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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첩 Jan 17. 2020

추운날의 오해

겨울과 비염


냉장고 문을 여니 재채기가 나오려 합니다. 재빠르게 팔꿈치로 막습니다. 오늘도 입 막고 재채기 성공. 팔꿈치나 손수건, 휴지로 재채기가 나오기 전에 입을 가리는 건 오랜 기간 했던 일입니다. 제가 웬만한 사람들보다 더 순발력 있게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일 겁니다. 그렇게 필요한 걸 꺼내고 냉장고 문을 닫습니다. 코가 아직도 맹맹하니 좀 막힙니다.


냉장고나 냉방중인 건물에서도 쐴 수 있지만, 어딜 가나 찬 공기를 접할 수 있는 건 겨울입니다. 바로 지금이지요. 겨울에는 감기 걸리는 사람도 다른 계절보다 많아 좀 더 자주 재채기하거나 콧물을 닦는 제게 감기 걸린 건지 묻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럴 때는 그냥 “아뇨, 비염인데 겨울에 심해져서요”라고 말하면 됩니다. 네, 옮지 않아요.  간단히 답을 하고 오해를 풀 수 있지요.


구구절절 이 길어질 것 같아 잘 설명하지 않았던 겨울철 오해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찬 바람을 쐬고 걷다 보면 숨이 찬 것처럼 몰아쉬는 적이 좀 있습니다. 오랫동안 추운 날씨에 걷고 나면 그랬습니다. 찬 공기를 오래 쐬니 코가 아주 많이 막혀 숨을 쉬기 힘든 상태가 되고, 거기에 가만히 있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걷기까지. 운동을 많이 한 것처럼 헉헉, 은 아니지만 그보다 조금 약하게 가쁜 숨을 쉴 때가 있습니다. 물론 추운 날씨에 오래 있었으니 볼은 좀 발갛게 됩니다.


가쁜 숨을 쉬며 볼이 발그레한 상태로 어딘가에 들어간다면? 실내에서 저를 맞이하는 사람이 보기에 저는 급하게 뛰어온 것 같을 겁니다. 정해진 시간에 가야하는 곳에 이 모습으로 나타나면 또 다른 오해가 생기기도 했는데요. 지각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뛰어온 것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한 번은 면접을 보러 갔는데, 진행하는 담당자가 제 이름을 듣고 체크하면서 “아직 안 늦었어요” 라며 방긋 웃더군요. 숨 좀 고르라면서 정수기 위치도 알려주었습니다. 난 허둥대며 온 게 아닌데. 친절한 담당자분께 제가 평소 1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를 1시간 30분 전에 나와서 여유 있게 왔다는 말을 굳이 하지 못했습니다. 뭐랄까, 말하기 애매한, 그렇다고 말 안 하기도 그렇고.


회사에서 외근을 갔을 때 이야기인데, 약속시간 5분 정도 전에 도착한 적이 있습니다. 만나기로 한 사람은 “천천히 오셔도 되는데”라면서 연락을 하지 그랬냐고, 뭘 그리 급하게 오냐고 했습니다. 급하게 아니고 천천히 왔다고 해도 “괜찮아요, 다음에는 그냥 연락하시고 천천히 오세요”라고 하더군요. 그러고 바로 일을 했지요. 이번에도 설명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위에 이야기한 사람들은 제게 친절하게 대해준 사람들입니다. 제가 급하게 온 줄 오해했지만요. 그런데 세상에 꼭 친절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닐 텐데. 앞서 말한 분들처럼 시간 안에 오기 위해서 제가 노력하느라 숨이 찬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유 있게 출발해 오지 않고 허둥대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추운 날은 항상 더 일찍 출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적어도,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허둥대서 숨이 찬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요. 만에 하나 아주 조금이라도 약속시간에 늦으면, 헐레벌떡 약속 시간에 지각하는 정신없는 사람처럼 보이겠죠. 그건, 정말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제가 너무 미련했나 싶기도 합니다. 찬바람이 부는데 저는 왜 그렇게 걸어서 다녔을까요. 대중교통으로 가기 힘들면 택시를 타도 됐을 텐데. 차를 가지고 다녀도 됐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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