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약금 반환에 관한 문의가 많습니다. 현재 저희 사무실에도 관련 소송 및 자문 사건들이 진행 중이지요. 최근 하급심 판례도 조금씩 축적되고 있어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인터넷에 잘못된 법률정보가 돌아다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특히 이 가계약 관련해서는 눈 뜨고 못 볼 지경입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우선 민법이나 판례에서 '가계약은 이렇다'는 법리 자체가 부족합니다. 실무상으로도 평범한 부동산계약에서 가계약금 수수가 보편화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최근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매매나 임대차계약에서 물건도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채 급하게 계약하는 일이 많아지다보니 가계약 분쟁이 폭증하는 반면, 판례나 법리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약금', '위약금' 이런 개념들은 민법에 조항도 있고 수십년 간 축적된 대법원 판례가 많습니다. 하지만 가계약금은 없지요. 참고할만한 법리나 판례는 없는데 답은 내놓아야 하니까 다들 '이렇다!'고 한 마디씩 하는 상황입니다.
현재 실무상 가장 중요한 근거인 대법원 판례가 없습니다. 따라서 변호사, 중개사, 대학교수 그 누구도 단정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통용되는 법리가 있는 양 설명하는 사람이 많고, 이러한 '개인 의견'이 여기저기 퍼지는 과정에서 오류가 더해지는 것이 현재 가계약에 관한 정보들의 실상입니다.
가계약금에 관한 제대로 된 설명을 듣기 어려운 또다른 이유는, 소송에서 가계약금 문제를 풀어가는 법리가 '가계약금이니까 이렇다'는 식으로 단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원이 가계약금 사건을 볼 때는, 계약체결, 법률행위 해석, 해약금, 위약금, 손해배상 예정의 감액 이런 여러 민법 법리를 적용합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변호사가 가계약 사건을 설명할 때는 이걸 다 말해줘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당장 "가계약금 어떡하지?"하고 발등에 불 떨어져 달려온 의뢰인이 그런 민법강의를 다 듣고 있을 여유는 없습니다. '돌려받을 수 있나 없나 결론만 말해달라니까 왜 딴소리만 하나?'라고 생각하겠지요. 의뢰인을 놓칠 각오를 하고 법리와 판례부터 길게 설명할 배짱있는 변호사가 많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실무가로서 현재 시점에서 정리할 수 있는 것은 하급심 판결례들의 추세입니다. 하급심이라는 것은 대법원이 아닌 1, 2심 법원을 말합니다.
원래 법리를 논하면서 그냥 ‘판례’라고만 하면 당연히 대법원 판례를 말하는 것이고, 하급심 판례를 꺼낼 때는 반드시 ‘하급심’임을 밝혀야 합니다. 하급심 판결례는 말 그대로 참고일 뿐, 100개가 쌓였어도 쟁점을 정리한 대법원 판례 1개 나오는 순간 아무 의미 없게 됩니다.
다만, 현재 가계약금을 정면으로 다룬 대법원 판례가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하급심 판결례를 참고하는 게 최선입니다. 판사들도 내부적으로는 다른 하급심 판결례를 많이 참고합니다.
그래서 일단은 제가 정리해 드리는 하급심 판결례를 참고하시고, 정말 소송에 가는 상황이 됐다면 혹시 그 사이에 대법원 판례가 나왔는지 꼭 확인하셔야 합니다. 현재 시점에서 그 어떤 권위와 유명세에 기반한 의견들도 대법원 판례 하나로 다 날아갈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법원은 가계약금 사건에서 무엇을 가장 먼저 볼까요? 가계약금이 얼마냐가 아니라 '계약이 체결된 것인지, 아닌지'를 먼저 봅니다. 법리상 가장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가계약금에 관한 하급심 판결례들을 보면 대부분 논리상 두 단계의 순서를 밟습니다. 먼저 계약성립 여부를 따져서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해 놓고, '그렇다면 결국 가계약금 문제만 남은 건데, 그건 이렇다.' 라고 결론짓는 것이지요.
