 있게 되었다.

가끔 만나는 연필이는 일이 바빠 못 보던 후에 보는 것보다 더 건성으로 나를 대한다. 옆에서 부모님이 “연필아, 누가 왔어? 언니가 왔네.”라고 해도, “연필아, 언니랑 인사해, 안녕해야지.”라고 해도, 대충 손을 흔들고는 간식을 먹으며 밖을 내다보거나 한다. 그러다 몇 시간이 지나면 내 손을 잡는다.


‘언니 집’ 가는 길이라고?


연필이는 ‘형부’라는 말을 아주 잘 익혔다. 부모님이 언니가 올 거라고 하면 “형부!”라고 한다고. 나랑 한 묶음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엄청 살갑게 남편을 대하지는 않지만(아직 만난 횟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 보는 정도니까) 오랜만에 보는 나를 대하는 태도를 생각해보면 남편에게 나름 꽤 잘 대해주는 거다.

부모님은 연필이와 차를 타고 가끔 반찬이나 과일, 살던 집에 뒀던 짐 같은 걸 실어다 주셨다. 한두 번 정도 그렇게 신혼집에 오고 난 연필이는, 어떤 길에서 차선을 오른쪽으로 바꾸기만 하면 “언니 집!”이라고 외친다 했다. 따로 언니 집이 저기야,라고 가르친 적은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 길은 옛날 이모네 갈 때도 가던 길이고, 큰 마트에 갈 때도 가던 길이고, 고속도로를 타려고도 가던 길이었다. 내 집에 오는 길이 아님에도 그 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연필이는 어김없이 “언니 집!”을 외쳤다. 결혼 전 나는 한 번도 독립해 따로 산 적이 없어서 대체 어떻게 언니가 따로 살게 된 걸 이해하고 언니 집이란 걸 알게 된 건지 궁금해졌다.


신혼집에서 몇 년 살다가 남편과 내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했는데, 여기도 한 번 오고 우리 집 오는 길을 아는 것 같다.

 우린 이제 열심히, 평화롭게 각자의 삶을 살고, 그러다 남편이 오래 출장을 가거나 해서 내가 혼자 있기 싫어 며칠 살던 집으로 돌아갈 때면 몇 시간 만에 예전의 나를 대하듯 예전의 연필이와 나로 돌아간다. 그러는 사이 나도, 연필이도 조금 나이가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내 결혼식날 연필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