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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첩 Aug 16. 2019

너의 첫 비행기 탑승기(2)

가족여행(2)-2


제주로 가는 당일 새벽, 부모님과 연필이는 차로 결혼해 따로 사는 나를 데리러 왔다. 가는 차 안에서 내내 연필이에게 나머지 가족들은 오늘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갈 거라고 여러 번 말했다. 새벽 비행기는 아니었지만 출퇴근 시간이 겹쳐 길이 막힐까 서둘렀더니 출발 시간보다 한참 일찍 공항에 도착했다. 차를 공항 주차장에 주차하고 짐을 가지고 항공사 카운터로 가면서도 연필이에게 비행기를 탈 거라 설명했다.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꽤 오래 공항에서 기다렸는데, 그 동안 창 밖으로 보이는 비행기를 가리키면서 비행기를 탈 거라 연필이에게 이야기해줬다.

그렇지만 연필이는 게이트로 들어가 비행기 좌석에 앉을 때까지 비행기를 탄 줄 모르는 것 같았다.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게 게이트에서 표를 보여주고 통로를 따라 걷다가 의자가 많은 곳이 나와서 앉은 거니까.


출발 비행기는 꽉 찼다. 고등학생들로 보이는 승객들이 들뜬 듯 아주 소란스러웠다. 그들의 이야기 소리, 선생님으로 추정되는 성인이 아이들에게 외치는 주의사항을 듣고 있자니, 수학여행을 간다는 걸 알게 됐다. 비행기표를 예매할 때 잔여좌석이 거의 없을 만큼 표가 거의 다 팔렸는데 지정할 수 있는 좌석수가 많이 남아있어 고개를 갸우뚱했던 게 생각났다. 단체로 예약을 한 거라 좌석지정을 개별적으로 하지 않아서 그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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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 가족은 화장실이 자리한 좌석 앞 벽을 제외한 3면을, 신이 난 고등학생들에 둘러싸여 여행을 시작했다. 소란스러운 것은 괜찮았다. 아니 오히려 아주 조용한 비행기보다 연필이가 하는 말이나 불안해서 내는 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필이가 내는 소리에 방해받을 사람은 없는 것 같아서였다. 소란스러운 기내에서 연필이의 소리는 잘 들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연필이는 출발 전에 바로 앞에 있는 기내 화장실을 한 번 다녀오고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엔진이 켜지고 큰 기계음이 나자 연필이는 이제야 뭔가를 깨달았는지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기체가 흔들릴 때마다 우리를 둘러싼 학생들은 소리를 지르곤 했다. 마치 놀이기구를 탈 때 처럼. 꽤 깜짝 놀랄 정도의 큰 소리가 여기저기서 거의 동시에 났다. 연필이는 자신이 타고 있는 게 흔들릴 때마다 두려워하는데 큰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니 더 불안해했다. 엄마는 가방에서 연필이가 좋아하는 젤리를 꺼내 입에 넣어줬다. 연필이는 양 손을 엄마와 아빠 손을 한쪽씩 쥐고는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렇게 10시간이 넘는 것 같은 1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났다. 드디어,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긴장을 해서인지 연필이의 컨디션은 여행 내내 썩 좋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왔다는 걸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같았다. 렌터카를 운전하는 아빠에게 집으로 가자고 했다. 집 근처에 있는 장소를 가자고 하기도 했다. 평상시 가족들과 다닐 때와 마찬가지로 차에 네 명이 함께 타고 돌아다니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몸이 안 좋은가 싶어 연필이를 좀 더 세심하게 살폈다.


그렇게 모든 여행을 마치고 우리 가족은 다시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 됐다. 렌터카를 반납하고 렌터카 회사 버스로 공항에 들어왔는데, 출발 시간이 늦어진다는 알림 메시지가 왔다. 그렇게 지루해하는 연필이와 시간을 보내다 보안검색대로 들어왔다.


들어가는 곳에서 장애인이 있다고 하자 직원 한 분이 맨 끝에 있는 보안 검색대로 우리를 안내했다. 보안 검색대 직원 분은 친절하게도 연필이에게 차근차근 설명하며(아빠 손을 꼭 잡는 연필이에게 무섭지 않다고 안심시키는 말도 해줬다) 보안검색을 진행했다.  이 장면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 건 아마도 이런 장면을 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일 거다. 성인인 연필이가 알아듣든 그렇지 않든, 장애인이라는 걸 알게 되면 (연필이가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내용이 아니어도) 연필이에게 해야 할 말을 본인에게 직접 하지 않고 보호자에게 하는 경우를 종종 봤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뜻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갈 일만 남은 줄 알았는데, 아. 비행기가 언제 뜰지 모른다는 안내가 나왔다. 지연되는 다른 비행기 승객들도 많아서 탑승장 안에 있던 식당은 미어터질 지경이었고, 앉을 의자가 부족해 바닥에 앉은 사람들도 보였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비행기를 탔다. 연필이는 이제 비행기를 탄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곧 흔들릴 거라는 것도. 출발할 때와 다른 3자리-복도-3자리로 자리가 되어있어서 창가에 엄마, 연필이, 아빠 순으로 앉고 복도 건너 내가 앉았다. 부모님은 양 옆에서 연필이의 손을 잡아주고 젤리도 다시 등장했다.


그렇게 다시 짧지만 우리에게 긴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집이 있는 도시에 도착했다. 엄마는 이제 다시 연필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 하셨다. 이번에 타 봤으니 다음에는 적응돼서 더 잘 타지 않을까 라고 하는 내게 엄마는 그렇게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걸 굳이 태워야겠냐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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