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아래 링크된 글의 후속이므로, 앞선 글을 먼저 읽으신 후 본글을 읽으시면 이해하시기 좋습니다.
이미 가계약금을 주고받았는데 계약 진행이 불분명한 상태라면, 우선 지금 내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야 협상을 하든, 소송을 하든 결정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앞선 글에서 설명드린 바에 기초하여, 아래와 같은 순서로 판단해 보시면 좋습니다.
1) 가계약금 귀속에 관한 별도의 약정이 있는가
별도 약정이 가장 중요하고 먼저 고려되는 사항입니다. 계약이 되었건 안 되었건 이 부분부터 체크해야 합니다.
현재 부동산계약 대부분이 중개인의 개입 하에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중개인으로서는 굳이 '계약이 깨지면 어떻게 하자'는 언급 자체를 하지 않으려 하므로 계약서에는 이에 관한 특약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만 가계약금 분쟁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는 분들은 이후에 체결하는 계약에서는 가계약금 반환에 관한 특약을 넣는 경우가 많습니다.
2)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볼 수 있는가
계약 체결 여부를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아래 별도의 항에 설명을 하겠고, 주의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계약체결 여부의 판단은 특정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니며 법원이 사안별로 여러 사실관계를 고려해 판단합니다. 법리와 판례도 많이 쌓여 있지만, 단순히 선례로만 예측하기에는 재판부의 판단 여지가 큽니다. 쉽게 말해 판사마다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그래서 숙련된 변호사라도 함부로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따라서 세 사람 이상 변호사들의 의견을 들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냥 "가계약금 돌려받을 수 있나요?"가 아니고, "이 사안이 법원에 가면 계약이 체결되었다고 인정될까요?"라고 구체적으로 물어보셔야 합니다.
만약에 변호사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낸다면 일단은 심각하게 생각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검색창에 '가계약금'만 칠 문제가 아니라 본계약을 파기하는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3) 해약금과 위약금에 관한 약정이 있는가
계약 체결 여부는 법원의 판단이 있기 전에는 누구도 단언하기 어렵기 때문에, 혹시 계약이 체결되었다고 판단될 경우를 생각해 두어야 합니다.
계약이 체결된 경우 몰취 또는 배액상환하는 계약금(혹은 순수한 손해배상)의 액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해약금과 위약금 조항입니다.
따라서 내 계약서에 해약금과 위약금 조항이 있는지, 또 뭐라고 되어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변호사에게 상담한다면 구체적으로 물어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제 계약서에 해약금과 위약금 조항은 어떻게 되어 있나요? 소송에서 이 조항들이 어떻게 반영될까요?"하고 말입니다.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괜히 싸움을 키워 소송하는 것보다 원만하게 해결하고 빨리 분쟁을 끝내는 것이 도움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0) 가계약금 걸지 마세요.
저희 의뢰인들께는 가계약금 같은 거 주고받지 마시라고 조언드립니다. 가계약금 관행은 대부분 중개인 좋자고 하는 일이지, 당사자들은 괜히 고생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 가계약금 귀속에 관한 별도 약정을 둔다.
그래도 꼭 가계약금을 걸어야겠다면, 이에 관한 약정(대개 특약으로 추가됩니다)을 미리 두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설명을 위해 만들어 본 예시입니다. 우선 계약체결 전 단계의 증거금이라는 성격을 명시합니다. 그리고 본계약 체결 시한을 특정하고, 문서로 체결되야 한다는 기준을 명시해야 추후 본계약 체결 여부에 관한 분쟁의 소지를 줄일 수 있습니다.
"○년 ○월 ○일 지급된 가계약금 2천만 원은 계약 체결 전 단계의 증거금으로서, △년 △월 △일까지 매매계약 본계약을 문서에 상호 기명날인하는 방식으로 체결하지 않는 경우에는 수령인은 지급인에게 그 전액을 반환한다. "
그런데 현실에서 위와 같은 조항을 넣는 경우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선 중개인은 대부분 싫어하지요. 계약 체결을 못박아야 중개료를 받을 수 있는데, 저렇게 약정하면 가계약금의 구속력이 적어져 당사자들이 쉽게 "계약 그만!"을 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매도인도 싫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매도인측에서 “가계약금은 절대 반환 불가”라는 식으로 미리 못박아두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아마 매도인 입장에서는 불리할 게 없다고 판단해서인듯 한데, 소송에서 보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2) 계약 성립 여부를 판단할 근거를 남겨 둔다.
중개인 입장에서는 계약이 꼭 성사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계약금 입금으로 끝이 아니고, 그 전후로 당사자들에게 여러 번 연락해 계약의 세부사항을 물어보고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식으로 중개인을 통해 주고받은 내용들은 소송에서 계약체결을 인정하는 근거사실로 주장되고, 법원도 이를 고려합니다. 그러니 당사자 입장에서는 상대방과 만나 문서에 도장찍기 전에는 함부로 중개인의 질문에 대답해 버리면 안 됩니다.
문제는 사람 상대하는 기술에서 부동산 중개인은 단연 '프로'라는 것이지요. 일반인은 아무리 준비하고 머리를 써도 상대가 안 됩니다. 그러니 이기려는 생각은 깔끔히 접어 두시고, 딱 한 가지만 노립시다. '방어'만 하는 겁니다. 무슨 말이 오던 간에 무조건 아래와 같은 대답만 하시기 바랍니다.
“생각해 보고 계약일날 말씀드릴게요. 아직 가계약금만 건너갔잖아요.”
요컨대 당사자로서는 최대한 가계약금의 구속력을 줄이고 본계약과 분리시키라는 취지입니다.
