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절차에 대해 검색해 보면 도표 등으로 보기 쉽게 정리한 자료가 많습니다. 하지만 형사절차를 이렇게 단순히 평면적으로 '이거 다음에 이거다'라는 식으로만 알아두는 것은 실상 큰 도움이 안 됩니다. 실제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판단해야 하는지 고민될 때, 그런 도표가 별 쓸모가 없기 때문이지요.
어디가 왜 중요한 부분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튜브 영상과 아래 본문은 동일한 내용이니 선호하시는 방식으로 보면 됩니다.
저희 사무실에서 형사사건 법률상담을 시작할 때 자주 드리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사건을 배당받은 수사관이 고소장을 읽고 나서, 누구를 가장 먼저 부를까요?
① 고소인을 불러서, 왜 무슨 일로 고소한 것인지 물어본다
② 피의자를 불러서, 고소장에 적힌 내용이 맞는지, 인정하지는 물어본다.
③ 목격자를 참고인으로 불러서 객관적 증거를 먼저 확보한다.
정답은 1번입니다. 답을 듣고 나면 당연해 보이는데, 실제로 물어보면 틀리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사안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인 경우 고소인 조사를 가장 먼저 합니다. 그러면 고소인이 나와서 고소한 이유를 설명하고, 갖고있는 증거를 제출하거나 혹은 수사관에게 특정 증거를 확보해주도록 요청하기도 하지요.
그 다음에는 보통 참고인을 부릅니다. 사건의 목격자나 사안에 관련된 제3자를 불러서 사건의 경위를 파악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고소인과 참고인 조사를 마치고 나서, 거기서 얻은 정보들을 바탕으로 증거도 수집하고, 그렇게 ‘다~’ 준비한 다음에, 그때 비로소 피의자를 소환하는 겁니다.
의뢰인께 이 질문을 왜 하는 걸까요? 이 순서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많은 분들이 형사 절차의 시작점을 경찰에서 나오라는 전화를 받은 이 시점으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내 눈에는 그 앞에 것들이 안 보이니까요.
그래서 어떤 분들도 계시냐면, “뭐, 경찰이 나오라고 하니까, 일단 나가서 뭐라고 하는지 좀 들어보고, 그러고 나서 고소인을 만나든지 뭘 하든지 생각을 좀 해 보려고요.”라고 하시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큰일 날 소리입니다. 경찰은 이미 만발의 준비를 다 마치고 부르는 건데, 그냥 나가면 그냥 실컷 당하고 올 뿐입니다. 피의자를 소환하는 전화는 절대 그게 시작점이 아닙니다. 이미 사건이 상당히 진행된 뒤라고 생각하셔야 됩니다.
더 직접적으로 말씀드리면, 사실 형사절차에서 골든타임은 바로 피의자 조사받기 전입니다. 특히 성범죄사건이나 교통사고 같은 경우 경찰이 부르고 나서 대응하는 건 이미 상당히 늦은 셈이지요. 발빠른 사람들은 그 전에 대처한다는 것을 의외로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고소장 접수되기 전에 대처하는 게 제일 좋고, 그게 안 되면 고소장 접수 후라도 고소인조사 하기 전까지만 합의하면 꽤 성공적인 겁니다. 형사사건이란 것이 똑같은 합의라도 어느 타이밍에 하느냐에 따라 효과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따라서 어떤 경로든 간에, 누군가 나를 고소하려고 한다거나, 혹은 고소장을 제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경찰이 나를 부를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그 즉시 대응을 해서 이 골든타임에 적극적으로 개입을 해야 합니다.
가장 먼저 뭘 해야 될까요? 뭔가 당장 움직여서 바쁘게 해야 될 것 같지만, 우선은 머리를 써야 합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고소인의 의중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부분을 놓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소인이 이 고소를 통해서 뭘 얻고 싶었을까? 사과? 피해변제? 아니면 피의자를 엄벌에 처하는 것? 혹은, 고소장에 드러나지 않는 또 다른 목적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지요. 예를 들어 표면적으로는 배임횡령을 문제삼고 있지만, 사실은 고소인이 나를 동업관계에서 쫓아내고 싶다거나 다른 경제적 이익을 얻어내기 위해 고소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럼 고소인의 의도를 어떻게 아느냐? 원칙적으로는 고소인한테 연락을 해 보는 수밖에요. 다만, 성범죄나 폭력범죄, 스토킹처럼 피해자에 대한 접촉 자체가 보복행위나 2차 가해로 문제될 수 있는 경우에는 조심하셔야 합니다. 절대로 고소인의 의사에 반해서 연락하거나 찾아가시면 안 된다는 점을 주의하시고, 이런 경우에는 변호인이나 제3자의 중재를 통해서 조심스럽게 연락을 시도하셔야 합니다.
