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법률사무소 무진 Oct 06. 2021

몰취? 배액상환? 손해배상? : 계약금의 성격


계약금이 오간 상태에서 문제가 생겨 상담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워낙 높다보니 계약금만 해도 상당한 금액이라 소송으로 다투는 경우도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법적 지식이 없더라도 살면서 계약금 주고받아본 경험은 다들 있는지라, 이사람 저사람 한마디씩 하는데 잘못된 상식이 많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앞서 가계약금 반환 분쟁에 관한 글을 올린 적이 있지요. 계약 체결(성립) 여부가 결론을 가르는 주요 관건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현실의 소송에서는 계약성립 그 자체가 법원의 판단 대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당사자들이 이를 두고 다투므로), 당사자로서는 계약성립이 인정되면 나에게 어떤 위험이 닥치는지 미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가계약금이건 계약금이건 어떤 돈이 '걸려 있는' 상태라면, 그게 법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지 알아 두어야 분쟁에 대비할 수 있겠지요. 변호사가 알아서 하겠지 하지 마시고, 당사자도 최대한 공부하고 이해해야 내 소송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1. "해약금"과 "위약금"의 차이 알기


계약서에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 용어지만 법적으로는 중요하고 기초적인 개념입니다. 


  (1) 해약금(解約金)


교과서에 "해제권을 보류하는 작용을 가지는 계약금"으로 정의됩니다. 홈쇼핑 물건 반품사유로 치자면 '단순변심'이라고 이해하면 쉽습니다. 물건에 하자가 있다거나 상대방이 잘못을 한다거나 하는 이유 필요 없이, '생각해보니 하기 싫다. 없던 일로 하자"라고 하면 계약을 물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래 민법의 대원칙상 계약은 함부로 깰 수 없습니다. 당사자 일방이 계약에 정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채무불이행) 일정한 법적 요건을 충족하면, 그때야 비로소 상대방에게 '법정해제권'이 인정되어 계약을 깰 수 있는 선택권이 생기지요. 


그러나 당사자간에 미리 "이러이러한 조건이라면 각자 해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자"고 약정하는 것은 사적자치 원칙상 얼마든지 가능하고, 이것이 바로 '약정해제권'입니다. 살다보면 마음이 바뀔 때도 있으니, 계약을 물릴 기회는 어느정도 남겨놓자는 것이지요. 

 

  (2) 위약금(違約金)


"違約", 말 그대로 '계약을 위반한 경우'에 문제되는 것입니다. 일방의 계약위반(채무불이행)으로 상대방에 손해가 생겼으니 돈을 몰취(혹은 배액상환)한다는 것이지요('몰취'의 성격이 손해배상의 예정인지 위약벌인지 구별할 필요가 있지만 설명 편의상 손해배상의 예정으로 전제하겠습니다. 정확한 법리는 후술합니다)


계약 위반을 조건으로 한다는 점에서 위 "해약금"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2. 내가 낸 계약금은 "해약금"인가, "위약금"인가?


우선 이해해야 할 것은 위 두 성격은 병존할 수 있고, 실제로 병존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양자택일이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아래 두 가지 중 어떤 근거로 계약금의 몰취나 배액상환이 주장되는 것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 해약금 조항

 

우선 부동산 매매나 임대차 등 표준계약서를 보시면 대개 다음 조항이 있습니다.

제○조 (계약의 해제)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중도금(중도금이 없을 때에는 잔금)을 지급하기 전까지 매도인은 계약금의 배액을 상환하고 매수인은 계약금을 포기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이것이 해약금 규정입니다. '중도금 지급 전'이라는 조건만 충족시키면, 누구의 잘못이 없어도, 별다른 사유를 대지 않아도 계약금 포기 내지 배액상환을 대가로 계약을 물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내 계약서에는 위 조항이 없다면? "해약금이 아니다"라는 명시적 합의나 기재가 없는 한, 별도 규정이 없어도 계약금을 교부한 것 자체로 해약금으로 추정됩니다(민법 제567조 제1항1). 즉, 위 규정이 없어도 있는 경우와 동일하게 취급됩니다.


달리 말하자면, 만약 계약금 몰취나 배액상환의 위험 없이 중도금 상환 전까지는 언제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면, 단순히 위 규정을 기재하지 않는 것만으로 족한 것이 아니라, "중도금 지급 전 양 당사자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이 경우 매도인은 매수인이 교부한 계약금을 반환하며, 배액상환의 의무는 없다." 고 반드시 명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위약금 조항


다음과 같은 내용의 조항은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조 (채무불이행과 손해배상) 매수인의 채무불이행으로 계약이 해제되면 매도인은 손해배상으로 계약금을 몰취하며, 매도인의 채무불이행으로 계약이 해제되면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계약금의 배액을 손해배상으로 지급한다.

혹은,

제○조 (채무불이행과 손해배상) 당사자 일방이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상대방은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그 이행을 최고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손해배상에 대한 별도 약정이 없는 경우 계약금을 손해배상의 기준으로 본다.


위약금 조항입니다. 법리상 위약금에 해제가 꼭 전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계약서에  '채무불이행 + 그로 인한 계약 해제'가 조건으로 되어 있습니다. 계약서에 위 조항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무슨 차이가 날까요?


예를 들어 10억 짜리 아파트 매매계약에서, 1억의 계약금이 교부되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매수인이 중도금 날짜를 못 맞췄습니다. 마침 매도인은 더 비싼 값에 산다는 다른 사람이 나타난지라, 일주일 기간을 준 후 역시 매수인이 중도금을 못 내자 내용증명으로 계약을 해제하면서 "매수인의 채무불이행으로 계약이 해제되었으니 계약금 1억 원은 몰취합니다"라고 통지하였습니다. 이 경우 매수인은 꼼짝없이 계약금을 날리게 될까요?


