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 뮈 May 19. 2022

바티칸에서 만난 하얀 새

나에겐 태몽 같은 이야기

우리 부부에게 아이는 쉽게 오지 않았다.

결혼 2년차 즈음, 임테기의 반응선이 두 줄이었다가 한 줄이 되어버린 후부터 더 쉽지 않았고, 그 뒤로 더 조급해지기도 했다. 유명하다는 난임 병원을 수소문해 이곳 저곳 드나들기 시작했고, 아이가 잘 들어선다는 한의원의 약은 달고 먹었다. 남편의 정자가 건강해야한다는 소리에 남편은 혹독하게 운동과 식이요법을 해야 했고, 착상에 카페인이 안좋다는 소리에 나는 그 좋아하던 커피도 끊다시피 줄여야했다. 인공수정 시술도 몇 차례 받았지만 그 뒤로도 한번의 유산을 더 겪어야만 했다. 정말 쉽지 않았다.


아이 소식은 없냐는 주변의 질문에 스스로 더 스트레스를 받았고, 혹 지인의 임신 소식이라도 들리면 축하보다 옹졸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우리 부부의 모든 생활과 마음이 임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그 상황이 우리의 생활을 피폐하게 만들어갔다. 악순환이었다. 그 스트레스가 다시 임신을 방해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 우리 부부는 결심했다. 모든 신경의 끈을 놓아버리기로...


우선 나는 업무강도가 셌던 직장을 그만두기로 했다. 조금은 시간과 체력적인 여유가 있는 곳으로, 프리랜서 이직을 결심했다. 그리고 나를 좀 쉬게 해주기로 했다. 이 부분에 대해 남편은 적극 동의해줬고, 그 마음이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맙다. 퇴사와 이직 사이 열흘 정도의 시간이 비었다. 그래서 우리는 떠나기로 했다. 이 시간이 아니면 떠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에. 이탈리아로! 그 동안 지쳤던 마음을 회복하고, 새로운 삶을 맞이할 작정이었다.


정말, 우리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의 새로운 삶을 맞이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탈리아 여행지에서의 마지막 밤, 고열에 시달렸고 몸살기도 있었다. 아마도 퇴사 직후 떠난 여행이었기에,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날이었기에, 그 간의 피로와 긴장으로 인한 몸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파본 적도 퍽 오랜만이었다. 상비약으로 가져간 해열제와 몸살약을 먹고 로마의 한 호텔 방 안에서 끙끙 앓으며 누워 있는데, 구급차의 애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내가 저 구급차를 타고 로마 응급실을 체험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든 밤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다행히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무사히 탈 수 있었다. 그런데 문득 기내식에 곁들여 제공되는 와인을 사양하고 싶어졌다. 약 10시간의 비행 중 나는 여전히 미열이 있었고, 더불어 '임신'이라는 두 글자가 내 머리를 멤돌고 있었다.


이탈리아 여행 2일차, 나는 바티칸을 방문했었다. 바티칸이라는 공간이 주는 미학, 그리고 그 속에서 보았던 수많은 작품들이 나를 흥분하게 했었다. 그러나 아직도 바티칸이라는 공간을 떠올리면, 그 어느 작품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하얀 새. 바티칸 외부에서 잠시 휴식 중이었던 나는 한 마리 하얀 새를 만났다. 갈매기였을 것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다. 그렇게 가까이에서 새를 본 일도 드물었고, 더구나 내 기억엔 그렇게 하얗고 깨끗한 새를 본 적도 드물었다. 내가 새를 좋아하지도 않아서인지 한국에선 그렇게 가까이서 새를 볼 만한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날 내가 만난 새는 서슴없이 사람 곁으로 다가왔다. 특히 내게.-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리고 내 눈엔 그 새가 참으로 예뻤다. 뽀얗고 선한 느낌.

새와 함께 나는 셀카를 찍었다. 내가 찍은 사진에 새가 나온 것이 아니라, 이건 마치 새가 나와 함께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지극히 순수한 대상 혹은 영적인 대상이랄까. 그런 존재와 함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곳이 바티칸이었기 때문에 더 그런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임신을 확인한 후 바로 떠오른 것이 바티칸의 하얀 새였다. 나에게 하얀 새가 새 생명의 씨앗을 물어다준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때때로 지인들과 태몽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생기면, 바티칸의 새 이야기를 마치 태몽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어렵게 가졌던 아이는 무탈하게 태어나 무럭무럭 자라고 있고, 두돌이 지났다. 그럼에도 난 아직도 바티칸의 하얀 새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아직도 믿는다. 그 뽀얗고 선한 느낌의 새가 나에게 뽀얗고 선한 아이를 데려다 준 것이라고. 그리고 다짐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아이를 잘 키워보겠노라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