또한 조사받기 전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일이 고소장 열람입니다. 정보공개청구를 하면 되는데, 사실 열람을 하더라도 고소장을 다 보여주는 게 아니라 주요 증거들은 다 가리고 어떤 범죄사실로 고소한 것인지에 대한 부분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고소장의 일부라도 알고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고소를 당했을 때의 대처와 관련해서는 아래 글을 참조하시면 좋습니다.
고소 내용에 대한 윤곽이 잡히면, 이제 본격적으로 경찰 조사 준비를 시작해야지요. 순수하게 실무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전체 형사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가 바로 경찰의 첫 조사기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조사받을 때 어떤 내용으로 시작되었는지에 따라서 향후 그 사건 전체의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오늘 포스팅은 형사절차 전반을 다루는 것이므로, 경찰조사 준비에 관하여는 아래 포스팅을 참고해주시고, 여기서는 다음 절차로 넘어가겠습니다.
경찰 수사관이 수사를 마치면 우선 자체적으로 판단을 합니다. 만약 그 사건이 기소할만한 사건이고 유죄를 입증할 증거가 충분히 확보되었다고 판단하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넘깁니다. 사건을 보내버린다는 의미에서 보낼 송, 이르다 치, ‘송치(送致)'라고 하지요. 경찰은 기소권이 없으므로 기소권이 있는 검사에게 사건을 넘겨야 법원에 가져갈 수 있는 겁니다.
반면에, 경찰이 보기에 “이 사건은 기소할 필요가 없겠네, 그냥 내가 여기서 종결할래. 검사한테 사건 안 보낼거야.” 이렇게 결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사건을 안 보내니까 '불송치'입니다. 불송치 결정을 내려도 기록은 검찰에 넘어가고 검사가 불송치 결정이 타당한지 검토할 수는 있지만, 경찰이 사건을 기소해달라고 넘기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에서 불송치 결정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사건이 검사한테 기소의견으로 송치되었다고 해서 옛날(검경수사권 조정이 있기 전)처럼, 검사실에 가서 피의자가 직접 조사받는 일은 많지 않다고 보시면 됩니다. 경찰 수사가 잘 되어 있다면 보통은 그대로 기소가 진행이 되고, 설령 수사에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검사가 직접 수사하기보다는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진행을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검사가 보완수사를 요구했다는 거는, 경찰이 수사한 내용 중에 빈틈이 있다는 뜻이겠죠? 그걸 메꿔야 기소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담당 검사가 그걸 중요한 쟁점이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즉, 피의자로서는 그 약점을 노리는 것이 불송치결정 또는 불기소처분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잘 파악하셔야 합니다. 경찰 수사관한테 전화하셔서 검사가 뭘 보완하라고 그러더냐고 구체적으로 물어보셔야 하고, 그 쟁점에 집중해서 나에게 유리한 주장과 증거를 제출해야 불기소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한편 불송치 결정이 났다고 해서 바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불송치가 되면 피의자는 좋겠지만 고소인이나 피해자는 당연히 불만이 있겠죠. 그래서 고소인 등은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대해서 이의를 신청할 수 있고, 그 경우에는 사건이 검사에게 송치됩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바로 검사가 팔 걷어부치고 사건을 직접 수사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대개 경찰한테 보완수사요구를 하는 식으로 진행되고, 검사는 그 결과를 받아보고 나서 기소/ 불기소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것이지요(기소중지, 참고인중지는 잠정적 성격의 처분이므로 따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소라고 해서 다 같은 게 아닙니다. 정식기소(구공판)이냐 약식기소(구약식)냐, 이 둘 사이의 간극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우선 정식기소는 검사가 공소장을 법원에 보내서, 재판을 열어달라고 요청을 하는 겁니다. 우리가 형사재판을 공판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실무에서는 ‘공판을 구한다’라는 의미에서 구공판이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재판의 모습으로, 법정에 검사와 변호인이 다 나와서 공방을 주고받는 재판이 열리는 것이지요.
