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품이 나와서

눈물이 흘렀나

by 무지

일하는 내내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그 흔한 사고방식으로 나는 해가 나를 비추는 시간 동안 햇빛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내 안의 아픔과 슬픔을 그림자 속에 파묻었다. 사람을 대할 땐 햇빛을 머금은 미소를 지었다. 어색하지 않게, 적당히 밝게, 그렇게 하루를 견뎠다.


직장에서의 나는 감정이 잘 정리된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누가 뭘 부탁해도 괜찮다고 웃으며 말했고, 내 일이 끝나지 않아도 ‘괜찮아요’라는 말을 먼저 꺼냈다. 가끔은 그 단어가 입안에서 모래처럼 씹혔지만, 그래도 꾹 삼켰다. 나의 피로와 불안은 대부분 ‘괜찮아요’라는 문장 속에 묻혀 있었다.


점심시간엔 웃으며 밥을 먹었고, 회의 시간엔 적당한 의견을 내며 분위기를 맞췄다. 그렇게 하루의 절반을 남에게 맞춘 표정으로 살았다.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하루가 무사히 흘러간다는 사실이 조금은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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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어둠이 해를 집어삼켰다. 수고했다는 의미 없는 말들이 오갔다. ‘오늘도 고생 많았어요.’ 서로의 피로를 나누는 듯하지만, 사실은 서로의 피로에 눈감는 인사였다.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물었다.


앉을 자리도 없는 막차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흔들리는 전철 안, 수십 개의 피곤한 얼굴이 불빛 아래에 고요히 떠 있었다. 어쩐지 다들 비슷했다. 표정도, 자세도, 어깨의 기울기도. 나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손잡이를 잡고 멍하니 서 있었다. 손바닥엔 하루 동안 쌓인 피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냥 노래를 들었다. 늘 듣던 노래였다. 특별할 것도 없는 노래가 오늘따라 유난히 다르게 들렸다. 한때 위로가 되었던 가사는 이제 공감보단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그냥 들었다. 그저 흘러가는 멜로디에 몸을 맡겼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일까, 눈에 물이 고였다. 그래도 떨어지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그저 그렇게 버텼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봤다.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이 낯설 정도로 아팠다. 하루 종일 미소를 유지하던 얼굴이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다. 억지로라도 웃어보려 했다. 그래야 내일도, 또 사람들을 만나 웃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햇빛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햇빛에 기대어 지었던 그 미소가 이제는 나를 떠난 걸까.


그때 문득 하품이 나왔다. 참을 수 없을 만큼 깊고 느린 하품이었다. 그리고 하품이 끝나자, 눈에 고여 있던 물이 조용히 떨어졌다. 하품이 나와서 그냥, 눈물이 흘렀나 보다. 정말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눈물은 슬프지 않았다. 억지 웃음 대신, 억지로 감추지 않은 나의 표정이었으니까. 어쩌면 오랜만에 ‘진짜 나’를 마주한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를 괜찮게 보이게 하던 모든 표정이 무너지고, 아무런 가식 없이 흘러나온 한숨 같은 눈물. 그것이 위로였다.


진짜 위로는 웃음 속에 있지 않고, 가끔은 하품 같은 무력함 속에 스며든다는 걸 알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밤이 있다는 걸, 그냥 무너지듯 멈춰 서 있는 순간에도 인간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걸.


그날의 눈물은 하루를 버티기 위해 만든 미소보다 훨씬 진실했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표정이 아니라, 내 안에서 흘러나온 언어였으니까. 나는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하품은 피로의 언어고, 눈물은 정직한 감정의 언어다. 오늘의 나는 그 둘을 동시에 내뱉었다. 부끄럽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하루를 살아낸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인간적인 퇴근일지도 모르겠다.


내일도 아마 비슷한 하루일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또 미소를 지어야 할 테고, 낮에는 햇빛처럼 밝은 표정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오늘 밤만큼은, 웃지 않아도 되는 나로 남아 있기로 했다. 내일을 위해 억지로 괜찮은 척하기보다는, 오늘의 나를 조용히 안아주는 게 더 필요할 것 같다.


눈물이 아니라 하품이 되어버린 오늘의 피로를, 나는 그대로 품고 잠들기로 했다. 어쩌면 그게 가장 솔직한 위로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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