그래서 가계약사건은 항상 계약 성립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실제 소송에서도 변호사들이 첨예하게 다투는 지점이 이 부분입니다. 그 판단 기준에 대해서는 후속되는 글에서 따로 보고, 일단 계약체결이 안 된 경우에 어떻게 되는지 먼저 보겠습니다.
1) 별도 약정이 있다면
우선, 논의에 앞서 하나 짚고 넘어갑니다. 당사자간에 미리 가계약금 자체의 귀속에 대해 명백히 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계약금의 일부 1,000만원 입금되면 계약불이행시 매도인 배액상환, 매수인은 위약금으로 처리됩니다'라는 식입니다. 위 예는 하급심 판결례 사안의 일부인데, 위 문자 내용이 주요 근거가 되어 해당 사안에서는 가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당사자간에 가계약금을 어떻게 하겠다는 별도의 약정이 있다면 법원도 이를 우선적으로 고려합니다. 다만 실무상 위 사안처럼 미리 정해놓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의사소통이 '매도인-매도인 대리인-매도인측 공인중개사-매수인측 공인중개사-매수인 대리인-매수인' 식으로 여러 단계에 걸쳐 이루어지기 때문에 의사표시의 해석 자체도 쉽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하의 논의는 별도의 약정이 없는 경우를 전제하겠습니다.
2) 하급심 판결례의 추이
하급심 판결례를 보면, 가계약금 관련 판결들이 막 나오기 시작한 초기(불과 수년 전입니다)에는 두 가지 입장을 모두 찾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돈을 걸었다는 거는, 마음 변하면 돈은 포기하기로 한 거 아니냐. 그러니 돌려받을 수 없지'하는 판결도 있었고, '아니다. 아직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돈만 달랑 간 건데, 계약 안 되면 돌려줘야지'하는 판결도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들어 후자의 입장을 취하는 판결례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아래와 같은 판시를 여러 하급심 판결례에서 거의 그대로 따라 씁니다.
매매계약의 체결에 앞서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교부하는 가계약금은 기본적으로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매매목적물에 관한 매매계약을 체결할 의사가 있음을 밝히면서 장차 계속될 매매계약 교섭의 기초로 지급한 일종의 증거금으로서, 매수인과 매도인 사이에 본계약이 체결될 경우 그 매매대금 중 계약금 일부의 지급에 갈음하되, 본계약이 성립되지 않을 경우에는 매수인에게 반환될 것이 전제된 돈으로 보아야 한다(울산지방법원 2020. 9. 10. 선고 2019나13407 판결).
그래서 현재로서는, 계약이 성립되었다고 볼 만한 사실관계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가계약금만 달랑 건너간 경우라면 소송으로 갔을 때 가계약금 돌려주라는 결론이 나올 확률이 조금 더 높다고 하겠습니다.
3) 해약금 또는 위약금 주장에 대해
우선 '해약금', '위약금'이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들어는 봤지만 정확히는 모르시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공인중개사분들도 양자를 정확히 구별해 쓰시는 분이 많지 않습니다. 아래 링크된 글을 읽고 오시면 이하의 논의를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됩니다.
https://blog.naver.com/mujinlaw/220840276288
소송에서 가계약금을 돌려주고 싶지 않은 쪽에서는 대부분 해약금 및 위약금 주장을 합니다.
우선 민법 565조 제1항에 계약금을 해약금으로 추정하는 조항이 있으므로, 가계약금도 위 조항에 근거해 몰취 또는 배액상환하게 해 달라는 주장을 하지요.
하지만 현재 하급심 판결례들은 위 조항은 계약 성립이 전제된 계약금에 관한 것이지 '가계약금'에 관한 것이 아니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럼 위약금 주장은 어떨까요? 당사자간 위약금으로 정하는 약정이 따로 없는 한 민법에도 계약금을 위약금으로 추정하는 조항이 없습니다. 그런데 감히 '가계약금 주제에' 근거 없이 위약금으로 해석해달라는 주장은 받아들여지기 어렵지요.