반면에 검사가 봤을 때 사안이 그렇게 중하지는 않아서 벌금형 정도면 적당하겠다라고 판단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검사가 법원에 공소장을 보내면서, ‘판사님, 이 사건은 굳이 공판까지 열 거는 없고, 그냥 서류만 보시고 벌금형을 내려주세요.’ 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법원에서 서류를 받아보고, ‘검사 요청처럼 벌금형이 적당하겠네’ 싶으면 '벌금 얼마에 처한다'는 취지를 문서에 적어서 피고인한테 보내는데, 이를 약식명령이라고 합니다.
그럼 피고인은 약식명령의 고지를 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정식재판을 청구할 수 있고, 그러면 정식재판이 진행됩니다(기간 내에 이의하지 않으면 그대로 확정됩니다). 한편 피고인의 정식재판청구 여부와 무관하게 법원이 직권으로 공판회부결정을 내릴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가 많지는 않습니다.
약식명령에 불복해서 정식재판을 받는 경우, 내가 바라는대로 무죄가 나오거나 벌금이 감경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벌금이 더 늘어날 수도 있기 때문에 정식재판을 청구할지 여부는 신중하게 결정하셔야 됩니다.
불기소처분은 사유에 따라 다섯가지 종류가 있습니다(기소유예/혐의없음/죄가안됨/공소권없음/각하). 이 중에서 혐의없음/죄가안됨/공소권없음/각하 등의 사유로 불기소처분을 받는 것이 피의자 입장에서는 가장 좋고, 조금 성질이 다른 것이 바로 '기소유예입니다.
기소유예는 피의사실이 인정돼서 기소가 가능한 사건이지만, 그걸 ‘유예’, 지금은 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한 번 봐준다는 뜻이지요. 혐의가 인정 되는 전제에서 검사가 내릴 수 있는 최대한의 선처가 바로 기소유예입니다.
검사가 기소유예 처분을 할 때 참작할 사항은 법령에서 정해두고 있는데(「검찰사건사무규칙」 제115조제3항제1호 및 「형법」 제51조), 그 중에서 실무상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사항이 바로 제2호, '피해에 대한 관계' 부분입니다. 피해자가 있는 범죄의 경우 피해자랑 합의가 안 되면 기소유예의 가능성은 상당히 떨어지게 되지요.
그래서 검사의 처분을 정리해 보면, 피의자 입장에서 가장 좋은 결과는 물론 기소유예가 아닌 다른 불기소처분입니다. 그 다음으로 기소유예가 나오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셔야 되고, 그 다음으로 그나마 안도할 수 있는 게 구약식, 그리고 가장 피하고 싶은 결과는 구공판이겠지요.
이렇게 검사의 처분 수위를 여러 단계로 나눠 봤을 때, 그 수위를 한 단계라도 낮출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피해자와의 합의입니다.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만나서 합의하는 것은 물론 언제든지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기가 서로 껄끄러운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런 경우에 많이 활용하는 것이 바로 검찰에서 진행하는 형사조정 절차입니다. 형사조정의 결과는 담당 검사에게 전달이 돼서 처분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줍니다. 구공판할 사건이 구약식으로 되거나, 구약식할 사건이 불기소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보통 사건이 배당되면 검찰 수사관이 피의자와 고소인 양쪽에 전화를 해서 형사조정을 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사안에 따라 연락이 안 오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형사조정을 통해 피해자와 꼭 합의를 해야겠다’ 라고 판단되면, 그냥 기다리고만 있지 말고 송치되고 나서 바로 검사실에 연락해서 형사조정을 진행해달라고 요청하시는 게 좋습니다. 다만 피해자가 거부하면 진행은 안 됩니다.
형사조정은 매우 중요한 기회이므로,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셔서 자세히 알아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다음으로 재판단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서는 후속 포스팅에서 이어서 설명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