우선 계약서에 위와 같은 위약금 조항이 있는 경우, 일응 매도인의 주장이 맞습니다. 당사자간에 계약금을 손해배상액으로 하자는 사전 합의('손해배상의 예정')가 있었으므로, 약속한대로 계약금을 배상하는 구조이지요. 


다만, 법리상 손해배상의 예정은 법원 판단에 따라 감액할 수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일부라도 계약금을 돌려받으려면 매수인도 소송을 해야 한다고 안내하는 곳도 있던데, 실제로 자신이 그러한 경우에 해당하는지는 신중히 판단해야 합니다. 법원이 무조건 깎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 계약서에 위약금조항이 없다면? 매도인은 자신에게 실제로 발생한 손해를 주장입증하여 실제의 손해액을 배상받을 수 있을 뿐, 무조건 계약금을 몰취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위 사례에서 매수인은 매도인에게 "당신이 실제 발생한 손해를 증빙하여 배상액을 청구하되, 내 계약금은 당장 돌려주시오"라고 요구할 수 있지요. 이 부분을 잘못 알고 계신 분들이 꽤 많습니다(무조건 몰취되는 것으로). 물론 현실에서는 매도인이 자신이 입은 손해와 상계를 주장하며 당장 반환하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그렇다면 매도인 입장에서는 위약금조항이 있는 것이 무조건 유리할까요?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계약서에 따라 위약금 조항이 있기도, 없기도 하는 이유입니다. 당사자간 손해배상을 예정한 경우, 초과손해가 있더라도 별도로 배상받을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고한 판례입니다. 


따라서, 매도인으로서 손해가 계약금을 초과하는 경우까지 다 배상받을 수 있도록 대비하고 싶다면, 위약금 조항 뒤에 "실제 손해가 위 예정액을 초과하는 경우 이를 별도로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해야 합니다. 


이처럼 위약금 조항 유무 및 내용에 따라 배상액에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당사자가 진지하게 고민해서 결정할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별 고민 없이 도장찍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평범한 부동산거래 상당수가 중개인이 제공하는 양식에 당사자가 이름, 주소 정도만 쓰는 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지요.



3. 왜 구별해야 하는가?


이걸 설명하려면 민법교과서를 통째로 긁어 복사해야 합니다. 해약금의 경우 계약금의 일부만 지급된 경우 어떤 차이가 생기는지, 상대방의 해약을 막기 위해 중도금일자보다 먼저 중도금을 입금해버리면 어떻게 되는지, 일방이 해약금 수령을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지 등 여러 쟁점이 생깁니다.


위약금이 실제 소송에서 큰 의미를 갖는 이유는 바로 법원의 감액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약 파기 분쟁의 경우 변호사들은 일단 계약이 깨진 것은 '상대방 때문이다'를 주장하되, 예비적으로 손해를 배상할 경우를 대비하여 '위약금이 실제 손해보다 너무 크니 좀 깎아달라'는 주장을 같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후자가 소송의 주요 목적인 경우들도 있지요. 


법률가 아닌 일반인이 이 개념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 일'이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생겨 여기저기 물어봐야 할 상황일텐데, 해약금 위약금 용어도 구별하지 못하는 사이비 전문가들이 워낙에 많습니다. 


또한 제대로 된 법률상담을 한다고 쳐도, 해약금과 위약금이 무슨 근거로 생기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열심히 들어봤자 나중에 잘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변호사라도 당장 '제 계약금 어떡해요?'하고 달려온 의뢰인을 앞에 두고 민법책을 꺼내 강의부터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4. 기타 주의해야 할 부분


위약금 조항에 "손해배상으로"라는 표현이 없이 그냥 "지급한다"로만 되어 있는 경우, 법리적으로 '손해배상의 예정'과 '위약벌' 두 가지 성격 중 무엇인지 가려내야 합니다. 손해배상의 예정은 손해배상을 미리 정한다는 것이고, 반면 위약벌은 손해배상과 별도로 벌칙의 성격으로 주는 돈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위약벌로 해석되면, 위약벌과 별도로 손해배상을 또 청구할 수 있습니다.

 

위약벌 조항은 배상의무자에게 매우 가혹한 경우가 많으므로, 판례는 위약벌 조항 인정에 엄격한 편입니다. 민법도 위약금 조항에 별도로 "위약벌"이라고 명시하지 않는 한, 손해배상의 예정으로 추정합니다(민법 제398조 제4항). 


위약벌 개념은 교과서에는 꽤 나오지만 현실의 평범한 부동산계약서에는 잘 없습니다. 하지만 간혹 드물게, 사람들이 이러한 용어나 개념을 잘 모른다는 것을 악용하여 특약에 슬쩍 끼워넣는 경우도 봅니다. 사실 변호사의 계약검토를 거치는 기업간 거래라면 '위약벌' 세 글자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큰 실례일 수 있는데 말입니다. 정말 '수퍼 갑'이 아니라면 요구하기 어려운 조항이니까요. 


따라서 비단 매매계약뿐만 아니라 어떠한 계약이라도 "위약벌"이라는 단어가 보인다면, 혹시라도 자신이 배상의무자가 될 경우를 대비하여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바꾸시거나 협의를 통하여 해당 조항을 삭제할지 여부를 반드시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위약벌은 법원을 통해서도 감액되지 않고 전체가 무효인지 여부만 엄격한 기준 하에 판단한다는 것이 판례의 기본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 본 내용을 기초로 제작한 유튜브 영상을 링크합니다. 이해에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표 독서 : 우리집 독서환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