4) 소결
정리하자면, ① 가계약금 귀속에 관한 별도의 약정이 없고 계약이 성립되지 않았다면 가계약금은 반환해야 하며, ② 해약금으로 몰취·배액상환하거나 위약금으로 배상해야 한다는 주장은 미리 약정한 바가 없으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최근에 많이 보이는 하급심 판결례들의 경향입니다.
5) 주의 : 잘못된 상식 조심하세요
세간에, '가계약금을 주고받았는데 계약 체결이 안 되면, 가계약금 말고 본계약의 계약금 기준으로 물어내야 한다'는 말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파트 20억짜리 계약금 2억인데, 매수인이 가계약금 2천만 넘긴 상태에서 어느 한 쪽이 변심하면, 2억을 기준으로 몰취하든 배액상환하든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주장은 대개 대법원 2015. 4. 23. 선고 2014다231317 판결을 근거로 들고 있는데, 사실 위 판례는 해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자세히 들어가는 것은 법률가들의 영역이므로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위 판례는 기본적으로 계약이 체결되었을 때 사안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계약성립이 안 되고 가계약금의 반환 여부만 문제되는 경우에는 저 판례가 근거가 되기 어렵습니다.
물론 실제 소송에서는 계약 성립 자체를 서로 다투기 때문에, 즉 판결 선고 전까지는 성립 여부를 전제할 수 없기 때문에 변호사들도 위 판례를 각자 주장의 근거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소송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설명에서(주로 인터넷상의 정보들) 계약성립을 전제한다는 부연설명도 없이 무조건 '가계약금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하급심 판결례에서도 계약성립 안 됐는데 왜 그 판례를 들이대냐며 핀잔주는 판시를 찾을 수 있습니다(의정부지방법원 2016. 6. 15. 선고 2016가단1434 판결).
따라서 위 판례를 근거로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은 신중해야 할 일입니다.
1) 주소를 명확히 합시다.
(계약체결이 인정되면 원칙적으로 이행청구가 당연히 가능합니다. 다만, 가계약금만 넘어간 상태에서 분쟁이 생기면 대개 계약을 진행하기보다는 돈을 갖고 다툽니다. 그래서 이행청구 부분은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대개 가계약금 분쟁에 대한 논의들은 제가 앞서서 언급한 '계약성립이 인정되지 않은 경우'만 설명하고 끝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게 잘못된 것이 아니고,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계약성립이 인정되는 순간, 사건은 이미 '가계약'의 범주를 넘어선 것입니다. 완전히 성립된 계약에서 계약금 중 일부만 지급되면 어떻게 되나하는 문제가 쟁점이 되는 것이지요.
또한 현재 하급심 판례만 보면, 당사자들이 명시적으로 ‘가계약금’이라고 부르면서 돈을 주고받은 경우에 계약이 성립됐다고 본 사례가 아직 많지 않습니다.
당사자들이 법은 몰라도 바보는 아닙니다. 대개 '가계약금'이라고 불렀다면 각자 생각해둔 것이 있겠지요. 진짜 계약금이 아닌 불확실한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그 인식에 맞는 행동들을 합니다. 예를 들어 "잔금은 나중에 만나서 얘기합시다"는 식이지요. 법원은 계약 성립 여부 판단시 이런 사실관계들을 감안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얘기를 왜 하는거냐? 가계약의 범주를 넘어서고 실제 그런 사례도 많지 않다면서, 왜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것이냐?
우리가 교과서가 아닌 현실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송에서 미리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당사자 한 쪽은 계약이 체결되었다고 주장하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야 받을 돈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가계약금 소송에서 양측 변호사들이 가장 치열하게 싸우는 부분도 대개 이 지점입니다.
