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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첩 Aug 23. 2019

투명인간이 됐던 명절

연필과 수첩의 명절(1)

내가 초등학생 때, 친구들은 대부분 명절을 앞두고 설레 했다. 친척들도 만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학교도 쉬니까.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싫어하는 편이었다.

설이나 추석 전날, 우리 가족은 아빠의 부모님인 조부모님 댁에 갔다. 거리가 그리 먼 편이 아니었지만 명절만 되면 지방 소도시인 그곳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차가 엄청나게 막혔기 때문이다. 어둑한 새벽에 눈 비비며 일어나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몇 술 뜨고 차에 탔는데, 그렇게 출발해도 늦은 오후에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도착하는 일이 많았다. 이미 어린 나는 지쳐버린 상태였다. 할머니는 신발도 신지 않고 뛰어나와 반겨 주셨다. 하지만 죄송하게도 엄마가 명절 음식을 만들기 전까지는 맛있게 먹을 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나는 별로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곳만 가면 입맛이 까다로워 깨작거리는 어린이가 되어버렸다. 연필이는 원래도 먹는 것이 한정적이어서 더욱 먹는 것이 없었다. 엄마는 연필이가 먹는 과자 같은 것을 챙겨서 가곤 했다.

즐거웠던 기억은 없었나. 곰곰 생각해보니 몇 가지 생각이 났다. 눈이 잔뜩 왔을 때 삼촌들과 눈썰매를 탔던 것, 얼음판에서 놀던 것, 막내 삼촌이 지은 황토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감자를 구워 먹던 것, 그리고 가을에 밤을 따던 일.


연필이의 과자는 공공재가 아니야


하지만 이런 일은 정말 아주 가끔 있다. 대부분은 심심하고 외로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어린 내가 연필이를 오랜 시간 돌본다는 것 역시 힘에 부쳤다. 돌본다고 해봤자 대단한 걸 해줘야 하는 건 아니었다. 연필이에게 신경을 쓰고, 놀아주고, 필요한 것이 없나 살피는 것은 힘들었다. 몸이 엄청 힘들진 않았지만 계속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에서  차라리 수학 문제집을 푸는 게 덜 힘들 것 같았다(어린 나는 수학을 못하고 싫어했다). 연필이 때문에 부모님을 부르려다가도 웬만한 일은 그냥 내가 해결했다. 엄마는 부엌에서 바빴고, 아빠는 우리와 놀다가도 누군가가 찾아오면 방에 들어가거나 외출을 했다. 그러지 않으면 운전대를 오래 잡고 있어서 피곤했는지 잠이 들었다.


집에 오가는 사람이 많았지만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가끔 그렇게 오는 사람들은 나에게 몇 살인지, 몇 학년인지 같은 걸 물어보긴 했지만 연필이 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오랜만에 보는 어른들은 지갑을 꺼내 용돈을 줬는데, 대부분은 연필이 와 나에게 각자 주지 않고 나에게만 주거나 바로 옆에 연필이가 있어도 이건 동생 줘, 라며 나에게 줬다. 그렇게 주는 돈은 보통 나에게 주는 돈보다 액수가 적었다. 내가 연필이 보다 나이가 많으니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용돈 주는 건 의무도 아닌데 주는 게 고맙지,라고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이후로 연필이 보다 훨씬 어린 사촌동생에게 주는 용돈 액수가 연필이의 것보다 많은 것을 보고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연필이는 밥을 간장에 비벼서 김에 싸 먹거나, 된장국을 아주 조금 먹거나, 전 부치는 걸 따끈할 때(식은 거나 다시 데워준 것은 안 먹는다) 두세 조각 정도 먹는 게 식사의 거의 다였다. 그래서 집에서 싸 온 과자들이 연필이의 소중한 식량이었다. 그 과자들은 혹시 가게도 먼 시골에서 똑같은 과자를 사지 못할까 봐 미리 쟁여온 것들이었다. 할머니가 연필이가 먹고 있는 그 과자 봉지를 집어 다른 아이에게 줬던 적이 있다. 아마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겠지. 그냥, 그 과자를 먹고 있는 연필이 보다 다른 손주가 눈에 들어왔을 거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과자를 싸온 짐을 뒤진 누군가들은 그걸 신나게 까먹었다. 연필이는 이 과자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먹지 말라고 해도, 아무도 그 말을 듣지 않았고 그들의 보호자인 어른들은 아무도 그걸 말리지 않았다. 연필이 한테 과자 한 봉지 사준 적 없으면서.


숨어 있던 날들


명절 연휴의 클라이맥스는 당일 오전이었다. 아빠의 고향에서는 차례 지내는 방식이 좀 특이했다. 그 집안의 남자들이 모두 모여 각 집을 돌아다니며 차례를 지냈다. 예를 들어 나의 할아버지가 4형제의 둘째라면, 그 할아버지들의 남자 자식들이 모두 모여 총 네 번의 차례를 지내는 거다. 먼저 큰 할아버지 댁에 가서 큰 할아버지의 아들들, 손자들, 할아버지의 아들과 손자들, 작은할아버지와 막내 할아버지의 아들과 손자들이 차례를 지낸다. 그다음에는 그 사람들이 그대로 할아버지 댁에 가서 차례를 지내고 또 그다음에는 작은할아버지 댁에 가서 또 차례를 지내는 식이다. 그렇게 각 집을 들를 때마다 그 집에 있는 여성들은 차례상에 놓을 음식을 준비하고, 차례 후 식사할 상을 본다.

그래서 아빠는 일찌감치 나가서 어딘가에서 차례를 지내고 있고, 엄마는 음식을 하고 있다. 그러다 할아버지 댁에 차례를 지내러 거대 인원이 몰려올 때쯤 되면, 나는 연필이와 작은 방에 들어가 있거나 마당에 있는 차에 타 있었다. 뉘 집 자식인지 모르겠지만 난리 법석을 치던 남자애 하나도 그냥 두던데(말귀도 알아들을 비장애인 아이가 난리 치는 건 가만히 두면서) 왜 우리는 구석이 있어야 하는 걸까. 그나마 작은방에 있을 때는 다른 친척들도 고, 방도 따뜻해서 괜찮았는데, 아주 추운 날, 또는 늦더위가 가시지 않은 날 차에 둘이 타면 무척 춥거나 덥고 힘들고 심심했다. 그리고 배가 무척 고팠다. 차례가 끝나야 밥을 먹는데, 다른 사람들은 부엌에서 이것저것 집어먹기도 했지만 나와 연필이는 그럴 수 없었으니까. 연필이는 어차피 음식을 갖다 줘도 먹지 않았겠지만.

그러다 마주친 친척 영감 한 명이 있는데, 연필이를 돌보고 있던 아직 어린 내게 말했다. 이제 이렇게 컸으면 너도 일을 도와 야지, 뭐 하고 있냐고. 수첩이 애미가 자식 교육을 잘 못 시다는 말도 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듣고도 어렸던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괜히 인사한다고 나와서는 엄마 욕 먹이는 짓을 해버렸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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