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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률사무소 무진 Aug 27. 2021

변호사 사무실 문턱



1. 변호사실 문턱을 들어서며


의뢰인이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의뢰인을 맞습니다. 

무슨 일인지 물어봅니다. 


이야기 시작도 전에 소장 부본을 보여주시며 '선임하려고 왔다'는 분, '이런 것도 사건이 되나요?'라며 조심스레 물으시는 분, '유료상담만 한다니 조금 놀랐다. 나는 솔직히 무료상담을 하러 왔다'는 솔직 명쾌하신 분, '뭔지는 모르겠지만 큰일이다 싶어 왔습니다'는 분, 다양합니다.


다 좋습니다. 홀대하지 않습니다. 5분만 10분만 그 사정을 들어볼 때도 있습니다. 유료법률상담을 꺼리시면 법률구조공단을 알려드리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의뢰인께서 제 사무실을 찾아오시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의 시간을 보내었을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위를 불문하고 제 사무실을 나가실 때, 한 말씀만 더 드립니다. "잘하셨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전문가와 먼저 상의해보겠다고 생각한 점이 참 좋습니다. 무엇보다 변호사 사무실 문턱을 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이해합니다. 이렇게 찾아오신 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문제를 피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맞서는 것,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감정보다 합리적인 해결을 위해 힘쓰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문제의 절반은 해결된 셈입니다.



2. 변호사실 문턱을 넘어오신 후


어렵게 용기를 내어 변호사와 탁자를 앞에 두고 마주 섰습니다. 집 문 앞을 나서면서, 복도를 걸어오시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시면서 생각했던 말을 하십니다. 서류도 이것저것 꺼내어 보여주십니다. 억울하고 속상한 이유도 설명하십니다.


다만 정말 필요한 설명에는 좀 인색한 편이지요. 여러 말씀을 하시는데 가끔은 질문도 아니고 설명도 아니고, 뭔가 억울해서 참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고만 하십니다.


하나하나 다시 묻습니다. 정리해 나갑니다. 이 분쟁의 시작이 하필 왜 그 사실인지, 그게 왜 '잘못'이라고 생각하는지, 내 주장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있는지, 상대방은 지금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고 의뢰인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변호사는 답을 주기에 앞서 먼저 질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수없는 질문을 던진 후 변호사는 일인다역의 배우가 됩니다. 손해를 가한 사람, 손해를 본 사람, 엊그제 이 일을 처음 듣게 된 배우자, 민원을 '처리'해야 하지만 당사자간 이해득실은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공무원의 입장, 쌓여만 가는 미제사건을 떨궈가며 기소를 해야 하는 검사의 입장, 힘든 무죄판결문을 써야 할 1%의 사건에 해당하는지 판단해야 할 판사의 입장, 무엇보다 골치 아픈 사람들 불러 앉혀 수사해야 하는 경찰공무원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만약 이 일의 당사자들과는 전혀 무관한, 그냥 길을 가던 사람에게 짧게 이 일을 설명한다면 과연 그가 어떻게 대답할 지도 의뢰인에게 따로 물어봅니다. 이 질문은 간혹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양해를 구할 따름입니다. 이상의 과정은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 해 보면 1시간 이상 걸리고 힘을 쏙 빼놓습니다. 


변호사와 주고받는 이 같은 대화의 과정이 바로 문제 해결을 위한 첫걸음인 "본인 사건의 객관화 작업"입니다. 내 가족도 친구도 아닌 타인의 입장에 서서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의 실체와 원인이 무엇인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정면으로 바라보도록 변호사가 의뢰인의 눈과 몸을 돌려놓는 것입니다.


의뢰인이 당면한 복잡한 문제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의외로 그냥 단순한, '그런 사건'에 불과합니다. 의뢰인의 생각처럼 어려운 사건도, 희귀한 사건도 아닐 겁니다. 대부분 이미 누군가 한 번 해 본 사건일 테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게 바로 "판사"의 시각일 테니까요. 이 분쟁의 결론을 말할 사람 말입니다. 


첫걸음을 올바로 떼는 것이 중요합니다. 법과 원칙이 맨 처음 생긴 과정이 저와 대화하는 과정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작업은 변호사가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작업인 준비서면(혹은 의견서) 작성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글을 읽는 사람이 판검사가 아니라 초등학생이라고 생각하면서, 당사자 아닌 그 어느 '타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쓰는 것입니다. 쉽게 풀어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법리와 판례로 서면을 채우자면 순식간에 100장도 채울 수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그런 서면은 죽은 서면입니다. 살아있는 서면을 만드는 것은 의뢰인이 고통스럽게 꺼낸 사실관계입니다. 변호사는 의뢰인으로부터 사실을 꺼내고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감추는 사람이 아닙니다.


해결책이라는 것이 단번에 떠오를 리 없습니다. 쉽게 주워들은 해결책은 내 것이 되기 어렵습니다. 첫 상담에서 마주하는 생면부지의 변호사는 내 편이 아니라 남의 편입니다. 의뢰인은 스스로를 변호하며 자신의 입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말로 다 꺼내어 설명하고, 변호사는 타인의 입장에 서서 그걸 부숩니다. 이렇게 깨지고 나면 차츰 문제의 실마리가 떠오릅니다. 


눈 앞의 변호사를 '내 편'으로 만들지는 그 다음에 결정하면 됩니다. 경험과 지식을 갖춘 전문가 앞에 고민을 꺼내어 다른 시각으로 전천후 검증을 받는 것이 법률상담의 핵심입니다. 


의뢰인이 사건을 보는 눈을 떴다 싶으면 이제 비로소 변호사가 말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경험에 비추어 이런 일들은 어떻게 진행되어 갔다, 이러이러한 위험이 있다, 맡았던 유사 사건에서 이런 방법이 효과가 있었다는 등입니다. 의뢰인이 원하던 이런 '대답'들을 얼마나 빨리 쉽게 내놓느냐의 판단은 매번 참 어렵습니다. 



3. 변호사실 문턱을 밟고 나가면서


제 방을 나가시더라도 의뢰인이 겪는 문제 상황은 여전하며, 별반 나아진 것도, 크게 달라진 것도 없습니다.


의뢰인께서 새로 얻은 것은 변호사 명함 하나, 그리고 이 사건에 무심한 자들이 바라보는 관점. 그뿐입니다.


법률상담의 핵심은 '타자'가 되어 보는 것입니다. 저는 빠르고 간편한 카톡 답장으로는 타자의 입장을 알려드릴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의뢰인과 얼굴 맞대고 하는 상담을 고집하는 이유입니다. 의뢰인이 변호사실 문턱을 어렵게 넘어오신 딱 그 만큼, 저도 힘든 과정을 함께 합니다. 


헛된 희망은 보여드릴 수가 없습니다. 같이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해결하고자 하면 방법을 찾을 것이고, 피하고자 한다면 변명을 찾을 것입니다." 과연 지금 내가 하는 말은 변명일까요, 아니면 방법을 찾기 위한 수단일까요. 이 둘의 구분은 어렵지 않습니다. 스스로 찾고자 하느냐, 그냥 포기하고 마느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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