그래서 아직 판례상 많지는 않지만, '나는 그냥 가계약금이라고 우습게 봤는데 계약체결이 인정돼 버리면 어떻게 되는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가계약금과 관련해서 많이들 언급하는 2015년 대법원 판례도 판결문에는 가계약금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습니다. '가계약금'이라는 용어를 썼느냐는 여러 사실관계 중 하나로 고려대상일 뿐, 중요한 것은 용어가 아니라 계약의 실체입니다.
그래서 주소를 정확히 아셔야 합니다. 지금부터의 논의는 계약이 성립되었을 때, 계약금의 일부만 지급된 경우 어떻게 되는가의 문제입니다.
2) 해약금
아주 기초적인 법리로, 일단 체결된 계약이 해제되면 민법상 원상회복이라고 해서 받은 만큼만 그대로 돌려주게 됩니다. 실제 하급심판결에서도 이렇게 결론난 사례가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건에서는 그렇게 싱겁게 안 끝나고 해약금이나 위약금 주장을 합니다. 뭔가 물어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선 해약금 주장을 봅시다. 예를 들어 계약금 2억 원 중 2천만 원만 수수되었다고 합시다.
그럼 소송에서 당사자들은 해약금 약정을 한다면서 이런 주장을 합니다. 매수인이라면 "해약금 해제 하겠습니다. 2천 갔으니까 그것만 포기하면 되죠?" 라고 하고, 매도인이라면 "2천 받았으니까, 그 배액 4천만 상환하면 되지요? 그럼 끝이죠?" 이러는 겁니다.
이게 안 된다는 것이 기본적인 대법원 판례 입장입니다. 요물계약인 계약금계약에서 전체 계약금의 일부만 주고받은 상태에서는 해제 자체가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위 법리를 재확인한 대법원 2015. 4. 23. 선고 2014다231317 판결에서 뒷 부분에 '해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라는 가정적 판시를 덧붙이는 바람에 위 판례에 대한 세간의 설명 중에 오해의 소지가 많습니다.
일반론으로서는 계약이 성립된 경우, 가계약금만을 기준으로 한 몰취나 배액상환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 까지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다만 실제 소송에서 위 2015년 4. 23. 선고 2014다231317 판결을 기초로 어떠한 주장을 한다면 담당변호사에게 위 판결의 함의에 대한 전문적 설명을 들으시라고 조언드리고 싶습니다.
3) 위약금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장 위험해질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바로 여기입니다.
위약금은 손해배상을 미리 예정한 경우가 많습니다. 위약금 판단은 수수된 계약금이 전부냐 일부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순수하게 위약금규정이 있는지, 또 뭐라고 되어 있는지만 봅니다.
하급심 판결례를 하나 보지요. 이 사안은 당사자들이 '가계약금'이라고 부른 것은 아니고 계약금의 일부로서 건너간 경우입니다.
계약금을 2억 원으로 정한 계약에서 계약금의 일부인 4천만원이 건너간 상태였고, 매도인의 귀책사유로 매수인이 계약을 해제했습니다. 법원은 계약체결이 인정되고 위약금 조항에 그냥 ‘계약금’이라고만 되어 있으니 매도인은 실제로 받은 돈 4천만 원에 약정한 2억 원을 더해 총 2억 4천만 원을 매수인에게 지급하라고 판시했습니다(서울동부지방법원 2019. 9. 4. 선고 2018가합110415 판결).
결국 위약금 주장은 당사자간에 위약금 약정을 어떻게 했는지에 따라 판단됩니다. 만약 위약금 규정이 없다면 계약이 해제되었다는 것만으로 바로 특정 금원을 받을 수는 없고, 실제 입은 손해를 주장하고 입증해야 받을 수 있습니다.
* 글이 길어져서 가계약금 수수에 관한 주의점 및 계약체결 여부 판단 법리는 다음 글에 연속해 올리겠습니다.
* 본 내용을 기초로 제작한 유튜브 영상을 링크합니다. 이해에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