* '나는 위험할 게 없는데?'라는 생각
간혹 이런 질문을 듣습니다. "저는 가계약금으로 상대방을 최대한 구속하고 싶습니다. 본계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크게 손해보게 말입니다. 그럼 어떡해야 하나요?"
"누구나 계획이 있다, 한 대 맞기 전까지는."이라는 말이 있지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상대방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합니다. 가계약금을 주고받는 것이 나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합니다. 계약을 물리고 중단하는 일은 바보같은 사람들이나 할 일이지 나는 판단을 뒤집을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판단의 문제입니다. 가계약금은 불안한 마음에("이 물건 얼른 잡으세요. 내일이면 없습니다") 급하게 건네는 돈입니다. 그런 불안한 상태에서 수천, 수억의 돈을 '물어내겠다'고 걸어둘 것인지의 판단 말입니다.
변호사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주 극단적인 예 두 가지를 들어 봅시다. 하나는, 중개인한테 "어느 단지 30평대 나오면 연락주세요"했더니 20억짜리가 나왔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내일 보러 가겠다고 하니 그 때까지 남아있을 물건이 아니라며 가계약금이라도 2천만 원 입금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입금했다면 어떨까요? 중도금이나 잔금 일정 등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았기에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인정되기는 쉽지 않겠지요.
그 반대쪽 극단을 보면, 집을 직접 둘러보고 마음에 들어서 당사자들이 만나 중개사 사무실에서 계약서에 도장까지 다 찍었습니다. 다만 하루만에 큰 돈을 마련하기 어려우니 오늘은 일단 2천만 원만 입금하고, 2일 뒤에 나머지 계약금 입금하기로 했습니다. 이 경우는 위 사례와는 확실히 다르지요. 매매계약의 내용에 모두 합의한 채 다만 돈만 입금을 늦게 하는 것이니까요.
실제 분쟁의 사례는 위 두 가지 사이의 어딘가에 있습니다. 계약체결 법리와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계약의 '본질적 사항', ‘중요사항’에 대한 합의나 합의기준이 있어야 계약이 체결되었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매매목적물, 매매대금의 액수 및 지급의 상세, 계약 상대방(예외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누구라고 특정할 정도는 알아야 된다고 봅니다), 담보물권(근저당 등)·제한물권이나 임대차 등의 승계 문제 등도 중요한 고려사항이 됩니다.
또한 내용과 별도로 합의의 의사표시를 인정할 수 있는지도 주요 쟁점이 됩니다. 어떤 조건에 동의한다는 말을 하긴 했는지, 서류에 도장은 찍었는지, 그런 말을 누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했는지 등도 고려하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이러한 판단을 공식처럼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아직 계약서를 문서로 안 쓴 상태에서 중개인에게 문자로만 중요내용을 주고받은 경우 계약체결이 인정 될까요? 하급심 판례는 양쪽 다 있습니다. 위 한 가지 요소로 계약체결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계약체결 여부 판단은 굉장히 어렵고 신중을 기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말 그대로 'case by case'라서, 변호사들도 판결선고 직전까지 '1%라도 더 보태보자'는 마음으로 노력하는 부분이지요.
결국 판례에 자주 등장하는 여러 대표적 요소를 중심으로, 그 밖에 아주 사소해 보이는 여러 가지 사실관계를 고려해서 법원이 판단하게 됩니다.
제가 여러 사건을 하면서 가계약금 관행이 참 나쁘구나 하고 느낀 이유는, 일부 나쁜 중개인들이 이를 악용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선량한 중개사분들께는 미리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저희 의뢰인들 중에 중개사분들 많습니다. 나쁜 변호사도 많듯이, 일부 나쁜 중개인들을 언급하는 겁니다.
중개인은 매수인과 매도인이 서로 잘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든 가계약금을 걸게 합니다. 그런 다음에 당사자들이 만나서 막상 협상을 하다 보면 당초 생각한 것과 다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나 안 할래'하면, 중개인이 '가계약금이 일단 갔으면 무조건 본계약금 기준으로 물어내야 한다'는 식으로 부풀려서 겁을 줍니다. 그래서 도장 찍게 만드는 것이지요.
실제 제가 접하는 소송자료들을 보면, 당사자들에게는 가볍게 '일단 가계약금만 걸어 놓으세요'라고 해 놓고 영수증이나 확인문자에 “계약금의 일부로 수령함”이라고 명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당사자들은 사실 그런 문구가 있는지도 잘 모르지요. 위 문구는 본계약 체결을 전제로 상호 약정한 본계약금의 일부로 수령했다고 해석되기 쉽기에 사안에 따라 계약체결의 근거로 인정될 수도 있는 요소입니다.
실상은 중개인들이 먼저 당사자들에게 가계약금 수수를 적극 권장하면서도, 막상 문서에 남는 자료에는 되도록 '가계약금'이라는 용어 자체를 남기지 않고 계약 체결의 외관을 만들어놓는 것이지요.
가계약금이 무서운 이유는 내가 의도하지 않은 계약을 체결해 버릴 위험이 있다는 겁니다. 급한 마음에 가계약금 걸어놓고 중개인한테 끌려다니다 보면, 정신차리고 난 뒤에 내 손에 엄청 무서운 내용의 계약서가 들려 있습니다.
요즘은 마치 가계약금을 거는 것이 계약의 당연한 단계처럼 여겨지나, 그러한 관행이 보편화된 것이 불과 최근 몇 년의 일입니다. 중요한 계약일수록 협상의 주도권은 당사자가 쥐고 있어야 합니다. 가계약금 수수 없이도 충분히 매매계약이 가능하니, 신중을 기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 본 내용을 기초로 제작한 유튜브 영상을 링크합니다. 이해에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